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음성군

음성...동리마을 장승

임병기(선과) 2011. 6. 24. 07:44
728x90

 

 

할아버지 장승

 

네비 방향을 따라 길을 오르내려도 행방이 묘연하다. 그도그럴 것이 사전 준비한 자료에는 불상과 미륵불이 있다고 하였으니 더욱 헷갈릴 수 밖에 없다. 참조로 양덕리에는 고심사 미륵과 중부고속도로 휴게소에 위치한 불상과 동리마을 장승이 있으며, 휴게소 불상은 실내에 모셔져 있어 직원들 근무 시간에만 뵐 수 있다.

 

우연히  만난 분에게 여쭈었더니 확신이 없다며 긴가민가하며 아르켜 주었다. 삼성면 양덕리 동리마을 할아버지 미륵 장승은 큰길가에서 동리저수지 방향으로 가면 들판 입구 도로 왼쪽 밭둑가 돌무더기 위에 길 쪽을 바라보며 서 있다.

 

 

할아버지 미륵 장승은 화강암으로 된 선돌형의 미륵 장승이다. 눈과 눈썹, 코, 입술 등의 얼굴 부분은 음각으로 조각하였으며, 남성적인 듬직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동리라는 지명은 예전에 큰절(한절) 우측에 있는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장승앞을 지나가다다 돌을 던져 코에 맞히면 운수 대통한다는 속설로 인해 논주인들은 돌을 골라내너라고 고생을 했다고 한다. 또한 장승을 땅에 묻으면 동리마을은 풍년이 들지만 다른 마을은 정신분렬증 환자가 많이 발생하여 매장하지 않는다는 재미난 민간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유란자방님과 장승이 왜 1기만 있을까? 라며 이야기 도중에 님이 멀리 건너편을 가르키며 장승처럼 보인다고 한다. 역시 젊음은 좋은것이여!!! 할아버지 장승과 멀리 논을 사이에 두고  비탈진 밭두렁에 할아버지 미륵 장승보다 작은 할머니 미륵 장승이 서 있다.

 

할머니 미륵 장승은 할아버지 미륵 장승보다 작지만 같은 형태이다. 그러나 얼굴 생김새는 여성의 모양으로 조각하였으며, 얼굴과 목 부분을 구별하기 위한 선을 조각하여 놓았다. 할머니 미륵 장승의 아래쪽에는 ‘여(女)’자라고 쓴 명문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지하여장군’이라고 썼던 것으로 여겨진다.

 

 

할아버지 미륵 장승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할머니 미륵 장승은 1900년을 전후하여 만들어 세웠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두 미륵 장승을 마을의 수살막이(고을맥이)로서 영험하게 생각하여 함부로 하지 않는다. 다른 마을처럼 공동으로 제사를 드리던 풍습은 오래전에 단절되었다고 한다. 지자체마디 민간신앙 복원이 활발하게 추진중에 있으므로 양덕리 장승제도 머지 않아 제자리를 찾을 것으로 믿는다.

 

 

장승 ..이문형

해질 녘, 외길에서 만난 벅수가
눈을 부라리며 길을 막는다.

나를 지탱한 모든 무기를 거두고
나의 찌든 삶에서
고유함을 보이라고 한다.


바람도 일월日月도 빼고
추스를 수 없는
깊숙한 인간의 슬픔을 보이라고 한다.


망각 속으로 밀어 넣은
가장 미천微賤한 것을 보이라고 한다.


마음 속 가난이라도 꺼내라고 한다.


어긋난 꿈을
고독의 깊이를 보이라고 한다.


어디서부터 비롯된
나의 뿌리인지 꺼내보라고 한다.


자신을 버릴 때만이
모두가 살 수 있는 것이 자연이라면
그런 사랑을 보이라고 한다.

혼이 나가
내 속을 훌렁 뒤집어 보일 때
껄껄 웃는 장승.

 

 2011.04.25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