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고흥군

고흥...용산리 석조보살좌상

임병기(선과) 2012. 11. 16.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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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찾아왔으나 뵙지 못했었다. 오늘에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즉 석불은 학곡리 석불좌상, 또는 용산리 석조보살좌상으로 불려지며 주소도 학곡리와 용산리로 표기되어 있다. 예전에는 학곡리 주소로 입력하여 헤매이었으며 석불좌상이 있는 도로를 스쳐 지나 왔었다. 이번에는 용산리 석조보살로 검색하여 쉽게 찾었다.

 

1900년대 초에 발간된'사탑고적고'에는석조입상미륵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일대에 기와조각이 산재하는 것으로 미루어 사찰또는 보호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북에서 약간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석불은 대좌와 몸체가 한돌이며 대좌 아래는 땅속에 묻혀 있다. 우견편단의 법의는 왼쪽 어깨위에 걸친 옷주름은 형식화 되었고 왼팔에 내려온 소매자락은 도포처럼 넓어진 특이한 양식이다.불상에 비하여 지나치게 손은 작다.  왼손은 배에 대고 오른손은 구부리고 있는 무릎 위에 주먹을 쥔채 맞대고 있다. 석불은 앉은 자세인데 반가상도 아니며 두 무릎을 교차하여 앉아있는 교각상도 아니다. 전면에서 보면 왼쪽 다리는 조금 낮게 딛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는 구부려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다. 

 

 

머리 위에는 보관을 썼으며 보관 하단으로 구슬 무늬로 장식된 띠를 두르고 전면 중앙에는 화불 1구가 조각되었다. 얼굴은 마모되고 분명하지 않다. 코는 훼손되어 아랫부분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양쪽 귀는 크고 둔중하게 조각되어  어깨 위에 닿았다.

 

 

석불과 관련된 전설이라고 설명한 돌베개, 답사여행의 길잡이 '전남'편과 달리 고흥군청 홈페이지에는 구룡못과 각시바위 전설로 되어 있다. 

 

"구룡마을 욕심많은 부자노인 집에 시집온 착한 며느리가 시주승을 박대하던 부자노인 몰래 시아버지의 구박을 용서 빌었다. 도승은 곧 이 부잣집이 둑쏘로 변할 것이라 알려주며 아이를 업고 오되 뒤돌아 보지 말고 따라오라 했지만 한참 지난 뒤 지금의 지북마을 위치에서 남편의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 보고 말아 그 자리에서 돌이되어 ‘각시바위(돌미륵)’ ‘서방바위’라 부른다. 또한 욕심많은 부자노인의 집은 지금의 구룡못이 되었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관음보살좌상 (높이 11.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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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뒷모습. 앙련이 표현된  방형 대좌 위에 무릎을 구부려 앉아 있는 좌상으로 우견편단의 법의 자락이 왼쪽 어깨와 등허리를 돌아 온 몸을 덮고 있다.  불상은 보관을 쓰고 화불이 있어 관세음보살이다. 안내문과 여러 자료에는 미륵불이라는 설명도 있다. 고려후기 불상으로 전한다.

201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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