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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왕시

의왕...청계사 동종

by 임병기(선과) 2013.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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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사. 작은 절집으로 알았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화려하게(?) 불사를 하였으며 찾는 순례객, 등산객이 무척 많아 고즈넉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고마웁게도 동종은 법당안이 아니라 별도로 조성된 전각에 자리하고 있어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전통사찰관광정보의 창건기를 보자. 청계사의 정확한 창건 연도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봉은사의 사적을 기록한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는 신라 때 창건되었다는 내용이 있으나 구체적 근거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사찰 경내에 있는 석등과 부도 일부는 신라 때 것으로 추정되므로 신라시대의 창건설은 믿을 만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청계사에 관련된 기록은 대체로 고려 후기가 되면서 집중적으로 보인다. 곧 1284년(충렬왕 10) 당대의 세력가였던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인규(趙仁規, 1227~1308)가 막대한 사재를 들여 중창하면서 청계사가 역사적으로 크게 부각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 연산군 시절에 사찰 폐쇄령을 내렸을 때 봉은사(奉恩寺)를 대신해 정법호지도량(正法護持道場)이 되어 선종본찰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청계사는 1689년(숙종 15) 3월과 1876년(고종 13) 3월 두 차례의 화재로 수십칸의 건물이 소실되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근대에 와서 경허 선사가 출가 득도하였고, 만공 선사가 주석하면서 선풍을 드날리기도 하였다. 1955년 아연 스님과 이후 월덕, 탄성 스님 등의 중창불사로 현재의 사찰모습을 갖추었다. 종각에 있는 범종은 1701년 주조된 것으로 일제 때 반출되어 녹여질 뻔한 것을 봉은사로 옮겨 사용하다가 1975년 청계사로 옮겨져 봉안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초에는 고려의 명신 이색, 조윤 등의 문인들이 입산하여 칩거하기도 했으며 정송산은 두 왕실을 섬길 수 없다는 충절로 이곳에서 출가하였다.

 

 

축대의 십이지신상

 

축대

극락보전

극락보전 창호

 

극락보전 내림마루의 용두

 

용마루 삼지창

 

 

 

석조 지장보살입상 앞. 부도 부재 석조부재

 

 

와불.1999년 봉안

 

범종각

 

1701년 사인비구가 청계사에서 제작한 종이다.  한동안 봉은사에 있다가 1975년 다시 청계사로 옮겨와 봉안하였다고 한다.

 

 

종의 꼭대기에는 두마리의 용이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고, 어깨와 종 입구부분에는 꽃과 덩굴을 새긴 넓은 띠가 있다. 어깨 띠 아래로는 연꽃모양의 9개의 돌기가 사각형의 유곽 안에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보살상들이 서있다.

 

 

종의 허리에는 중국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2줄의 굵은 횡선이 둘러져 있고, 그 아래로 글이 남아 있어 만든 사람과 시기를 알 수 있다.

 

사인비구의 작품으로 알려진 범종

 

1. 포항 보경사의 서운암 동종
2. 양산 통도사 동종
3. 안성 청룡사 동종
4. 강화 동종
5. 서울 화계사 동종
6. 의왕 청계사 동종
7. 문경 김룡사 동종
8. 홍천 수타사 동종

 

 

청계사 가는 길 - 김용진 -

청계사 가는 길
초승달이 반긴다
주름진 노승의 땀흘린 발자국
중생을 다스리는 청계사로 통한다

청계사 가는 길은
마음 다스리는 길
작은 것 하나에 욕심을 버리면
더 큰 행운이 오는 길

쪽바가지 약수 들고
하늘 보며
마음 비우고 돌아서는 길에
초승달이 발 아래로 내려온다.

 

201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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