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고흥군

고흥...관리 오층석탑

임병기(선과) 2012. 11. 18. 07:13
728x90
728x90

 

 

 

도양읍 관리 폐교된 도양초교 정문 옆 공터 풀숲에 방치되어 있다. 폐교 전에는 아이들의 자연 학습원 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석탑은 일제강점기 때 관리 탑산골에서 옮겨 왔다고 전하지만 완전한 완전한 오층탑이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단층 기단 위 오층석탑으로 초층 몸돌 초층과  2층 옥개석만 본래 부재로 보였다.옥개받침은 4단이며 낙수면 물매는 깊지 않다. 상부에는 1단의 탑신괴임을 조출하였고, 전각 반전은 희미하다. 조성시기는 고려 중기로 전한다.

 

 

기단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1,2층 옥개석

 

 

풀을 헤치고 석탑을 돌아 나오니 회색 모자를 눌러 쓴 비구니 스님이 R/V 차를 급히 세우고 차에서 내려 말을 걸어왔다

." 혹시 건설 회사에서 오셨나요?"

" 아닙니다 탑을 보러왔습니다."

스님은 나의 대답이 끝나기 전에 다시 승차하여 차문을 닫아 버렸다. 떠나가는 차를 바라보며 나는 왜 이 곳 고흥 출신 송수권 시인의 '여승'의 한 구절(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을 되내이었을까?

 

 

여승 - 송수권

어느 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
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
나는 하루 종일 방 안에 누워서 고뿔을 앓았다.
문을 열면 도진다 하여 손가락에 침을 발라 가며
장지문에 구멍을 뚫어
토방 아래 고깔 쓴 여승(女僧)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 고랑이 깊은 음색과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 집 처마 끝에 걸린 그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너무 애지고 막막하여져서 사립을 벗어나
먼발치로 바릿대를 든 여승(女僧)의 뒤를 따라 돌며
동구 밖까지 나섰다
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보고
우는 듯 웃는 듯 얼굴상을 지었다
(도련님, 소승(小僧)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
나는 무엇을 잘못하여 들킨 사람처럼 마주 서서 합장을 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 뛰어오며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에
마구 흙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여승(女僧)이 우리들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절간 속에
산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따금 꿈속에선
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여승(女僧)을 만나곤 한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事物)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시(詩)를 쓴다.

 

2012.11.02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