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정도사지의 석탑으로, 1905년경 경부선 철도를 놓는 과정에서, 석탑을 해체하여 1924년 경복궁으로 이전하였다가 1994년 국립대구박물관 야외전시장으로 이건하였다. 석탑 해체 과정에서 유합안에 있는 형지기, 녹유사리병, 2개의 동합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탑 내부에서는 백지묵서白紙墨書 형지기에 의하면 5층석탑은 1019년(현종 10)부터 1031년(현종 22)까지에 걸쳐 상주계 지경산부속하였던 약목군의의 향리와 백성들의 발원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즉 군백성 광현이 석탑 오층을 세울 것을 발원하고 죽자, 형인 부호장 품유가 여러 사람을 권선하여 탑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적고 있다. 이때 탑 건립을 주도한 것은 승려 지한으로으로 향리들에게 석탑의 건립을 의뢰받았던 군선원의 승려이다. 또한 형지기에는 건탑의 인연, 시납의 상황, 공사의 사실, 양전 등을 이두식 표현으로 기재하고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이두 연구뿐 아니라 고려 전기의 사회사·경제사·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전하며, 1963년 1월에 보물 제357호로 지정되었다.
하기단 각 면에 안상을 3구씩 조각하였는데 무늬의 바닥선이 꽃모양처럼 솟아오르고 있다. 상기단에는 탱주를 새겼고 각 기단 갑석에는 경사를 이루었으며, 상부에 1단 탑신 괴임을 두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은 탱주 좌측에 태평십일년신미정월사일太平十一年辛未正月四日이라고 적혀 있다. ‘태평십일년’은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의 연호로 1031년 즉 현종 22년에 해당한다. 현재 면석은 새로 조성한 것이다.
탑신 몸돌과 옥개석은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초층 몸돌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비가 새겨져 있고, 2층 이상은 체감은 급격하다. 지붕돌은 너비가 좁고 두꺼우며 모서리에는 반전이 있다. 옥개 받침은 4단, 추녀 아래에 낙수홈이 새겨져있다. 5층 지붕돌은 결실 되었고 상륜에는 노반만 남아있다.
2013.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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