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장흥군

장흥...구룡리 마애불

임병기(선과) 2009. 10. 25.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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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을 모신 개인 사찰이었다. 수미사 였다. 절집 이름이 참으로 곱다. 이름만큼 정 많은 보살(?)님이 아이와 함께 반갑게 맞아주었다. 절집 뒤편 병풍을 두른 형태의 거대한 바위. 병풍바위에 선각되어 쉽게 보이지 않았다. 적멸보궁 처럼 배불각拜佛閣을 조성하여 실내에서 참배 가능하도록 했다.

 

 

보이나요?

 

 

부정한 마음은 아닌가요?

 

사진 출처...산내들브로그( http://blog.daum.net/kyoung2625/6777853)

 

 

  • 이 마애불은 구룡리 자미마을 뒷편 높이 20m쯤 되는 병풍바위에 새긴 것인데 지상에서 약6m 높이에 음각한 여래좌상이다. 바위면이 평평하지 않고 요철이 심하며 게다가 음각으로 새겨 불상의 전체 윤곽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두정부분인 얼굴모습과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한 무릎 밑으로 옷주름 일부가 선각으로 나타나고 있어 불상임을 알 수 있다.

    머리에는 높직한 육계(肉髻)가 솟아 있고 머리칼은 소발(素髮)로 보이며 눈과 코 입 등이 묘사되었는데 특히 콧등만이 유난히 돌출 되어 있어 인상적이다. 법의는 통견이고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을 결하였으며 무릎으로 내려와서는 음각으로 처리되었으나 마모가 심한 상태여서 정확한 윤곽을 파악할 수가 없다. 
    이 마애불은 고려시대 송광사 16국사중 제6세인 원감국사 충지(圓鑑國師沖止 1226~1292)의 상으로 전해지고 있다. 충지는 바로 이 고장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한 후 출가하였으며 당시 일본과 원나라를 다녀온 적도 있다. 

    『원감국사집』에 의하면「장흥군 부산면 구룡리…국사지적사암면소각국사지상(長興郡 夫山面 九龍里...國師之蹟寫岩面所刻國師之像)」이란 내용이 보인다. 만일 위 기록이 사실이라면 조사(祖師)가 여래가 된 셈인데, 아마 이러한 내용은 충지가 입적한 후 그를 따르는 문하생들이 조사를 숭상하는 마음에서 조각하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상과 같은 충지와 관련된 내용과 더불어 조각기법 또한 지극히 형식화된 음각으로 처리된 점등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고려하대인 13세기경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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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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