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당이 왜 일주문 밖에 있을까? 혹 제천 신륵사 처럼 국사단(局司壇)은 아닐까 했지만 국사당이었다. 국사단은 우리나라에서도 흔치 않은 절집 전각으로 비보풍수의 한 국면이다. 제천신륵사, 해인사, 통도사, 표충사에서 목격할 수 있는 전각으로 어쩌면 사세와 관련이 깊을 듯 하다. 하지만 대법사 전각은 분명 국사당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국사(國師)의 진영이 봉안된 전각이 아니라 내부에는 산신탱과 말을 타고 있는 선비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봉안되어 있다. 이 선비는 대법사와 인연이 깊은 명성황후의 아버지인 민치록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영월 보덕사에도 산신과 더불어 단종의 진영을 모셨지만 전각은 산신각이다. 대법사가 민씨 집안의 원당사찰 이라도 민치록을 봉안하였지만 전각은 분명 이름을 달리해야 할 것이다.
일주문
대법사는 신라 진성여왕(887~897) 때 창건된 고찰로 전해진다. 그러나 창건이후의 자세한 역사는 전해오지 않으나 조선 숙종 때 인현왕후의 오빠인 민진후(閔鎭厚)의 묘를 사찰인근 임야에 쓰면서 여흥민씨의 관리 하에 들어갔다. 이후 묘소를 관리하며 살아가던 명성황후의 부친 민치록(閔致祿)이 꿈에 미륵불을 현몽하고는 땅을 파서 미륵불을 발견하고, 법당을 새로 지어 불상을 봉안했다고 한다. 명성황후가 후일 고종의 비로 책봉되자 절을 원당사(願堂寺)로 개칭하였으며, 민씨 일가의 성원으로 절은 더욱 번성하게 되었다.
대웅전 내부에는 중앙에 불단을 마련하고 석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삼존불을 봉안하고 아미타후불탱화를 모셨다. 삼존불과 아미타 탱은 근자의 작품으로 보여진다.
미륵입상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아 요사를 들렸더니 비구니 스님께서 공덕을 더 쌓은 후에 만나 뵈라며 웃음 짓는다. 미륵불은 대웅전 불단 측면에 모셔져 있었다.
삼배를 마친 후 미륵불을 만나고 있는 등 뒤로 스님이 말씀이 귀를 스쳐간다. "처사님. 어제 저녁 곡차 마셨지예?" 우~ 어찌 저리 예민 할 수 있을까? 꼼짝없이 죄 지은 사람처럼 기가 죽어 스님과 눈도 못 맞추겠더라.
명성황후의 아버지인 민치록이 꿈에 나타나서, 땅에서 파내었다는 미륵불상이다. 불상을 새로 모시고 명성왕후가 태어났으며 절집은 훗날 민씨 집안의 원당사찰이 된다. 일견 사찰에 모신 불상이 아니라 민불 모습이다. 마모가 심하여 형태가 뚜렷하지 않다.
2011.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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