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내고향 성주

성주...일요암지 6대신장

임병기(선과) 2013. 9. 22. 21:11
300x250
300x250

 

 

백운동 계곡

 

 

가야산 백운동 일요암지. 비공개 등산로이어서 들어가는 길은 소개하지 않겠다. 사전에  문화유적 답사 목적을 밝히고 공원관리사무소의 허락을 득한 후 출입하면 된다.

 

 

등산로에서 뒤돌아 본 만물상 코스

 

 

친절하게도 안내표식이 반긴다. 사전에 인식을 하고 있었지만 반가웁기 그지 없었다.

 

일요암지 석축

 

석축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사지총람 자료를 보자. "용기사지 동쪽 약 600미터 거리에 있다. 경산지에 의하면 고려말 송천우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성주지, 범우고에는 가야산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지는 4단 석축을 쌓고 조성하였으며 사지 북쪽 바위에 자연 석굴이 있다. 그 아랫단 동쪽에 신장상이 새겨진 석주가 있다"

 

송천우? 집에 보관하고 있는 성주군지를 찾아 보았다."야성군 송길창의 아들, 상호군을 지냈다" 어떤 인물인지 불분명하다. 다만 무인으로 추정될 뿐이다.

 

그런데 대구매일에서 특집으로 다룬 "상생의 땅 가야산" 기사중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일요암은 고려말기에 호군 송천우가 그의 장인 도길봉을 위해 세웠다고 전해지는 곳. 일요암에는 도길봉의 형 도길부와 얽힌 이야기도 간직하고 있다. 고려말 운봉대첩에서 큰 공을 세운 도길부는 고려왕조를 향한 충성을 굽히지 않아 죄를 쓰고 쫓기는 몸이 되어 가야산 심원사에 머물고 있었다. 병사가 심원사에 이르자 석존상 스님이 나와 꾸짖기를 "비록 죄지은 이가 있든 없든 사문(寺門)을 침입해서는 안 된다."고 하자 병사들이 물러갔다. 그후 도길부 등은 일요암에서 말년을 보냈다는 게 성주의 역사와 인물 등을 담은 '경산지(京山志)' 고려사 명인록에 나오는 기록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송천우가 그의 처백부인 도길부를 위해 창건하였다는 글도 보인다. 도길부는 최영, 조민수와 함께 이성계와 달리 보수파에 몸을 담아 가야산에서 은거하여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육대신장

 

육각형 기둥이 육대신장이 새겨진 석주이다. 각각의 면에 정축신장, 정해신장, 정유신장, 정미신장, 정사신장, 정인신장이 새겨져 있다. 신장을 둘러싸고 18개 장방형 석재가  세워져 있다. 누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상징하는지 언제부터 자리했는지 알려진 사실은 없다.

 

 

신장을 둘러싼 석주에도 글이 보인다.

 

 

丁丑, 丁亥, 丁酉,丁未, 丁巳.丁寅 자료를 검색해보니 육정신장六丁神將이라고 하는데 방위개념과 관련되는 무속용어로 보인다. 물론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그런저런 연유로 무속인들에게는 영험있는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한다.

 

 

 

선방굴

 

2013.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