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합천군

합천...영창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석조약사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12. 3. 14.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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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읍 영창리 778로 입력한 네비가 멈추는 곳은 합천읍과 합천천을 사이에 두고 있는 의원동 마을이었다. 영창리 지명은 조선  말엽에 마을앞 도로변에 정부 양곡 창고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석골암에 모셔진 불상으로 짐작했지만 불상은 건너편 전각에 봉안되어 있었다.

 

 

전죽당.석골암 건너편 전각. 석골암 스님은 이 분의 부인이었으나 몇년전 별세하여 전각속의 부처님을 직접 모신다고 했다.

 

 

전죽당. 내부에는 중수기가 걸려있다.

 

 

처사님 말씀으로는 대나무 숲속에 묻혀있던 불상을 현몽하여 찾았다고 한다.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한국폐사지 총람에는 석불입상으로 기록되어 있어 잠시 혼란스러웠다. 전죽당에는 비로자나불좌상, 약사여래 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얼굴의 마모가 심하다. 나발, 우견편단의 법의는 무릎을 덮고 있는 상현좌이다. 비로자나불 지권인 수인의 손목부분도 예리한 도구에 의해 절단된 상태이다. 굵고 볼록한 삼도의 표현 때문인지 사지총람 자료의 설명과 달리 통일신라 전성기의 불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약사여래좌상. 광배와 불신이 한 개 석부재에 새겨져 있다. 광배는 두겹원으로 두광과 거신광을 표현한 주형으로 판단되나 상부가 결실된 모습이다. 불두는 절단되었고, 법의는 우견편단, 복부에 자리한 왼손에는 약합을 들었다. 자료에는 통일신라 불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약사여래좌상의 대좌는 석탑 몸돌이다.

 

 

 

비로자나불의 불대좌는 하대석을 뒤집은 것인지, 본래 상대좌인지 모호하지만, 민초들의 삶의 애환의 흔적인 성혈이 뚜렷하다.

 

 

전죽당 불상을 안내한 어르신이 불두 손상의 사연을 재미있게 설명하셨다."예전에  마을에 도둑이 자주 들었다.. 그런데 도둑이 드는 날 밤에는 꼭 이 불상이 주인의 꿈에 나타나 도둑을 막거나  이튿날 도둑이 잡히게 되었다. 어느날  마을에 한 젊은이가 불상을  없애고 도둑질을 하기위해 밤에 불두를 훼손하여 묻었는데 젊은이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즉사하였다. 그때부터  매몰되어 있다가 1960년경 집을 짓기위해 터를 고르다가 현재 형상으로 발견되어 그 자리에 세웠으며, 지금도 소원을 들어주는 불상으로 알려져 초하루나 보름 등 길일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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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전당을 지키는 처사님마져 떠나고 나면 어찌 될 것인가? 비지정문화재가 처한 현실은 비단 영창리 불상만의 문제는 아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문화관광부.문화재청. 지방자치단체. 종단에서 이대로 수수방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현실이 서글프다. 도난방지 대책이 수립되지 않으면 안태고향보다는 못하겠지만 차라리 박물관으로 이건하는 것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201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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