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경산시

[스크랩] 경산...시립 박물관

임병기(선과) 2008. 6. 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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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원효,설총상

 

경산시립 박물관이 개관하였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발길이 쉬 닿지는 않았었는데  마침 자인공단 업체방문 계획에 맞추어 들렸다. 박물관 입구에는 경산에서 태어난 일연 원효 설총 세분 성현의 동상이 자리했다.  그나저나 경남 합천 출생 큰 인물 세분은 확정(?)되었는가? 5공시절에는 무학대사, 남명선생, 전두환대통령이라고 하여 더이상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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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박물관, 사찰 등 흔히 볼 수 있는 연자방아는 소나 말로 연자돌을 굴려 곡식을 빻는 도구로서, 경산에서는 `돌방아`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연자방아는 윗돌과 아랫돌만 남아있고 나무로 된 틀과 가운데 네모난 구멍에 끼우는 뺑이 등은 없다. 연자방아는 설치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보통 한 마을에 하나씩 마련하고 공동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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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단은 멸실되었고 남아있는 탑신과 옥개석도 1,2층인지 2,3층인지 모호하다. 아래 두층의 탑신, 옥개석과 상륜부(?)는 다른 돌로 보이며 4단의 옥개받침이 있다. 몸돌 폭, 받침의 약화, 크기로 미루어  고려시대에 조성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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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좌상이라 했지만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어 보살상이 옳은 표현 아닐까? 답사매니아들에게는 혹 눈에 익은 불상 같지 않는가? 아직도 불상인지 보살상인지 논란인 김천 수도암 약광전 불상을 떠올려보라. 투박하긴해도 보관, 통견의 법의 ,넓은 무릎, 무릎부분의 도식적 주름이 닮아 보인다.

 

화강암에 광배와 고부조의 불상을 새겼다. 수도암 불상은 약함을 들고 있으나 이불상은 항마촉지 수인으로 판단되며 마모가 심해 얼굴을 비교할 수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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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이라고 하지만 조선시대 민불은 아닐가?  민불도 미륵불도 민초들의 아픈 상처를 달래주고 ,아들 딸 점지해주었으니 그만이지 호칭이 무슨 문제인가? 가지런히 가슴앞에 모은 수인이 재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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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부.이수. 탑신은 멸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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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형태의 석등이지만 투박하고 비례가 맞지 않아 어정쩡하며 화사석의 모죽임, 감실처럼 보이는 화창이 다른 석등에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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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앞에 세우는 문무인석. 두손에는 내가 늘 컨닝페이프(?)로 떠벌리는 홀을 들고 있는 문관 석인상이지만 우측은 어쩐지 무인석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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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근석. 예전에는 마을에 널리 분포한 민속물로 기자신앙, 풍요, 권위의 상징이며 음기가 강한 지역에는 비보책으로 조성하기도 했다.('성황당 고갯마루에 서서' 게시판 검색하면 우리나라 남근석,여근석 자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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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유적은 신림사 옛절터에서 수습되었다고 전해지며 일제강점기 시 일본인 정원 장식물이었다고 한다. 묘한 생각이 스친다. 스님 무덤을 남근석을 경계로 문인석이 수호하는 역설적인 모습, 불교을 억압한 유교, 배척받던 민속신앙도 사후 세계에서는 공존공생하며, 인생은 일장춘몽임을 암시하는 듯....

 

2008.01.30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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