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남원시

남원...남원 관왕묘

임병기(선과) 2026. 4. 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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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관왕묘.

두 차례 답사하였지만 까치발로 건물만 보았습니다.

오늘

쪽문이 열려 있어 처음으로 참배하였습니다.

홍살문

외삼문

(2008년 사진)

탄왕묘 옆 협문으로 출입하였으나 앞쪽 문이 닫혀 비석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관왕묘비(라호르 님 사진)

명조도독우정건묘사적비(明朝都督劉綎建廟事蹟碑)

무안왕비武安王碑(라호르님 사진)

탄보묘(誕報廟). 전북유형문화유산

"임진왜란 때 이곳에 주둔하였던 명나라 장군 리우 띵(劉綎)이 자기들의 수호신으로 숭배하던 관운장을 모시기 위하여 선조 32년(1599) 남원부 동문밖에 세웠던 것이다. 그 후 영조 17년(1741)에 현 위치로 옮겨 짓고, 매년 춘추로 제사 지내고 있다."(다음 백과)

탄보묘

관우의 탄신과 왜적을 무찌른 것에 대한 보은?

관우의 소상이 중앙에 모셔 있고 앞에 시립한 두 부장의 소상이 서 있습니다.

소조 관우상

소조 부장상

소조 관우상

남원 관왕묘 적토마도(국가유산청). 전북유형문화유산

 

가로 254㎝, 세로 339㎝ 크기의 그림이다. 화면에는 붉은 털빛의 명마 적토마가 힘차게 앞다리를 들어 올린 역동적인 자세로 그려져 있고, 말의 옆에는 고삐를 잡은 마부가 서 있다. 적토마의 강렬한 붉은색과 윤기 나는 털과 팽팽히 당겨진 고삐, 근육의 긴장감 등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어 회화적 사실성과 생동감이 뛰어나다. 마부의 복식과 몸짓은 말의 움직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화면 전체에 역동적인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러한 표현은 당시 민화적 화풍에 기반을 두되, 장식성과 사실 묘사가 조화를 이룬 조선 후기 탱화(幁畵)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뒷면에는 “개국 527년(1918년) 조형하(趙亨夏)가 감독하여 보수하였다”는 묵서가 남아 있어 작품의 제작이 19세기말 이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의 채색은 세월로 다소 바랬으나, 인물과 말의 선묘(線描)는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어 당시 지방 화승 혹은 민간 화공의 수준 높은 필력을 짐작케 한다.(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현장에서 못보았는데, 국가 유산청에는 관왕묘, 디지털남원문화대전에는 남원 향토박물관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관왕묘

https://cafe.daum.net/moonhawje/MebK/95

 

20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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