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구멍집
대구에 거주하는 사람이면 한 번 쯤 방문했을 민속원이다. 요즘은 상황이 변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아이들 초교시절에는 방학과제물 필수 답사 코스였다. 지금은 안동 민속박물관,경북북부 지자체에서 복원과 보존을 하여 쉽게 볼 수 있다.
안동댐 준공으로 영양 남시 집성촌인 안동 월곡면 도목동에서 이건하였다. 본채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집이다. 전열에는 봉당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외양간을, 우측에는 부엌을 두었으며, 후열에는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건넛방을, 우측에는 이통간의 안방을 각각 배치하였다고 한다.
엄동설한을 보내기 위해서는 온기 보온이 절실했을 것이다.
장독대
이제는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까치구멍집. 구계서원
易東 禹倬선생을 모시기 위해 건립한 서원인데, 원래 안동군 월곡면에 있던 것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1975년에 현재의 위치인 영남대학교 민속원으로 이건하였다. 이건할 당시에는 강당인 독역재 밖에 없었으나, 2000년 11월에 慕賢祠, 내삼문, 일신재, 시습재, 진덕문을 복원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강당. 정면 측면 5*2칸 팔작지붕 허튼돌 막쌓기 기단정면 3칸 마루 좌우에 방을 둔 영남지방 강당의 전형이다.
역동 우탁. 다음 백과사전에서 가져 왔다.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천장(天章)·탁보(卓甫·卓夫), 호는 백운(白雲)·단암(丹巖). 역동선생(易東先生)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천규(天珪)이다. 1278년(충렬왕 4) 향공진사(鄕貢進士)가 되었다. 과거에 급제하여 영해사록(寧海司錄)으로 부임했을 때 영해지방의 사람들이 팔령신(八鈴神)을 극진히 섬기는 등 폐해가 심하자 신사(神祠)를 철폐했다.
1308년(충선왕 즉위) 감찰규정(監察糾正)으로 있을 때 충선왕이 부왕의 후궁인 숙창원비(淑昌院妃)와 밀통하자 죽음을 무릅쓰고 극간했다. 그뒤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인 예안에서 학문에 전념했으나 충숙왕이 여러 차례 부르자 다시 벼슬길에 올라 성균좨주(成均祭酒)로 치사(致仕)했다.
그는 합리적이고 사변적인 학자로서 당시 불교나 도가(道家)에 비해 사변이 약했던 유학의 학술과 학문적 기본소양을 갖추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원나라를 통해 정주학(程朱學)이 전래되었는데, 특히 정이(程頤)가 주석한 〈주역 周易〉의 〈정전 程傳〉을 터득해 학생들에게 가르침으로써 후학들이 그를 종사(宗師)로 삼았다 한다. 유작으로 시조 2수가 전한다. 예안 역동서원(易東書院), 안동 구계서원(龜溪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사당 모현재
2008.0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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