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경주시

경주...호원사지 석탑재

임병기(선과) 2014. 1. 7.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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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2014년 1월1일 전국 일출명소에 해맞이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타고난 역마살을 거역할 수는 없어도 초하루부터 길을 나설 자신이 없어  가까운 절집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조용하게 보냈다. 마누라와 절집 나들이는 지난 연말 도모한 경주 비지정 답사를 위한 눈가림이었다고 말하기는 싫다.

 

금년 나의 발길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가늠할 수 없다. 이제는 나의 감정, 즐거움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에게 옛님의 흔적을, 숨결을 전하고프단 건방진(?) 사명감으로 움직인다. 건방짐이 깊어질수록 우리님들의 안목도 높고 넓고 깊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아침 일찍 절터를 찾은 우리에게 연세 지긋하신 노인은 마당가 부재를 가리키며 신라부재을 쏙쏙 집어 주신다.  부드럽고 친절한 그 마음이 고마웁다. 호원사지虎願寺址. 황성동 황성공원 주변으로 알려져 있다. 호원사지에 관하여는 삼국유사에 김현감호金現感虎 조에 등재되어 있다.

 

신라 풍속에 해마다 2월이 되면 초파일에서 15일까지 경주 남녀가 다투어 흥륜사 전탑을 도는 복회福會를 행했다. 원성왕元聖王 때에 김현이라는 낭군郞君이 있어서 밤이 깊도록 혼자서 탑을 돌기를 쉬지 않았다. 그때 한 처녀가 염불을 하면서 따라 돌다가 서로 마음이 맞아  정을 통하였다.


처녀가 돌아가려 하자 김현이 따라가니 처녀는 사양하고 거절했지만 김현은 억지로 따라갔다. 서산 기슭에 이르러 한 초가집으로 들어가니 할머니가 처녀에게 물었다. "함께 온 자는 누구냐." 처녀가 사실대로 말하자 할머니는 말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없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이미 저지른 일이어서 나무랄 수도 없으니 은밀한 곳에 숨겨 두거라. 네 형제들이 나쁜 짓을 할까 두렵다." 하고 김현을 구석진 곳에 숨겼다.

 

조금 뒤에 세 마리 범이 으르렁 거리며 들어와 말했다. "집에서 비린내가 나니 요깃거리가 어찌 다행하지 않으랴." 할머니와 처녀가 꾸짖었다. "너희 코가 잘못이다. 무슨 미친 소리냐." 이때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너희들이 생명을 해치는 일이 너무 많으니, 마땅히 한 놈을 죽여  징계하겠노라." 처녀가 "세 분 오빠께서 스스로 징계하신다면 내가  벌을 대신 받겠습니다." 하고 말하니, 모두 기뻐하여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치며 달아나 버렸다.

 

처녀가 들어와 김현에게 말했다. "처음에 저는 낭군이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이 부끄러워 짐짓 사양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숨김없이 감히 진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저와 낭군은 비록 종족은 다르지만 하루저녁의 즐거움을 얻어 중한 부부의 의를 맺었습니다. 세 오빠의 악함은 하늘이 이미 미워하시니 한 집안의 재앙을 제가 당하려 하오나, 보통 사람의 손에 죽는 것이 어찌 낭군의 칼날에 죽어서 은덕을 갚는 것만 하겠습니까.

 

제가 내일 시가市街에 들어가 몹시 사람들을 해치면 임금께서 반드시 저를 잡게 할 것입니다. 그 때 낭군은 겁내지 말고 저를 쫓아 성북쪽의 숲속까지 오시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김현은 말했다. "사람이 사람과 사귐은 인륜의 도리지만 다른 유와 사귐은 대개 떳떳한 일이 아니오. 그러나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진실로 하늘이 준 다행인데 어찌 차마 배필의 죽음을 팔아 한 세상의 벼슬을 바라겠소." 처녀가 말했다. "낭군은 그 같은 말을 하지 마십시오.


이제 제가 일찍 죽는 것은 대개 하늘의 명령이며, 또한 저의 소원이요 낭군의 경사이며, 우리 일족의 복이요 나라 사람들의 기쁨입니다. 한 번 죽어 다섯 가지 이로움을 얻을 수 있는 터에 어찌 그것을 마다하겠습니까. 다만 저를 위하여 절을 짓고 불경을 강론하여 좋은 과보를 얻는데 도움이 되게 해 주신다면 낭군의 은혜, 이보다 더 큼이 없겠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서로 울면서 작별했다.

 

다음날 사나운 범이 성안에 들어와서 사람들을 몹시 해치니 감히 당해 낼 수 없었다. 원성왕이 듣고 영을 내려, "범을 잡는 사람에게 2급의 벼슬을 주겠다."고 하였다. 김현이 대궐에 나아가 아뢰었다. "소신이 잡겠습니다." 왕은 먼저 벼슬을 주고 격려하였다. 김현이 칼을 쥐고 숲속으로 들어가니 범은 변하여 낭자가 되어 반갑게 웃으면서, "어젯밤에 낭군과 마음속 깊이 정을 맺던 일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내 발톱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모두 흥륜사의 간장을 바르고 절의 나발 소리를 들으면 나을 것입니다."하고는, 이어 김현이 찬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찔러 고꾸라졌다. 김현이 숲속에서 나와서, "범은 쉽게 잡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연유는 숨기고, 다만 범에게 입은 상처를 그 범이 시킨 대로 치료하니 모두 나았다. 지금도 민가에서는 범에게 입은 상처에는 역시 그 방법을 쓴다.

 

김현은 벼슬에 오르자, 서천가에 절을 지어 호원사虎願寺라 하고 항상 범망경을 강론하여 범의 저승길을 인도하고 또한 범이 제 몸을 죽여 자기를 성공하게 해 준 은혜에 보답했다. 김현은 죽을 때에 지나간 일의 기이함에 깊이 감동하여 이에 붓으로 적어 전하였으므로 세상에서 비로소 듣고 알게 되었으며, 그래서 이름은 논호림이라 했는데 지금까지도 그렇게 일컬어 온다.

 

 

달빛에 물든 이야기를 간직한 절터에는 옥개석 2개, 부러진 팔각 석등 간주석을 비롯 사찰 석조부재가 여기저기 산포하고 있다. 장독대로 활용되고 있는 석탑의  5단 옥개석받침은 거의 신라 문화전성기인 8세기 중후반의 유형으로 판단 된다. 그렇게 보면 삼국유사 배경이 된 38대 원성왕의 재위기간(785~798)과 일치한다. 따라서 석탑은 2기단의 3층 석탑으로 최고 정점의 석가탑과 거의 유사한 경주 마동, 창녕 술정리, 청도 봉기리 석탑 형태로 그려진다.

 

 

옥개석 사리공. 정방형 홈이 사절되어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이다.

 

주초석

팔각원당형석등 간주석.

전각 장대석

 

겨울 잿빛 폐사지.

 

늘 가슴 아린 그리움으로 돌아선다.

 

복원되는 그날 진정한 선진 문화국가로 거듭날텐데

 

201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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