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청도군

[스크랩] 청도 / 임당리 김씨 고택...내시 가옥

임병기(선과) 2008. 6. 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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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부터 청도는 많이도 헤맸지만 운강고택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절집 순례로 끝을 맺었었다. 그러다 2(?)년전 조선일보를 접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이 운강고택 지척에 임당리 김씨 고택으로 칭해진는 내시 집안 가옥이 있다는 기사였다.

 

이 집은 16세기부터 대대로 내시(內侍·거세된 남자들로, 임금의 시중을 들거나 숙직 따위의 일을 맡아보던 환관)가 살아온 집이다. ‘청도 임당리 김씨 고택’으로 명명된 이 집을 1월 31일 문화재청이 중요민속자료 245호로 지정했다. 내시 가옥으로 국가지정문화재가 된 것은 이 집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이 최근 조사한 결과, 김일준(金馹俊·1863~1954)의 가첩(家牒·한 집안의 혈통을 적은 족보)이 나왔다. 이에 따르면 16세기에 어느 내시가 이곳에 정착한 이후 김일준까지 16세(世)였고, 내시들은 궁을 나온 뒤에는 대대로 이곳에 정착해 결혼까지 하고 살았으며, 자신과 성(姓)이 다른 남자 아이 한 명을 독자(獨子)로 입적해 가계를 이은 것으로 기록됐다.

 

내시 중에는 침전의 불을 끄는 사람도 있었다. 한옥은 19세기에 현재처럼 다시 지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집안에 마련된 사당에서 ‘강희(康熙) 25년’(1686년)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나와 이 집의 오랜 내력을 알려주었다. ...조선일보

 

출처/조선일보

 

사랑채

 

솟을문을 열고 들어가면 넓은 사랑마당을 안고 두리기둥,정면 4칸, 팔작지붕, 불발기창이 고운 낮은 기단 사랑채가 대문을 향해 있다. 기둥밑 하얀 부분은 습기 방지를 위해 소금을 넣은 흔적이다. 사랑채는 안채로 통하는 작은사랑채를 바라보고 있어 안채 출입자를 감시한 것 처럼 보여 여성의 생활동선이 제한 목적이라지만, 어쩌면 사랑이 넘친 결과 아닌가?  좌측은 문간채다.

중문옆 작은사랑채 눈꼽채기창(?)과 내외담(?)

 

안채로 통하는 중문 옆 작은 사랑채에 달린 눈꼽채기창으로 솟을문을 들어서는 사람이 누구인지 관찰할 수 있도록 작은 창을 3개 설치했다. 안채가 맞배지붕인데 비해 팔작지붕인 것은 남녀 위계를 상징한 것일까?



안채

 

사랑채가 두리기둥, 팔작지붕이라, 안채는 방형기둥,  맞배지붕일가? 남향구조가 가능함에도 서북향 좌향은 궁궐을 향한 것이라 한다. 궁을 나온 후에도 님 향한 일편단심을 보여주는 사례인지 억지 해석인지 알 수 없으나 흔한 주택배치는 아니다.

 

외형상 두개의 고방, 작은 사랑채로 인해 ㅁ字형이며 전면에 툇마루와 쪽마루를 이어 놓고, 마루 뒷문은 개방하여 경관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구조이다. 후원에는 낮은 기단에  습기, 곤충 접근 예방 목적으로 굴뚝을 낮게 조성하고 장독대가 있다.


 

사당 정료대

 

작은 사랑채옆 작은 사랑마당을 통하면 독립공간에 사당이 모셔져 있으며 뜰에는 중대가 높은 정료대가 낯설다. 본래의 배치를 복원한 것인지 사당 앞에는 연지가 조성되어 사대부 가옥배치에 충실한 구조다.담 너머로 중문과 붙어있는 작은 사랑채 팔작지붕이 보인다.

 

대문이 잠겨 잠시 머뭇거리다  무너진 담을 넘어 선입견 가득한 눈과 마음으로 고택을 둘러보았지만 그들도 사람인데 구태여 '내시 집안 가옥'이라 부를 필요가 있을까? 연산군 시절 김처선과, 내시의 무덤이 떠오르는 것은...

 

2006.02.18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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