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군위군

[스크랩] 팔공산 자락...군위 한밤 마을

임병기(선과) 2008. 6. 7. 18:45
728x90

 

석탑기단

 

가을이다. 결실의 계절이지만 풍요로운 느낌보다는 심연에서부터 스산한 바람이 이는 것은 나이탓일가? 그립다. 너무 그립다. 유년의 고향집, 돌담길, 바자울, 초가 ,가을들판. 그런 향수를 달래 줄 답사지가 팔공산 자락 군위 한밤마을이다.

 

얼마전까지도 오지었겠지만 팔공산 순환도로 개통후에는 답사매니아들에게는 팔공산자락 불교문화재 답사동선에서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 했다. 흔히들 전통마을에는 고택만 떠올리겠지만 한밤마을은 민속신앙, 마을 숲, 석불, 돌담 등 답사거리가 넘쳐난다. 금년에는 전통마을로 선정되어 '돌담길 마을축제'를 개최하였다고 한다. 김제의 지평선 축제와 더불어 아름다운 축제이름에 포함시키고 싶은 것은 나의 욕심인가?

 

한밤마을은 대율리, 율촌의 우리말 동네이름으로 부림 홍씨 집성촌이며 고려 때 까지는 一夜, 大夜로 불리었으나 1390년 문과에 오른 홍씨의 14대손 홍노(洪魯)라는 선비에 의해 夜 자가 좋지 않다 하여 밤 율栗자인 대율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한밤마을 입구에는 동수(洞藪)인 “한방성안”이라 불리는 솔숲이 자리하고 있다. 순환도로 좌우측 노송은 숲을 이루어 한겨울에는 북풍을 막아주는 방풍림이며 한여름에는 시원한 휴식처가 되어 마을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오는 주민들의 문화공간이다.

 

또한 마을숲은 마을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비보림, 멀리서 전염병을 가져오는 역신(疫神)의 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방패막이, 사악한 기운의 접근을 봉쇄하는 고을맥이(마을맥이)등 마을지킴이 역활을 하여 주민들에게는 신성공간으로도 대접받는다.


마을숲속 회의장

 

오래전 들렸을 때 마을 노인께서 그러셨다. "뭐 볼 것이 있다고 왔노! 예전에는 탑이 있었는데 하룻밤새 누가 훔쳐갔다. 사람이 자꾸 들락거리마 안좋은데..." 아직도 도난당한 석탑 몸돌을 찾지 못한 채 기단만 남아 있다.

 

마을 숲속에는 동민의 회합장소인 듯한 다랭이논 같은 계단형 석축이 보인다. 겨울이면 더욱 뚜렷하지만 예전의 활발했던 동민들의 언로의 장은 요즘 세태를 반영하듯 허물어져가고 있다.


 

한밤성안 숲의 하일라이트는 솟대이다. 솟대가 있어 마을 숲이 빛나며 비보림 역활의 1차 마을지킴이에 이어 최종지키미가 축구의 스위퍼 역활의 솟대인 것이다. 솟대에는 진동단이라는 명문과 조성년대(1966)가 표기되어 있다. 진동단은 마을의 동쪽 기운이 강하기에 기운을 약화시킨다는 의미이다.

 

화강암 돌기둥 위에 앉은  오리모양의 솟대는 다양한 상징성을 가진다. 우선 화기에 약한 마을을 비보하기위하여 물속에 사는 오리를 조성하며, 또한 오리는 이승과 저승을 오간다는 믿음으로 월동후 돌아가는 곳이 북쪽이며 저승은 북쪽에 있다는 우리의 민속신앙에 근거로 머리는 북향한다.

 

우리의 전통마을 역시 농경문화권의 풍속으로 땅의 기운 즉 음기가 가장 강한 정월 보름전후에 동제를 올려 한해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한밤마을 솟대에 걸린 금줄로 미루어 금년에도 동제를 모셨음을 알 수 있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물이다. 그래서 오리를 조성하여 풍요를 기원하며, 한밤마을 솟대는 예전에 홍수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어 그런 재앙이 재발할 경우 물위를 오리처럼 자유롭게 유영하여 목숨을 지키라는 의미라고 위에서 언급한 마을 어르신에게 들은 기억이 있다.

 

그나저나 다녀온 사람들마다 입에 올렸던 이야기가 주민들에게 들어갔는지 바가지로 조성했던 오리는 세련미의 현대풍으로 바뀌었지만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는다. 토속미가 풍기는 자연스럽고 못생겨도 인간적인 솟대가 기다려진다.


대율사 용화전 석불

 

한밤마을에는 예전에 마을 전체가 큰절이었음을 증명하듯 석불입상이 모셔져 있다.

덜떨어진 유생들이 전국사찰의 석불을 박살내었건만 한밤마을 선비, 유생들은 그들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경배했던 석불을 보호하였다. 그 전통, 고집, 마을을 지키려는 애향심이 새마을 광풍이 불었던 유신시대에도 마을 돌담길을 지켜낸 정신이었던 모양이다.

 

지대석 없이 대좌에 서있는 입불은 광배는 멸실되었다. 용화전 전각으로 미루어 마을사람들에게는 미륵불 경배받는 듯하다.미적 감각이 둔한 탓에 문화재청 자료를 가져온다.

