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강진군

강진...사문안 석조상

임병기(선과) 2012. 12. 12.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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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 답사에도 인연을 짓지 못한 옛님이었다. 이번 동선에도 제외되었었는데 이홍식님이 동선에 포함시켜 뵐 수 있었다. 만날 인연이라면 이렇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월남사지를 들리고 영암으로 향하는 길에 들린 작천면 갈동리 토동마을 길가에서 바라보는 언덕배기에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당산나무 아래에 불교와 민속이 어울렁더울렁 살아가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토동마을은 옥토끼가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는 옥토망월형국이라고 한다. 즉 앞삼봉의 양쪽 봉우리가 토끼의 귀, 고랑에 있는 마을 앞 논은 토끼의 입에 해당하는 형국에에서 유래한 마을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토동마을을 사문寺門안골’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을이 월남사로 들어가는 입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각속에 모셔진 사문안 석조상.  입석상은 광복되기 2~3년 전 월남사지가 위치하는 월남리 주민들이 옮겨갔다가 토동마을 주민들이 광복되기 전에 다시 찾아왔다고 전한다. 월남사지와 토동마을의 지형적 입지를 고려하면 입석상은 사찰 경계석 뿐만 아니라 벽사 기능의 사찰비보 장승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마을 사람들은  입석상을 ‘도깨비바우’라고 칭하기도 한다고 한다.

 

방형대좌 위로 4각의 석상이 놓여 있는 모습이다. 둥근받침은 네 조각의 돌이 이어 있으며 가운데가 4각으로 파여 그 곳에 석상을 고정시켜 놓았다. 자연석을 사용한 석상은 앞면과 양 옆면을 약간 다듬었을 뿐 뒷면은 자연석 그대로이다. 받침은 윗면에 8판의 연꽃무늬를 새겨져 있다.

 

 

 석상에는 앞과 옆면에 13개의 다양한 상들을 조각하였다. 머리에 뿔이 있거나, 강하게 부각시킨 이목구비, 방망이를 든 도깨비 등 주로 도깨비 얼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석상이 불교적 요소, 도깨비에 대한 민간신앙 요소와도 결부되어 두 문화의 습합을 보여주는 문화유산 처럼 여겨진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자료를 살펴보자

 

 

입석상은 하단이 좁고 상단이 넓은 모습으로 높이 122㎝, 폭 55㎝, 두께 28㎝의 자연석 입석이다. 전면과 좌우면이 약간 다듬어졌을 뿐 후면은 요철이 심한 자연석 그대로이다. 또 입석의 기단부 역할을 하고 있는 대좌는 직경 155㎝의 원형판석이다. 윗면에는 형식화된 연화문이 음각되었으며, 현재는 몇 조각으로 깨져 있다.

입석상은 전면과 좌우 3면에 모두 13개의 인물상이 음각되어 있다.

전면의 나상(裸像) : 전면의 입상(立像)으로 상체가 나상이다. 두상은 확실치 않으나 눈 언저리와 코, 입 등이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올려 앞가슴에 대고 있으며, 왼손은 어색하게 내려 허리에 대고 있다. 하체는 스커트 형태의 바지를 걸쳤다. 허리에 바지 끈이 보이며, 다리에는 내의 같은 옷 주름이 사선을 그리며 좌우가 대칭되게 나타난다. 발목에는 대님으로 묶은 띠가 보이며, 장화 같은 버선형의 신을 신고 있다. 

전면의 도깨비상 : 머리 위에 두 개의 뿔이 달리고, 얼굴을 자세히 보면 도깨비상이다. 앞이마와 양쪽 볼이 툭 튀어나오고, 눈은 사나우면서도 희화적으로 표현되어있다. 이빨은 좌우에 날카로운 송곳니가 부각되었다. 상의는 입은 것 같지 않고, 앞가슴 뼈가 U 자형으로 불거져 나왔다. 오른손에는 방망이를 들고 있고, 왼손은 길게 내려 손바닥을 벌린 채 손가락이 4개인 점이 특이하다. 하체는 역시 바지를 걸친 모습이며, 발목에 대님이 보이지 않고 버선형의 신발이 연결된다. 이 상은 왼쪽다리를 구부리고 있으며 몸의 중심을 오른쪽 다리에 두고 있다.

