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문화유산 답사동호회 "나의 문화유산 답사" 게시판에 게재된 관왕묘 글을 보고 많이 놀랐다. 내가 관왕묘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내고향 성주 관왕묘를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지천명이 한참 지난 나이를 잊고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랐었다. 한편으로는 경향각지 골골산천을 답사하면서도 고향 옛님을 알리지 않은 내가 밉기도 했다. 마침 고향 가는 길에 관운사에 들린 후 사진과 함께 올리니 답사시 참고하길 바란다.
성주읍 경산리에 자리한 관운사는 다른 절집과 달리 관운장을 배향하던 사당에 세워진 절집이다. 관왕묘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어면서 폐허가 되었다. 성주 관음사는 1963년 "지산스님이 이곳을 지나다보니 터의 기운이 넘치고 영험이 있는 도량임을 직감하고 관운장 승모회에 찾아가 관운장을 모실터이니 사찰로 사용토록 승낙해 달라 요청하여 건립하였다. 1964년도에 사당을 보수하여 큰법당이라 하고 부처님과 관운장을 함께모시고 요사체 2동을 지었다. 1974년도부터 관운사 대웅전과 요사체 천왕문 범종각 삼성각등을 신축하기로 원력을 세우고 기도하여 차례로 신축하고, 관왕묘도 중수하여 1987년 8월 15일 직지사 조실 관응스님을 증명법사로 성대한 낙성식을 거행하였다.고" 관운사 홈페이지에 설명하고 있다.
관왕묘 입구의 하마비
관왕묘 외삼문
관운사 대웅전
관왕을 모신 관성전. 관왕묘는 선조30년 정유재란시 명나라 장군 모국기가 성주성 전투에서 승리하여 왜병을 물리친 것이 관운장의 영험이라 믿고, 어명으로 세운 성주의 관제묘다.처음에는 성읍 남문 동편에 지었으나 지대가 낮아 수재가 잦던 중 영조 3년에 관운장이 성주목사에게 현몽하여 이건하였다. 조정에서는 왜적을 막아준 공을 인정하여 성주목사와 지방유림에게 향사를 올리도록 명하고 전쟁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관평대군. 관운장.주창장군 옛날에는 매년 봄 경칩, 가을 상강 두차례 춘추 향사를 200명의 지방유림들이 성대하게 거행하고, 문화 행사로는 고을 남북 대항 줄 다리기 대회를 개최하였다고 전한다. 행사 일주일 전부터 관운장께 기도하여 전날밤에 관운장의 몸에서 땀이 나면 남쪽이 승리했고, 남쪽이 승리해야 풍년이 든다는 믿음이 있었다.
관우장(관우)
관왕묘을 건립하는 까닭은 오나라 여몽의 계략에 빠져 전사한 관우를 그곳의 무인들이 무신으로 추앙하여 전쟁의 승리와 국가의 태평, 평안을 기원하는 전당을 건립하여 수호신으로 배향하였다. 그런 믿음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장군들이 우리나라에도 관왕묘를 세운 것이다.
아러한 믿음은 우리민속신앙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서 유명을 달리한 단종은 강원도를 비롯 북부 지방에서는 산신으로 추앙되며, 최영 장군. 임경업 장군도 마을 고을 나라를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 배향되는 지역이 많다. 우리 민초들은 억울하게 죽은 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신으로 모시면서 아울러 마을을 지켜주기를 염원한 것이다.
성주관왕묘 외에도 서울을 비롯한 여러지방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안동 남원 괴산은 답사하였다. 괴산은 나라에서 어명으로 건립한 묘는 아니며 마을 신앙으로 판단된다.
남원 관왕묘
옛님의 숨결 815 참조
이시절 답사시에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았었다
안동관왕묘는 옛님의 숨결 288 참조
영동 당곡리 12장군 신당
장비 제갈공명 관우 조자룡
당곡리 장군당은 옛님의숨결 512 참조
향사에 사용되었던 정료대
성주군지 자료에 의하면 예전 관왕묘제와 줄다리기는 성대하게 군민전체가 어우러지는 행사로 보인다. 관왕을 배향하는 목적을 넘어 창녕 영산제 처럼 전군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참여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성주 생명축제 기간 동안에 재현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2013.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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