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하동군

[스크랩] 하동...쌍계사(1)

임병기(선과) 2008. 6. 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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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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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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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지리산은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19번 도로가 포화지경이다. 영호남 화합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화개장터, 십리 벚꽃 길, 맑은 섬진강과 재첩이 사람의 발길을 잡고 미감을 자극하기에, 쌍계사도 관광코스의 하나로만 자리하여 우리는 쌍계사가 지닌 보물을 언제부터인가 잊어버리고 있다.

 

쌍계사는 산지가람의 진입공간의 전형을 갖추고 있다.절 입구에서 이제는 쉽게 알 수 있는 해강 김규진 필체로 큼직하게 쓴'삼신산 쌍계사' 편액이 걸려 있는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문, 천왕문, 팔영루가 차례로 이어진다. 누각인 팔영루를 우회하면 대웅전 구역으로  일주문으로 시작해서 대웅전까지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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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雙磎寺)는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께서 선종(禪宗)의 六祖이신 혜능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귀국,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 눈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 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

그 뒤 문성왕 2년(840년)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하신 혜소 진감(眞鑑)선사께서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시어 선의 가르침과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하시었으니 후에 나라에서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렸다. 그간에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고산스님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고색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쌍계사는 여러 문화재외에도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쌍계사 입구 근처에는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가 있고, 화개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에도 '차시배지(茶始培地)' 기념비가 있다. 차는 신라 선덕여왕때 당나라에서 처음 들여왔는데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金大簾)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김대렴이 차를 심은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 보급하였다고 한다...한국전통사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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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악한 잡인의 출입을 경계하는 금강문 입을 벌린 '아'금강(나라연 금강),보현동자상  익히 아시겠지만 범어의 첫글자인 ‘아’와 끝 글자인 ‘훔’은,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성과 통일.완성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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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다문 '흄'금강(밀적금강), 문수동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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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없었나 보이지 않았었나? 가람 진입공간 문위에 홍살, 태극 문양은 길상의 상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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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팔영루(八詠樓). 우리나라 불교 음악의 창시자인 진감선사(774년-850년)가 중국에서 불교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 민족에 맞는 불교음악 범패(梵唄)를 만든 불교음악의 발상지이다. 훌륭한 범패 명인들을 배출한 교육장으로, 섬진강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을 작곡했다고 해서 팔영루라고 한다. 범패음곡은 쌍계사에서 원류를 낳고, 쌍계사는 신라에 범패음곡을 널리 보급시킨 중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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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저화상이 카메라에 잡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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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감선사대공령탑비(眞監禪師大空靈塔碑). 탑비는 쌍계사(당시의 이름은 玉泉寺) 창건주 진감선사 혜소스님의 탑비를 조성하라는 임금의 지시에 의해 고운 선생이 글을 짓고 썼으며 환영스님이 새겨, 진성여왕 1년(887년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진감선사 혜소스님은 31세 때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禪宗(선종)을 접하였고, 약 26년 간의 오랜 수행생활 끝에 귀국하게 된다. 경북 상주 북장사(지금의 남장사)에서 약 6년 동안 주석하시던 스님은 삼법화상이 중국에서 육조 혜능대사의 頂相(정상)을 모셔와 세운 경남 하동 화개골 난야터를 찾아 玉泉寺(옥천사.쌍계사의 옛이름)를 창건하니, 삼법화상이 터를 잡은 후 100년 만의 일로, 실질적인 쌍계사 산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혜소스님은 선종불교와 범패음악 보급에 힘쓰시다가 신라 문성왕 12년(850년)  입적하게 된다. 세상의 명리에 초연하며 왕의 부름도 마다하던 스님은 당신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일절 남기지마라는 유언을 남기지만, 후일 선사를 사모하는 후학들의 뜻을 받아들인 임금은 당나라에서 막 귀국한 서른 살 즈음의  문호(文豪) 고운에게 탑비 조성을 지시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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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감선사대공령탑비문...출처/다음

 

『무릇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며, 사람에게 있어서도 나라의 구별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자제들이 승려도 되고 유학자도 되어 서쪽으로 큰 바다를 건너갔도다. 이중의 통역을 거치면서도 학문을 좇아 목숨을 배에 맡긴 채 중국으로 향하였다. 빈 채로 갔다가 채워서 돌아오고 앞은 힘들어도 뒤에는 얻었으니, 마치 옥을 캐는 사람이 곤륜산의 높음을 꺼리지 않고, 구슬을 찾는 자가 驪龍(여룡:검은 용)이 있는 바다의 깊음을 마다하지 않는 것과 같도다.(중략)

 

아름답구나, 해가 동쪽에서 나오니 어두운 곳을 비추지 않음이 없고, 바닷가에 향나무를 심으니 오래도록 더욱 꽃답도다. 어떤 사람이 “선사께서 명도 하지 말고 탑도 하지 말라는 훈계를 내렸는데, 후대에 내려와 우리 제자들에 이르러서는 확실히 선사의 뜻을 받들지 못하였다. 이는 그대들이 구하고자 한 것인가, 아니면 왕이 하라고 명한 것인가? 실로 백옥의 티로구나” 하였다. 아! 그르다고 하는 사람은 또한 그르도다. 명예를 가까이 하지 않아도 이름이 드러남은 수행의 남은 보답이니, 재처럼 없어지고 번개처럼 끊어지는 것보다는 할 때에 할 만한 일을 하여 명성을 대천세계(대천세계)에 떨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龜趺(귀부)가 碑身(비신)을 짊어지기도 전에 임금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새 임금(정강왕)이 이어 즉위하였으나, 질나발과 저가 서로 응하듯이 의리로 부촉한 것에 화합하여 좋은 것을 좇아 하시었다. 다만 이웃 산의 절도 玉泉(옥천)이라 일컬었으므로, 이름이 겹쳐져 백성들의 귀를 미혹하게 할까 염려하였다. 같은 이름을 버리고 달리하려고 할 때는 마땅히 옛 것을 버리고 새것을 따라야 하는데, 이 절이 자리잡은 곳을 살펴보게 하니 洞口(동구)에 두 시냇물이 마주 대하고 있었으므로, 이에 쌍계사라는 題額(제액)을 하사하였다.

