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아산시

아산...평촌리 약사여래입상

임병기(선과) 2010. 7. 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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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면 평촌리. 보물이 있는 절은 당연히 거찰일거라는 단순한 사고는 풍지박산이 되고 그런 사고에 젖은 내행색도 절집도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용담사라고 했다. 창건설화에는 분명 악룡을 물리친 창건주가 나올텐데, 용이 살았던 용담의 위치는 알 수 없고 약사여래상 옆 사적비에는 "용담사는 신라 애장왕 때 원효가 창건했고, 고려 광종 때 혜명조사가 중창을,  그 후 병화로 약사여래불만 남았던 것을  권(權) 아무개가 복원했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원효의 생몰시기와 달라 창건주는 확실하지 않으나 불상의 양식으로 미루어  불교가 왕실에 보호를 받고 고려의 왕권이 확립된 시기인  광종 때 불상을 조성하며 중창했다는 기록에는 수긍이 간다. 어쨋거나 주변을 철거하고(개인 사찰인지, 종단소속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환경정비를 하였으면 좋겠다.

 

 

전국의 여느 불상처럼 약사여래불도 주민들에게는 미륵불로 불리어 골이름이 미륵골이라 한다. 멀지 않은 곳. 은진 관촉사의 관음보살이 미륵불로 널리 알려진 이유처럼 왕권 강화 목적과 신문화사조의 위세도 고토 회복을 바라는 민초들에게는 구원의  메시아인 미륵이었을 것이다.
 

 

나발, 육계는 크다. 귀는 길게 어깨까지 늘어져 있고 상호는 단아하다. 이목구비도 분명하며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짧은 목에는 삼도를 표현했고 법의는 통견으로 어깨부터 발목까지 대칭이다. 두손은 가슴부분에 모아 약합을 감싸고 있어 약사여래불임을 알 수 있다. 무릎에는 동심원 모양의 옷주름이 새겨져 있다. 조성시기는 고려초기라 한다. 

201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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