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

회갑 기념 베트남 여행 (1)

임병기(선과) 2026. 4. 17. 15:55
300x250
300x250

2017년 친구들과 다녀온 여행기 옮겨왔습니다.

 

성주초교 59회 동창들과 떠난 회갑여행

 

1.일시:2017.08.30~09.03

2.여행지:베트남 다낭 일원(다낭.호이안.후에.바니힐)

3.참석자:21명

4.여행사:(주)대림관광여행사 / 대구

 

여행 일정을 사진으로 엮어 보았습니다.

다낭

인구 100만명의 베트남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다낭은 한때 북베트남의 사이공이라 불릴 만큼 경제적으로 번창했던 곳이며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기지였다.

19세기경에는 프랑스 식민정부의 중요 항구였고, 현재의 베트남 영역을 갖추기 전, 고대 시기에는 참 족의 근거지였던 역사적인 곳이다.

 

다낭은 한 강(Song Han)을 두고 동쪽의 선짜 반도와 서쪽의 시가지로 나뉘는데, 송한교가 두 지역을 잇는다. 중심 거리는 동서로 뻗은 흥 브엉(Hong Vuong) 거리이다.

 한 시장에서 강을 등지고 서쪽으로 가면 도시 윤곽을 알 수 있다. 흥 브엉 거리 오른쪽으로 극장, 왼쪽으로는 광장이 있고, 그 앞으로 판 쭈찐 거리와 만나는 곳이 다낭의 중심부이다.

북쪽으로 미군 해군 기지가 있었으나 현재는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 남쪽으로 차이나 비치와 마블 산이 있다

 

2017.08.30.22:00시 대구 공항 출발

유년 초교시절 소풍 전날 처럼 설레임 가득했습니다.

출국전

왜그리 길게 느껴지든지.

4시간여 비행끝에 다낭 공항 도착

무엉탄 호텔 체크인

 

룸메이트가 누구였더라?

08.31일 일출

어젯밤 정을 돈독히 하려고 거하게 마신 술

그래도

잠 없는 몇몇 친구들과

아침 식사전 호텔 주변 전통시장을 둘러 보았습니다.

 

육류 가판대

60년대 성주 시장에서 보았던 풍경입니다.

여기서 요기를 하고...

날씨 때문인지

일과가 우리보다 더 일찍 시작되더군요.

첫날 조식. 호텔식

한 강(Song Han)

다낭 신,구시가지를 구획하는 강입니다.

용다리가 걸쳐 있습니다.

 

강 건너가 신시가지 입니다.

다낭 대성당

1923년 프랑스 식민 통치 시기 건축된 성당.

풍향계가 돌아가는 독특한 지붕으로 인해 현지인들은 닭 성당이라는 의미인 찐 또아 꽁 가(Chinh Toa Con Ga)라고 부른다.

 

닮모양의 풍향계가 설치되어 있다.

 

 

누가 더 예뿌노?

 

그걸 질문이라고?

 

성당 외부 거리

자전거에 각종 과일을 실고 다니는 상인

남자는 없었다.

모계 중심사회.

게으른 중생. 택도 없는 상상을 해보는 즐거움도 누리고

까오다이 사원(Cao Dai Temple , Thabh That Cao Dai )

베트남의 까오다이 사원 중 떠이 빈 사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이다.

외형은 다른 까오다이 사원과 거의 유사하지만 내부 천안(天眼)의 모습이 푸른 공 모양에 그려져 있어 이색적이다.

 

사진 상부의 그림이 이채롭다

모든 종교는 하나라는 근본 이념에 따라 천안 뒤로 예수, 마호메트, 부처, 공자가 함께 서 있는 그림이다.

 

오다이교(高臺敎 , Cao Đài )...다음백과사전

 

1925년 사이공에서 식민지 관료였던 레반치엔(Lê Văn Chiên)이 창시한 종교로, 유교 · 도교 · 불교 · 그리스도교 등의 교리를 종합하여 만든 것이다.

이 종교는 남부 베트남의 농민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져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즈음에는 추종자가 50만 명이나 되었다.

일본 측이 이미 1930년대 중반부터 접근을 시도했던 까오다이교의 지도자들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점차 주의 · 주장에 반프랑스적인 내용을 가미했다.