 

또 臣에게 명을 내려 “선사는 수행으로써 드러났고 그대는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니 마땅히 비명을 지으라”고 하셨다. 臣이 절을 하며 “예예” 하고 물러나와 생각하니, 얼마 전에 중국에서 이름을 얻었고 책 속에서 기름지고 살찐 것을 맛보았다고는 하나, 아직 성인의 경전에가지 흠뻑 취하지 못하였고 오직 깊이 우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함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하물며 불법은 문자를 떠났기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 않은가. 굳이 말하게 되면 수레가 북으로 향하는데 남방인 郢(영)나라로 가려는 것과 같도다.

 

다만 임금의 보살핌과 門人들의 큰 바람으로 문자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의 문에 밝게 보여줄 수가 없겠기에, 감히 몸으로 유교와 불교를 겸하고 힘으로 五能(오능:글을 짓기는 하지만 깊은 뜻은 다 표현하지 못한다는 의미)을 본받아 비록 돌에 의탁한다 할지라도 부끄럽고 두렵도다. 그러나 道는 억지로 붙인 이름이니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겠는가? 석각으로 새길 만한 글을 臣이 어찌 감당하리오마는, 거듭 명령하신 임금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아래와 같이 명을 짓노라.

 

입을 다물고 선정을 닦았으며
마음으로 불타에 귀의했도다
근기에 무르익은 보살이라
넓혀도 다른 것이 아니로다
용맹스레 호랑이 굴을 찾아
멀리 바다를 건너셨으니
가서는 秘印(비인)을 전해받았고
와서는 고국 신라를 교화했도다
그윽하고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바위등에 터를 잡아 절을 지으니
물에 비친 달이 마음을 맑게하고
구름과 도랑물은 흥을 붙었도다
산은 성품과 더불어 고요하였고
골은 범패와 더불어 응하였도다
(중략)

 

바다는 스스로 움직이지만
산이야 어찌 움직이겠는가
생각도 없고 분별도 없으며
깎을 것도 새길 것도 없었도다

(중략)

 

지혜의 가지가 두루 빼어날 즈음
법의 기둥이 문득 무너졌으니
깊은 골짜기가 처량해졌고
연기와 칡넝쿨도 초췌해짐이로다
사람은 가고 도는 남아 있건만
끝내 잊을 수가 없었기에
뛰어난 선비가 소망을 펴자
임금이 은혜를 내리셨도다
法燈(법등)은 신라에 전해지고
탑은 산 속에 우뚝 섰으니
天衣(천의)에 의해 반석이 다 닳도록
영원토록 佛門(불문)에 빛나기 바라보라

 

 

887년(진성여왕10 7월 일에 세우고
奐榮(환영)스님이 글자를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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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부. 목이 짧고 어색하다 육각 귀갑이 등에보이고 비신 받침에는 구름이 흘러가고 있다. 사산비명(四山碑銘)은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만수산 성주사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경주 초월산 대숭복사비, 문경 희양산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를 말한다.

 



쌍계사부도/문화재청


탑비의 주인공, 진감선사 부도, 이번 답사에서도 인연을  짖지 못하고 문화재청 자료를 가져온다.

 

쌍계사 북쪽 탑봉우리 능선에 위치한 이 탑은 진감선사(眞鑑禪師)의 사리탑으로,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아래는 받침부분인 기단(基壇)이고 위는 머리장식부분이다.기단은 엎어놓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아래받침돌 위에 8각의 가운데받침돌을 올렸다.

 

그 위로 다시 솟은 연꽃무늬를 새긴 윗받침돌을 올려 대칭적으로 표현하였다. 기단 위에는 두꺼운 괴임돌이 삽입되어 눈에 띄는데 구름무늬가 가득 새겨져있다. 탑신의 몸돌은 밋밋한 8각이다. 지붕은 넓으며 밑면에는 서까래인 듯 보이는 받침을 두고 있다. 추녀는 끝에서 위로 들려있고 여덟 곳의 귀퉁이 끝에는 아름다운 꽃조각이 앙증맞게 솟아있다.

머리장식으로는 보개(寶蓋:지붕모양의 장식)가 있고 짧은 기둥 위로 타원형의 돌이 솟아 있다.  모든 부재를 8각형으로 조성한 탑이며, 각 부의 비례가 적당하지 않고 조각도 생략되거나 형식화되는 과정을 보이고 있다. 탑비와 함께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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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앞 석등. 팔각형의 하대석에 복련이 보이고 팔각원당형 간주석은 상대에는 앙련을 조각하였으며, 화사석과 옥개석은 없어졌다. 현지 상대 위에는 석탑의 양련과 보주가 뒤집어 올려져 있다. 토일신라시대 석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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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 맞은 편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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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옆 고려시대 마애불. 바위에 감실을 파고 불상을 돋을새김하였다. 소발, 통통한 얼굴로 귀는 어깨까지 내려가고 법의는 두툼하며 법의 안에 숨겨진 수인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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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아주 가끔 내 흐름의 끝을 자문해본다.

 

하지만

 

흐르는 물처럼 구덩이를 만나면 고였다 흐를테고,

 

둑을 만나면 돌아서 흐를듯하니

 

결국.....

 

200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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