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경암 사적에 의하면 고려 말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도성의 위치를 정하고자 올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적인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암벽에 새겨진 글로서 조선 세종의 7째 아들인 평원대군과 손자 제안대군이 충효를 다짐하면서 망경암과 칠성단을 만들고 칠성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후 망경암은 신성한 칠성도량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1897년 이규승이 불상을 조성하고 사찰을 조성한 것으로 전한다. 망경암칠성대중수비문에 의하면, 망경암은 한양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영장산에 위치하고 있어 망경암이라고 했으며,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임금이 친히 찾아와 나라와 백성의 안락과 수복을 기원한 장소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칠성대
세종의 일곱째 아들로 천연두를 앓다 19세에 요절한 평원대군(1427~1445)과 예종의 둘째 아들로 평원대군의 양자로 입양된 제안대군(1466~1525)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망경암여래조상 위치에 칠성단을 세워 칠성제를 지냈으며, 이곳을 칠성대로 불렀다고 한다. 그로 미루어 불교와 민속신앙이 어울린 성지로 조성되었음을 판단할 수 있다.
사진 우측 하단의 망경암칠성대중수비 대비大碑와 소비小碑
대비(뒤편 화강암 비). 대한제국이이 선포된 이듬해인 1898년(광무 2) 3월에 고종황제의 등극과 황세자의 탄생을 축원하고 칠성대를 중수한 사실을 새겨놓고자 중수비를 건립하였다. 비신의 전후좌우 4면에 모두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대한민국광주영장산망경암칠성대중수서(大韓民國廣州靈長山望京庵七星臺重修序)’라는 제하에, 망경암과 칠성대 유래를 기록하고,영장산 신령과 법륜아미, 봉국세존, 망경약사, 칠성대 성신 등에게 황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문은 소비와 마찬가지로 평원대군과 제안대군의 봉사손奉祀孫인 이규승이 지었다.
망경암마애여래좌상. 자연 암벽에 장방형 감실을 만들고 안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소발, 넓적하고 평면적인 상호는 마모가 심하여 이목구비를 파악하기 어렵고, 귀는 길어 어깨에 닿을 듯하다. 결가부좌한 좌상으로 법의는 통견이며, 왼손은 손바닥을 안쪽으로 가슴에 두고, 오른손항마촉지 수인이다. 마애여래좌상 주변에는 암벽을 평평하게 다듬고 감실을 만들어 大皇帝陛下萬萬歲대황제폐하만만세 등의 명문을 14곳에 새겨 놓았다.
명문에 있는 1897년 이규승이 조성한 관음상? 현재 도상으로는 불상으로 판단되지만 존명을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만 판단할수 없지 않을까?
이름에 걸맞게 여의도 63빌딩, 남산, 멀리 북한산(?)까지 눈에 들어 온다. 그래서 4월 나의 답사 제목을 '한양땅 울타리 너머의 그리움'으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글은 디지털성남문화대전을 참고 하였습니다)
2013.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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