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 개편으로 이제 금릉이라는 지명은 공식적으로 사라졌지만 그 지명은 중국 동진의 수도 금릉과 유사한 지형에서 유래한 것으로,즉 "김천을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이라고 하는데 기원이 중국의 금릉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동진 수도 금릉에 봉우리 셋과, 진천,회천 두강이 있었듯이 김천에도 황악산,고성산, 금오산의 삼산, 감천,직지천을 이수로 여겨 김천의 풍류객들이 금릉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교동 연화지의 봉황대, 황학산(황악산)등의 이름도 이때 건너온 말이다."(내고장 의미찾기...한국 통신)
내고장 성주에서 가장 지근의 도시가 대구, 왜관, 김천인 탓에 유년을 돌이켜 보면 미루나무가 도열한 황톳길 신작로를 달리던 김천행 대한교통 버스에 얽힌 애뜻한 추억도 한둘이 아니다. 또한 6~10대 조부모님의 산소가 구성과, 지례에 있으며, 대학시절 퍽이나 친하게 지냈던 놈들도 김천고 출신이 여러명 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김천은 고향 같다는 느낌 지울 수 없는 고을이다.
구성 / 모성정
참 많이도 지나다녔던 길이었지만 김천의 잊혀진 문화유산을 찾는 동선을 조사하던 중에 모성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향후에도 찾지 않는 아니 어쩌면 외면당한 우리 옛님들의 자취를 더듬는 여로에 예기치 못했던 횡재는 계속되지 않을까?
모성정은 1929년 이현기가 그의 선조 초당 이장원(1560~1649)을 기리기 위해 바위의에 세운 정자다. 지금은 풍광이 변했겠지만 뒷산과, 앞을 흐르는 내, 한가로운 전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로 초당 이장원은 이곳에서 글을 읽고 시를 썻다고 한다.
자연에 묻혀 사는 선비가 낚싯대를 던지고자 하고
문왕이 수레에 실려 돌아오기를 싫어하도다.
충효밖에 할일이 없으니
굴암변에서 헛되이 늙었도다.
구성 / 방초정
방초정과 모성정은 지근에 있다. 사진의 이층누각이 芳草亭이며 우측의 언덕처럼 보이는 것은 왕버들이다. 방초정은 1625년 건립한 세칸 두칸의 겹처마 팔작 이층누각으로 이층에는 가운데에 벽이 없이 창호로 바른 온돌이 깔린 방이 이채로우며 사방에는 시문이 새겨진 액자가 즐비하다.
우리나라 명승지에 예외 없이 걸린 팔경 현판이 이곳에서도 보인다. 누마루에 신발을 벗고 올라 눈앞의 인공연못에 눈을 던지니 두개의 방형의 섬이 특이하며, 연못 둑의 나이든 왕버들 세그루가 유년의 내고향을 반추하게 한다.
팔경의 하나인 금오산 아침구름. 응봉산의 낙조를 즐겼을 시인묵객을 그리는 것은 택도없는 나만의 사치로운 상상이겠지만, 어쩐지 방초정 옆 전각속에 서 있는 화순 최씨, 풍기 진씨의 열녀비가 야릇한 나락으로 빠지게 하더라.
200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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