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성남시

성남...약사사 석탑

임병기(선과) 2017. 6. 3.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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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사

약사사는 남한산성에 있었던 여러 사찰 중 하나인 한흥사漢興寺를 계승한 사찰이다. 남한산성은 조선 광해군 13년(1621)년에 후금의 침입에 대비해 성을 석성으로 개축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괄의 난을 겪으면서 잠시 중단되었었고, 조선 인조 2(1624)년에 다시 축성을 시작해서 인조4(1626)년에 완공하게 되었다.

 

남한산성의 축성과정에는 많은 승군이 동원되었고, 이들의 주둔지로 남한산성 안에 있던 망월사와 옥정사가 사용되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여 승군이 주둔할 수 있는 곳이 더 필요해짐에 따라 조선 인조16(1638)년에 벽암대사 각성覺性에 의해 한흥사 漢興寺를 비롯하여 개원開元, 국청國淸, 장경長慶, 천주天柱, 동림東林, 동단東壇 등 모두 7개의 사찰을 새로이 조영되었다. 이후 이들 9개 사찰은 남한산성을 보수하고 지키는 수호사찰로서 존치되었었다. 영조 연간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이들 절이 구재산성“俱在山城, 즉 산성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어 영조 연간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그러나 조선시대 말에 들어와 상황은 바뀌게 되었다. 고종21(1894)년에 이르러 승번 제도가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남한산성 안에 승군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승군은 폐지되었으나 이후에도 계속 사찰은 유지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던 중 1907년 가을에 일본군들이 남한산성 내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승군의 주둔지였고 아직도 많은 화약이 비축되어 있는 화약고가 있다는 이유로 남한산성 안에 위치한 모든 사찰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 파괴 양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남한산성내에 장경사를 제외한 모든 사찰이 폐사될 정도였다. 한흥사도 이때 폐사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전 여래종 종정이신 석인왕 대종사께서 옛 한흥사를 재건하고자 1967년 3월에 이곳에 새로이 절을 창건하고 그 이름을 한흥사라 하였다. 신라 원효가 경찬한 묘법의 현의와 고려 재관법사가 흥전한 법화의 종지 등을 계승하여 호국안민과 제도세민의 현시구제를 목적으로 한 창건이었다고 한다. 이후 1968년에 약사여래불을 봉안하고 현재의 이름인 약사사로 개명하였다. 대한불교여래종 총본산으로서 종정스님이 상주하고 계시며, 여래종 승려의 교육장이자 수행처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삼층석탑 부재

1999년 대웅보전 신축불사 중에 발굴된 석탑재이다.

 

 

아래로부터

하층기단 저석,면석

상층기단 갑석재

하층기단갑석재 4매

옥개석

 

 

하층기단

면석과  저석이 일석이며 탱주 1기, 양우주가 모각되었다.

 

 

하층기단

 

 

상층기단 갑석재

하부에 부연을 표현하였다.

 

 

하층기단 갑석재

 

 

하층기단갑석재

4매로 결구하였으며, 상부에 각호형 2단 괴임을 조출하였다.

갑석에는 경사를 두었고 합각선을 표현하였다.

 

 

옥개석

낙수면 기울기가 급하며, 층급받침은 4단이다.

절수구는 생략되었고 상부에 1단 괴임을 두었다.

 

 

 

 

 

 

 

고려초기에 조성된 2층기단의 삼층석탑으로 추정된다.

 

 

 

석불입상

미륵불로 추측된다.

 

 

근세탑도 보이고...

 

 

뉘엿뉘엿 해는 넘어가고

객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2017.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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