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문경시

문경...미면사지 적석탑

임병기(선과) 2014. 5. 2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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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홀린듯 소야리 미면사지 적석탑과 윤필암 사면불이 밤새 눈앞에 아른그려 근로자의 날 아침 또다시 문경으로 향했다. 소야리 미면사지 적석탑은 산북면 소야리에 위치하며  도로변 산92번지에 주차하여야 한다. 주소지에는 채석한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사진 좌측 적석탑으로 향하는 산길이 보이며 10여분 평이한 길을 오르면 좌측에 적석탑이 자리한다. 녹음이 우거진 계절에는  지나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적석탑. 과연 우리나라에는 몇 기가 있을까? 전체적으로 파악된 정확한 자료는 접하지 못했지만 내가 답사한 적석탑은 안동 석탑리. 의성 석탑리. 제천 교리. 충주 목계리. 문경 미면사지. 단양 태장이묘. 울주 은현리 적석총. 산청 전구형왕릉이 있다.

 

적석탑이 자리한 곳은 은 미면사지米麵寺址 초입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사지총람에는 동문선, 상산지,대승사 사적에 기록이 남아 있다고 짧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문경시청에 근무하는 엄원식님의 글에는 보다 더 구체적으로 미면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미면사는 진정국사(眞靜師 :1206~1294, 법명은 천책, 산양현 출신, 태조왕건의 공신인 신염달의 11대손, 스승 요세와 함께 백련결사를 일으킴)의 『호산록(湖山綠)』에 실린 “유사불산기(遊四佛山記)”에 대략 어떤 사찰이었는지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이곳에는 미면사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의 초상화 그리고 의상의 삿갓과 지팡이가 있었다고 하며 불우, 조당, 승료, 객실, 허백루 등 60여칸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또 냉천이라는 샘이 있었고 누교(樓橋)가 있었다고 하며 전남 강진에 있는 만덕산 백련사(白蓮寺)와 구별하여 동백련사(東白蓮寺)로 구별하여 불렀다고도 한다.

 

유산불산기의 미면사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미면사는 백련사라고도 했는데 의상법사가 머물렀으며 의상이 설법을 할 때 용녀(龍女)가 함께 하였다고 한다. 절 마당 좌우에 우물이 있는데 한쪽에서는 매일 쌀(米)이 나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수(麵)가 나왔다.」

 

17세기에 편찬된 상주의 지방지인 상산지(尙山誌) 사찰조에 미면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17세기까지는 사찰의 명맥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 초의 대승사사적기에는 이미 이 절은 폐허가 되고 세력가의 무덤이 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절은 17세기 후반 또는 18세기 초반에 폐사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미면사지 부도 기단...옛길박물관

 

 

미면사지 다층청석탑 기단...옛길박물관

 

폐사가 되면서 불상은 대승사로 옮겨졌고, 전답은 김용사 소유를 거쳐 다시 대승사 소유권으로 옮겨졌다고 문경군지에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 부도도 1기 있었으나 도난당하였다고 한다. 실제로는 부도가 2기인 것으로 확인이 되었으며 모두 도난당했으며, 부도의 기단부분은 도난을 우려하여 현재 옛길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옮겨놓은 상태이다.

 

기록만으로 본다면 미면사는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으며, 더구나 신라 진평왕 초기인 579년에 창건되었다고 되어있어 문경 최초, 최고의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다. 당시에 이 곳에 관심이 많았던 상주목사 최자에 의해 중수되고 대승사, 화장사와 함께 대가람을 이루었다고 하며 미면정(米麵井)이란 우물이 있었던 사실도 함께 전하고 있다."

 

 

엄원식님의 글을 더 가져왔다.

 

"소야리에 있는 미면사지 계단식 적석탑은 대승사사적기(大乘寺事蹟記)에 이렇게 전하고 있다. 대승사사적기는 벽천(碧天)이라는 승려가 1705년에 쓴 대승사에 대한 기록이다.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今有石築造山 於寺下六七十步許 極工巧 俗言壬辰倭亂時 倭之所築 或是倭於盤石上 築石山 以覆之耶 是亦未可知也

 

지금 돌로 쌓은 조산이 절밑 6~70보 정도 아래에 있다. 쌓은 것이 극히 정교하다. 일반에 전하기를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쌓은 것이라고도 하고 또는 왜군들이 반석위에 돌산을 쌓아 반석을 덮은 것이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알 수 없다.

 

이 기록으로 보자면 이 탑을 임진왜란때 왜군이 쌓았다고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을 해석한 기록들을 통해 볼 때 벽천스님이 이 글을 쓸 당시가 이미 1세기 이상 지난 뒤의 일이고 조산이라는 표현은 적석탑을 잘못 오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적석탑 중앙은 도굴의 흔적으로 큰 홀이 생긴 채로 방치되어 있다.

 

 

적석탑은 1980년 금속탐지기, 1994년경에 장비를 동원한 도굴꾼들에 의해 도굴되었으며 반출되었던 문화재는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압수한 문화재는 청동반자 및 청동반자편, 청동촉대, 청동 바라 , 철제보습, 납덩어리, 망와 , 당초문평와당, 연화문원와당 등이 있다고 한다.  

 

 

 

 

 

 

 

미면사지 적석탑은 장방형으로 단층 기단에 5단으로 축조된 탑이라고 한다. 정설로 된 조성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발굴된 유물로 미루어 경북대 한기문 교수는 1241~1247년 백련결사의 후원자들이 조성한 탑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예전에 조성되어 있던 적석탑에 도굴되어 회수한  유물을 넣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않을까? 그건 전문가들의 몫으로 남겨주자. 그래도 왜 순수하게 적석탑으로 판단되는 탑이  경북북부, 충북 지방에 분포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특정 집단의 상징물로 추측한다면 지나친 억측인가?

 

근처 주소지를 알려준 문경군청 엄원식님, 불편한 몸으로 길안내를 해준 우담바라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1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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