 

 

전면의 상하 3구상 : 나상과 도깨비상의 왼쪽으로 상체만 보인 입상이 상하로 3구가 음각되었다. 2상은 상층, 1상은 좀 움푹 파인 안쪽에 각각 새겨져 있다. 상층상은 보면 얼굴 형태만 보인다. 그 밑은 얼굴과 가슴 부분만 보이며, 앞가슴에서 옷 주름이 밀착되어 있다. 움푹 파인 안쪽에 새긴 상은 좌상이다. 머리 형태만 갖추고 목이 없이 그냥 어깨로 연결된 상체가 무엇인가를 응시하고 있다. 무릎은 가부좌를 틀었으며, 어깨에서 내려온 팔과 손은 옷주름 속에 가려진 듯, 자세히 드러나지 않는다. 얼핏 보기엔 불상 같기도 하다.

 

왼쪽의 면상(面像) : 왼쪽의 면상은 입상 1구뿐이다. 머리 위로 더 연결된 부분이 있는 듯 깨져 있다. 이 왼쪽으로 또 하나의 입상이 있었는지 긴 다리만 보인 부분이 밑에까지 나타나고 있다. 후면은 상당 부분 파손된 것으로 보인다. 얼굴은 머리 부분이 깨져 뿔의 여부를 알 수 없고, 양쪽 눈은 움푹 들어갔으며, 탈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어깨로 내려오면 오른팔은 수직되게 반듯이 내려 뻗고 있으며, 왼팔은 머리 위로 올린 것 같으나 깨져 있어 확실치 않다. 하체는 허리에 띠를 두르고, 짧은 반바지를 입었으나 앞부분만 가리고 있다. 다리는 오른쪽은 반듯하게 뻗었고, 왼쪽은 다리를 구부려 오른다리에 붙였다.

 

오른쪽의 면상 : 오른쪽에 있는 것은 모두 5상이며, 1구만 입상이고 나머지는 얼굴만 나타나고 있다. 입상은 얼굴 뒤로 관을 쓴 것 같으나 분명치 않고, 얼굴은 눈과 양볼이 유난히 튀어 나왔으며, 양팔은 앞가슴에 댄것 같은데 옷자락에 가려 확연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하체로 내려온 다리는 오른발이 빈약하고 왼발이 튼튼하게 조각되었으며 발목 부분은 비정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상은 전신에 옷을 걸친 상태로 V 자형의 모습이 보이며, 발에까지 옷 주름이 밀집되게 음각 되었다. 나머지 4상은 모두 얼굴만 보이고 있다. 4상 가운데 얼굴 형태가 가장 뚜렷한 상은 입상 왼쪽에 있다. 목 부분 밑으로 한 줄의 의문이 돌아가고 얼굴엔 눈과 코가 분명하다.

 

 

이상에서 13상을 모두 살펴보았으나 이들 상 외에도 전면 상단에 새의 모습이 보이며, 그 오른쪽으로는 방형의 돌기된 띠가 있다. 그 가운데에는 알 수 없는 음각이 보이기도 한다. 이 상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귀면상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손에는 방망이를 들고 있으며 다리의 모습이 정상인과는 다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전제로 한다면 이들은 도깨비상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도깨비들의 신통력은 방망이로 대표되고 있으며, 허리 윗부분은 안 보이고 아랫부분만 보인다는 전래의 관념이 이를 더욱 뒷받침해 준다. 더욱이 이들 상 가운데 왼쪽 다리가 약하게 표현되고 이를 구부려 오른쪽 다리에 붙인 것은 도깨비가 왼쪽 다리가 약하다는 통념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문안 석상에서 바라본 월남사 길. 많은 사람들이 사문안 석조상과 인연을 지으며 오고간 길이다. 석불상이 수호신처럼 지키며 서있던 저 길은 자식 점지, 몹쓸병 치유, 나라의 안녕, 과거 급제 등 숱한 염원과 바람이 겹겹히 쌓인 길이다. 그런 아름다운 사연이 한 올 한 올 맺혀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리라. 

 

201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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