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계사
부처님께 참배 올리고

삼층석탑 순례
https://12977705.tistory.com/8729030

펼쳐진 전경을 뒤돌아 보며 감탄사 연발

아직 800미터

개선문






섬진강과 남해?

마지막 철계단

그냥
무념무상

천왕봉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장사진, 인산인해
지리산(智異山)
경상남도의 하동군, 함양군, 산청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구례군, 전북특별자치도의 남원시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있는 산이며 백두대간의 종점이다.1967년 최초의 대한민국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483.022km2의 가장 넓은 면적을 지닌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둘레가 320여 km나 되는 지리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봉우리가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20여 개의 능선 사이로 계곡들이 자리하고 있다. 1967년 12월 29일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위키백과 발췌)

그 산에서도 기다리지 못하고
이렇게 흔적을 남깁니다.
우리나라에서 지리산을 가장 사랑하는 산꾼의 한 사람인 이영규 선생이 나의 지리산 등반 소식을 접하고 천왕봉 천주·일월대 각자를 찾아보라고 톡을 보내왔습니다. 아래의 천주와 일월대 자료는 이영규 님의 지리산 인문산행을 기록한 "도솔산 연소재"에서 발췌 정리하였습니다. 도솔산 연소재 https://lyg4533.tistory.com/

천주天柱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기둥처럼 우뚝하게 솟아 있다는 의미이다. 와황석(媧皇石)이라고도 한다. 와황(媧皇)은 상고 시대 제왕(帝王)인 여와씨(女媧氏)를 가리키는데, 일찍이 공공씨(共工氏)가 축융(祝融)과 싸우다 부러뜨린 천주(天柱)를 “여와씨가 오색의 돌을 구워 보수하고 자라의 발을 잘라 사방을 지탱할 기둥으로 세웠다.〔女媧氏 鍊五色石以補蒼天 斷鰲足以立四極〕”라고 한다. 《淮南子 卷6 覽冥訓》 중국의 오악(五岳)인 형산(衡山)에 천주봉이 있다.

천주(天柱)는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기둥처럼 우뚝하게 솟아 있다는 의미이다. 한유(韓愈)의 謁衡嶽廟遂宿嶽寺題門樓(알형악묘수숙악사제문루) 시에 "자개봉은 길게 뻗어 천주봉에 닿았고, 석름봉은 솟아올라 축륭봉을 쌓았다네.[紫蓋連延接天柱 石廩騰擲堆祝融]"라는 시구에 천주(天柱)가 있다. 김종직은 1472년 8월 14일 천왕봉에서 한가위 달맞이를 천주(천왕봉)의 즐거운 놀이(勝遊天柱)로 표현하고 있다. 추가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일월대와 같은 정태현의 필획일 가능성이 있다.
中秋天王峯不見月[중추절에 천왕봉에서 달을 보지 못하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
抽身簿領陟崔嵬 : 공무에서 잠시 벗어나 높은 산에 올랐는데
剛被良辰造物猜 : 좋은 날 조물주 강한 새암을 받는구나.
霧漲寰區八紘海 : 운무는 천지에 넘쳐서 팔방(팔굉)이 바다이고
風掀巖石萬搥雷 : 바람이 바위에 몰아쳐 뇌성벽력을 치네.
勝遊天柱知難繼 : 천왕봉 달맞이 놀이(승유) 계속되기 어려워
淸夢瓊臺未擬回 : 경대의 맑은 꿈 다시 함을 헤아리지 못하겠네.
時有頑雲暫成罅 : 때때로 무지막지한 구름 잠시 틈을 만들지만
誰能取月滿懷來 : 누가 보름달을 취해 가슴에 품고 올 수 있으리.

일월대(日月臺)
정태현서(鄭泰鉉書)

일월대日月臺
일월대(日月臺)는 글자 그대로 일출과 일몰, 월출과 효월(曉月, 새벽달)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상봉(上峯), 천주(天柱)와 더불어 천왕봉을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이다. 일월대(日月臺)는 1643년 박장원의 「유두류산기」에 처음 등장한다. 1719년 신명구의 「유두류일록」, 1724년 조구명의 「유두류산기」, 1724년 정식의 「두류록」에도 보이는데, 지리산 천왕봉 정상을 가리킨다.

죽헌(竹軒)은 정태현(鄭泰鉉, 1858~1919)
1924년 강계형(姜桂馨, 1875-1936)의 두류록에 '봉우리 남쪽은 일월대인데 오르면 일출과 일몰, 월출과 월몰을 볼 수 있는 까닭으로 지어진 이름이며 새로 새긴 대의 이름자는 크기가 팔뚝만 한데 정죽헌이 쓴 글씨이다.[峯之南日月臺上可望日月之出入故錫名而新刻臺名字書如腕大乃鄭竹軒所書也]'라고 하였다. 죽헌(竹軒)은 정태현(鄭泰鉉, 1858~1919)의 호이다. 정태현(鄭泰鉉)은 문헌공(文獻公)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의 14대손으로 대한제국기(1901년) 충북관찰사,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만석꾼의 부호로 수해와 흉년이 들면 백성들을 구휼하여 여러 곳(함양 휴천면, 충북 음성) 등에 영세불망비가 있다. 하동정씨 문헌공파 세보와 죽헌집 가장에 따르면 ‘1901년 충북관찰사로 부임하여 해를 이어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 죽자 함양 본가에서 수천 석의 곡식을 운반하여 道民들을 구휼하였다.’고 한다.
석각의 시기는 1886(병술)년으로 죽헌공이 28세 때의 일이다. 죽헌 정태현이 일두의 발자취를 좇아 두류산을 유람하고 상봉에 올라 시를 짓고 각을 하였다. 1924년 강계형의 두류록에 '새로 새겼다.(新刻)'라는 기록은 본래 있던 석각이 마모되어 다시 새로 새겼을 가능성도 있다. 1905년 벼슬에서 물러나 도숭산 아래 숭산정사(崇山精舍)를 짓고 후진을 양성한다. 개평 마을에 관찰사댁이 있는데, 화재로 소실되어 빈터만 남아있다. 이곳이 바로 숭산정사(崇山精舍) 터이다. 죽헌공이 태어난 생가는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지금은 후손인 종손자(從孫子, 하동정씨 문헌공파 종회장) 정천상 님이 살고 있다. 일월대 석각 측면 바위에서 정근상(鄭近相, 1893∼1934)의 인명 석각도 확인하였다.
이영규 선생에게 감사드립니다.

먼 훗날
아니지
이제는 마지막 추억으로 남겠지요
202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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