 

"낮고 넓은 육계(肉계), 둥글고 우아한 얼굴, 작고 아담한 눈과 입, 어깨까지 내려진 긴 귀 등 세련된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오른손은 외장(外掌)하여 여원인(與願印)을 짓고 있는 반면, 왼손은 내장(內掌)하여 가슴에 대고 있어 독특한 수인을 이루고 있다.

양 어깨에 걸친 통견(通肩)의 불의(佛衣)는 가슴과 배를 지나 무릎까지 얕은 U자형 주름을 이루고 있는데, 팔목의 옷주름이나 직립한 긴 하체와 함께 당당하지만 다소 경직된 인상도 보여준다. 이처럼 다소 딱딱한 면도 보여주고 있지만 세련되고 당당한 신라(新羅) 불상(佛像)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 귀중한 석불입상이라 하겠다."

 

예전에는 보살님이 늘 계셨는데 요즈음에는 한 번도 뵐 수가 없어 허전함이 가을을 더욱 느끼게 하였다. 작은 정원 가득 만발한 가을꽃을 가꾼 댓돌위에 하얀 고무신만 남기고 출타한 보살님의 고운 얼굴이 뵙고 싶다.


 

마을숲과 대율사 석불 답사후에는 이제 길게 늘어선 돌담길을 따라 옛이야기에 젖어 볼 차례이다. 우리의 전통을 깡그리 허문 새마을 운동 때도 무너지지 않은 돌담이지 않는가? 문학적 감각을 갖춘 이는 돌담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겨 멋진 시라도 한 수 그려내겠지만 난 나훈아의 '물레방아 돌아가는데..." 노랫가사만 떠오르더라!

 

가을. 가을날에는 유년의 아련한 기억을 반추해보자. 돌담길을 걸어간 초동 아니 나의 모습도, 작은 헛기침으로도 마을의 어른으로 존경받던 할아버지도 떠올려보자. 이즈음 이골목에서 우리의 삶을 한번쯤 자문해보는 것도 가을이 주는 큰 선물 아닐까?

 

감상적인 내방객의 심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표정한 한밤마을의 명물로 자리잡은 돌담은 1930년 마을을 풍지박산내고 초토화시킨 홍수 때 떠내려 온 돌로 축조하였다고 전해지며 고풍스런 마을 분위기와 더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청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아니다 한밤마을의 모든 골목은 마을 중앙 대청으로 통한다. 내고향마을 정중앙 배꼽마당이 있음직한 자리의 대청. 예전에는 천자문을 읊던 아이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마을을 휘감았겠지만 모두들 떠나고 아이울음소리 끊긴지 오래된 마을에는 지나온 세월을 되새김하는 어르신들의 긴 한숨만 가득한 경로당으로 남아있다.

 

모르긴해도 마을전체가 절집이었다면 분명 절집 중앙이었을텐 조선전기에 건립 후 임란에 불타고, 1632년에 중창되었으며 정면 5칸, 측면 2칸 크기의 덤벙주초에 두리기둥이다.


쌍백당

 

대청옆에는 한밤마을 고풍스런 분위기에 어울리는 고가가 자리했다. 남천고택은 250여년 전에 부림 홍씨 우태선생의 살림집으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고택 사랑채 상량문에 "숭정후(崇禎後) 상지(上之) 즉위이년(卽位二年) 병신삼월십칠일(丙申三月十七日) 신시(申時) 수주(竪柱) 상량(上樑) ”이라는 명문으로 미루어 현종 2년(1836)에 중건했음을 알 수 있다.

 

고택은 본래 모습이 아니며 중문채와 아래채가 철거되어 현재는 ㄷ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 사당이 남아 있다. 쌍백당은 사랑채의 당호로 2칸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었으며 마루를 한켠으로 배치한 구조가 이색적이다. 안동 학봉종택처럼 바깥마당에 잔디가 깔려있어 마음이 편치않았다.

안채

 

인기척은 없지만 안주인의 심성처럼 정갈한 안마당 한켠 장독대에는 가을볕이 유난히 가득하다. 안채는 부엌·안방·대청·건넌방·헛간·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청 위에는 다락이 있는 듯하다. 남천고택 안채는 대청에서 후원으로 통하는 벽면에 문을 많이 내어 다른 고택에 비해 개방적이란 느낌이다.


안채 후원

 

차경. 우리조상들은 집안에 조경을 삼가고, 문을 열면 산수가 가득 담을 넘어 대청으로 들어오는 이른바 경치를 빌려온다고 했지 않았던가? 남천고택도 그러하지만 안채의구조가 퍽이나 개방적인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은 근시안적 안목일련가?

사당

 

살고있는 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남천고택에서도 사당만은 얕은 돌담을 두르고 신성공간으로 남아있다. 자리해 있기만해도 가을 정취에 들뜬 우리에게 장엄, 엄숙함으로 다가와 옷깃을 여미게한다.


 

돌담에 낀 파아란 이끼처럼 많은 희노애락을 간직한 한밤마을

그 곳은  옛정을 찾아가는 길이며 잊혀진 고향을 반추해보는 여정이다.

가을. 가을날에는...


2007.10.07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메모 :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