대구광역시/달성군

대구...남지장사 청련암

임병기(선과) 2014. 6. 3.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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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련암은 남지장사 주차장 우측길로 500여m 떨어져 있다. 대구의 등산객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산행 초입에 자리한 한적한 암자다.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지만 남지장사 처럼 민가의 대문 같다.

 

 

 

청련암은 최정산 산록 남지장사 산내암자로 통일신라 신문왕 4년(684)에 양개조사가 세운 절이라고 전한다. 조선시대에 고승 무학대사가 수도한 곳이기도 하며,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불탔던 것을 효종 4년(1653) 인혜대사가 청련암과 함께 다시 세웠으나, 순조 6년(1806)에 또 화재를 2년 뒤 다시 세웠다고 한다.

 

 

청련암은 법당과 생활공간의 기능을 겸한 특이한 평면을 가진 건물로 ‘인법당’으로도 부르고 있다.남향한 3칸 인법당을 중심으로 좌측에 1칸 온돌방을 두고, 그 앞쪽으로 마루와 온돌방 1칸을 앞쪽으로 돌출시켰으며, 우측에는 앞쪽에 방을 꾸미고 뒤쪽에 큰 부엌을 두고 그 뒤로 1칸을 돌출시켜 온돌방을 두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인법당에는 아미타불을 봉안하였으며, 앞뒤에 반칸 폭의 툇마루를 두어 방의 앞쪽 어간에  띠살문을, 좌우에는 머름 위에 낮은 띠살창문을 두어 출입을 구분하였다. 뒤쪽에는 불단시설이 없는 양 협간에만 외여닫이 살문을 냈다.

 

 

금고

 

 

한국사찰총람에는 건륭30년(1765년)명의 금고가 있다고 했다. 스님에게 여쭈어 보았지만 인법당에는 금고가 없으며 툇마루에 걸린 금고가 유일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금고에는 대구 남일동 거주하는 분이 무술년에 시주하였다는 명문이 보인다. 무술년은 1958년 아닐까? 그나저나 1765년 명문의 금고는 어디로 갔을까? 설마 스님께서 숨기지는 않았겠지?

 

 

내려오는 산길 우측 조선후기 원구형 부도 2기가 오수를 즐기다 화들짝 놀라 눈을 비빈다.

 

 

 

 

청련암에는 2기 부도 외에도 1기가 더 있으나 미쳐 찾지 못했다.

 

 

 

더 머물고 싶었는데 마누라가 배가 고프단다. 아니 큰처남 부부가 한정식 예약했다고 전화가 와서 안달이다. 느긋하게 놀다가 내려가면서 매밀국수  먹자던 약속은 생각에도 없는 듯 재촉한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맛있는 음식은 접대 받는 음식인 줄 잘 알기에 내맘도 싫지는 않더라. ㅎㅎ

201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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