일본은 이들을 이용하여 베트남에서의 지위를 강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양자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프랑스 당국은 처음부터 까오다이교를 합법적인 종교단체로 인정해 주었지만, 결코 감시의 눈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일본 세력이 베트남에 진출하자 신흥종교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예측한 프랑스 당국은 1940년에는 떠이닌(Tây Ninh)에 있는 주요 사원들을 폐쇄시켰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교주인 팜꽁딱(Phạm Công Tắc)과 그 밖의 민족주의적 성향의 몇몇 지도자들을 아프리카 동쪽에 있는 코모로(Comoro) 군도로 추방했다.

 

이 사건 이후 일본 측은 까오다이교를 자신의 비호 아래 두었다.

일본 헌병대의 지원을 받은 쩐꽝빈(Trần Quang Bình)은 1943년 12월 떠이닌 지방의 까오다이교를 재조직하고 활발하게 움직였다.

이로부터 양자의 협력관계는 확실해졌는데, 일본 측은 정보자료를 얻고 사이공의 조선소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받는 대신,

2만에 달하는 젊은 까오다이교도들에게 군사훈련을 지도해 주었다.

 

일본군의 쿠데타 직후인 3월에서 5월까지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독립의 환호성이 베트남 전역을 휩쓸었다.

각지에서는 저명인사들의 애국강연회와 독립운동 희생자에 대한 추도회가 수없이 열렸고, 수많은 정치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일반 베트남인들은 거의 절대적으로 보였던 프랑스 세력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는 데 몹시 놀라워했다.

까오다이교 같은 친일단체들은 자기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권력을 이양해 달라고 일본군에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 측의 반응이 없자, 6월말부터는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는데, 특히 코친차이나에서 두드러졌다.

그리하여 일부 친일집단이 공공연히 반일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조차 있었다.

 

까오다이교의 본질적인 한계는 이들이 남부에 국한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또 종교단체였기 때문에, 그 추종자들을 제외하면 일반인들에게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까오다이교는 여러 분파로 분열하여 남부 각지에 퍼졌다.

1954년에는 12교파로 신도는 100만이었다가, 1975년에는 20여 교파로 확대되고, 신도 수도 20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통일 후 까오다이 세력은 일시 저조하였으나, 도이머이 이후 다시 현저한 부흥을 보이고 있다.

 

 

 

영응사.선짜반도 북쪽 언덕위에 2003년 세원 사원

 

베트남 패망 이후 공산화된 베트남을 떠났던 보트피플중에 성공한 사람들이 , 함께 떠났으나 불귀의 객이 된 영혼들을 위해 창건 하였다고 한다.

마케비치를 거쳐 해수관음을 보기 위해 들렸다.

9층탑.

아직도 내부 공사 중이 었다.

1층 중앙에 모신 보살 좌상

우리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자세로 발이 서로 바뀐 윤왕좌輪王坐도 아니며 유희좌遊戱坐도 아니다.

금당

마케비치.

세계 6대 해변중의 하나

다낭에서 호이안까지 펼쳐진 백사장이 32 (?)키로에 이른다고 한다.

해수관음

높이 67미터. 대리석으로 봉안하였다.

 

우리나라와 같은 상징을 지닌 해수관음상으로 정병을 지물로 들고 있다.

 

일반적으로 해수관음은 바닷가에 모셔지며

우리나라의 3대 관음성지도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강화 보문사 이며, 여수 향일암을 4대 관음성지로 칭한다.

망중한

 

 

 

중식. 월남쌈밥과 베트남 국수

 

호이안으로 이동

우리에게 가장 인기 좋았던 바나나 보트

실제로는 대나무로 만든 광주리 형태이었다.

 

 

 

대나무잎으로 만든  방아개비;?

 

 

 

 

 

환상적인 광주리 쇼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To be continued

 

300x250

'해외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갑 기념 베트남 여행 (3)  (0) 2026.04.17
중국...운남성 석림石林  (0) 2025.12.14
중국...운남성 구향 동굴  (0) 2025.12.11
중국...운남성 백사 벽화  (0) 2025.12.08
중국...운남성 인상-려강 공연  (0) 2025.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