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서산시

서산...동문동 당간지주, 동문동 오층석탑

임병기(선과) 2010. 6. 2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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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동 지명에 주목하여 검색을 하였지만 읍성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렇다면 서산 관아 동문이 위치한 지역은 아니었을까? 동문동 유래를 서산시청 홈에는 "조선시대에 서산군 대사동면 읍내리(瑞山郡大寺洞面邑內里), 율지리(栗枝里), 교동리(校洞里), 탑동리(塔洞里), 남문원리(南門院里) 지역이었다."라고 명기되어 있어, 동문동과 폐사의 개연성에 집착했기 때문에 교동리란 지명에 혼자 쓴 웃음지었다.

 

폐사 원인이 정확히는 전해오지 않지만 - "동문동(東門洞)에는 지장내(地藏川), 한적골(閑寂村), 돔밖(東門外), 동문거리(東門거리), 밤가시(栗枝), 신시장(新市場), 지장고개(地藏峴), 동문다리(東門橋), 탑동(塔洞), 골말(谷村), 교동(橋洞), 차산(次山), 당간지주(幢竿支柱), 오층석탑(五層石塔) 등의 지명이 있다."-지명으로 미루어 큰가람이 있었음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행정구역은 동문동이지만 거주하신 주민들에게는 대사동(大寺洞) 즉 큰절골 또는 큰절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했을 것이다. 근자에 까지 당간지주가 담벼락의 일부로 사용되었던 까닭도 단순히 무지로 치부해서는 안되며, 우리네 민초들의 심성도 헤아려야 한다. 어쩌면 소공원화된 지금보다도 더 지극정성으로 모셨지 않았겠는가?

 

 

당간지주는 현재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고 땅속에 묻혔던 부분도 노출되어 있다. 특별한 문양없이 소박하게 조성되었고, 상부로 향하면서  약간 좁아지며 상단의 바깥에는 둥글게 모죽임을 하였다. 안쪽에는 당간 고정목적의 홈이 새겨져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초기에 만들어진 당간지주로 전해온다.

 

 

 

당간지주와 같은 사역에 위치한 석탑이다. 삼층까지 만 남아 있지만 4,5층이 결실돤 오층탑이다. 지대석을 2단으로 놓고 2기단을 쌓았다. 기간면석에는 우주와 탱주를 몸돌에는 양유주만 모각하였다. 옥개 전각에는 반전이 보이고 옥개받침은 위로부터 3*4*4 이다. 3층이상부재와 상륜은 결실되었다. 조성시기는 고려말로 보고 있다.

 

 

상기단 면석과 옥개석의 일부로 보인다. 복원시 활용되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큰절이 있었기에 대사동으로 전해 온다고 했다. 큰절? 석탑과 당간지주의 현재 위치가 본래자리 맞을까? 너무 가깝게 서 있다. 추측컨데 어떤 사유로 인해 석탑을 이건하였을 것 같다. 물론 내게는 명확한 자료가 없어 아쉬울 뿐이다.

 

201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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