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고령군

대가야...산당리, 하거리, 화암리 성혈, 봉평리 암각화

임병기(선과) 2009. 1. 8.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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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림 석재공장을 스쳐 산당리 마을을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와 공장 종사자에게 질문했더니 잘 물었다며 자기가 아니고는 찾을 수 없을거라고 했다. 길가에서 바로 보이는 성혈은 사진과는 차이가 있다며 위치를 안내해주셨다. 위에 보이는 너럭바위 전체에 성혈이 나타나 있다.

 

산당리 성혈은 쌍림면사무서를 지나 점필재 종택을 거쳐 합천으로 가는 방행과, 해인사, 거창방향으로 향하는 삼거리에서 거창 방향이다. 수없이 여러번 왕래한 길이지만 성혈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고령군청 홈페이지, 문화재청에도 자료가 없어 고령에 분포하는 다른 성혈처럼 전문적인 일부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듯하여 아쉽다.

 

 

성혈은 일반적으로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여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며 북두칠성을 비롯 별자리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즉 다산과 풍요를 반복적으로 행하여 생긴 흔적이라고 한다.

 

 

여기에 보이는 윷판형 성혈은 별자리의 움직임인가? 단지 오늘의 기준으로 놀이문화로의 윷판으로는 미칠 수 없지만 일부에서는 윷을 주술, 제례의 도구로 생각하여 윷판을 점술행위로 보기도 한다.

암각화와 마찬가지로 성혈도 정착 농경생활를 시작한 청동기 시대의 유물로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수렵 채취의 생활에서 안정적인 농업을 위해서는 가장 필수적인 것이 물과 날씨다. 대부분 암각화와 성혈이 물가에서 발견되는 원인(遠因)의 하나도 그 이유며, 모체의 물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면 다양한 성기문양도 탄생으로 이해되는 부분이다.

 

 

 하거리(下車里) 마을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오래된 소나무와 왕버들이 동수로 자리한 초입 효자비각 옆에 위치했다. 고령군청 홈페이지에는 "하거라 하는 동명은 하늘에서 선녀가 요봉산에 수레를 타고 내렸다하여 하차란 동명이 생겼으며, 마고선녀가 요봉산 아래 살았다하여 마고실이라 부르기도 하며 요봉산 상봉을 옥녀봉이라한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산당리보다 많지는 않지만 넓게 분포되어 있다.

 

 

위의 사진을 보자 성혈이 아래 4개 위 3개 7개로 보이지 않는가? 보개처럼 비를 피할 수 있는 자연 암반 아래에 있다. 북두칠성 맞는가?

 

칠포리를 비롯 많은 암각화와 성혈에는 위에서 잠깐 언급한 윷판문이 있다. 많은 분들이 농사, 천체관측 용도의 별자리며 그 수는 28개라고 한다. 오늘날 윷판의 29개 점중에 하늘을 상징하는 천원을 뺀 수가 28개와 일치한다. 28은 북두칠성의 사계절 움짐임을 의미(7*4)한다고 한다.

 

택도 없는 이야기를 진행해본다. 아직 성혈,암각화와 관련 이런 논리를 전개한 자료는 보지 못했다.  북두칠성은 북쪽이며 북쪽은 오행에서 물(水)이다. 장례의식에서 널은 칠성판이며, 우리민속에서도 죽어 가는 곳은 북망산천이다. 또한 북은 오색에서 흑(黑)이며 저승사자는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나타난다.

 

물이 탄생을 상징하여 양수가 터진다는 말도 있지만 결국은 우리가 돌아가는 곳이 태어난 곳이다. 불교에서도 저승은 피안(저쪽 물건너 언덕)이며 기독교에서도 요단강을 건넌다고 한다. 절에 산식각에 모셔진 칠성신도 우리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고유 신앙이 불교와 흡습한 사례이며 돌아가신 후 올리는 49재 역시(7*7)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즉 물과, 칠은 죽음을 상징하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암각화, 성혈에 나타나는 북두칠성은 탄생, 풍요와 사계절 별자리 움직임만이 아니라 청동기 시대의 사람들도 두려운 죽음을 표현한 그림으로 현재 우리민속에서 상징하는 사후세계의 원류라고 보면 억측일까?

 

 

운수면 화암리. 성주 보월동 탑 지근이다.

 

 

성혈을 이어주는 선은 무엇일까? 은하수?

 

 

근자에 발견된 운수면 봉평면 순평마을 산록의 암각화다. 내눈으로는 암각화라는 느낌만 겨우 들고 형태는 전혀 구분 할 수 없다. 신문기사를 가져오니 훗날 참고하길 빈다.

 

"암각화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고령군에서 새로운 청동기시대 암각화가 발견돼 주목을 끌고 있다.

 

 

대가야박물관(관장 신종환) 학예연구팀은 최근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에서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벌이던 중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양 형태의 암각화를 확인했다고 18(2008.12.18)일 밝혔다. 새롭게 발견된 봉평리 암각화는 우리나라 선사시대 미술과 신앙 및 제의 등과 관련된 새로운 자료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특히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예가 없는 마제석검(磨製石劍)과 비파형동모(琵琶形銅矛)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청동기시대의 청동기와 석기를 함께 묘사한 최초의 암각화이기 때문이다. 발견된 암각화 주변에서 석기류도 함께 수습돼 암각화의 제작시기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를 확보 할 수 있었다는 점 또한 큰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학예연구팀 관계자는 "지금까지 한국 암각화 연구에 있어서 가장 걸림돌로 남아있던 암각화의 편년문제를 해명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향후 정밀조사를 실시하면 암각화의 제작 시기를 가늠하는 최초의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지금까지 고령군에서는 양전동암각화(보물 제605호), 안화리암각화(경상북도 기념물 제92호), 지산동 30호분 개석암각화 등이 발견됐다. 이번 봉평리 암각화 유적이 새롭게 확인되면서 고령군이 단일 시군으로는 가장 많은 암각화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암각화의 고장'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다."

 

 

2008.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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