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도리 장촌 마을. 우측이 녹산 등대
둘째 날 이른 아침 고도 둘레길 전망대에서 뷰

서도리 장촌
입도 첫날 백도 유람선에서 촬영
장촌마을
여수시 삼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서도리의 마을. 거문도의 세 개의 섬 중에 가장 큰 섬인 서도가 서쪽에 있어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중앙에는 음달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동쪽은 거문도의 세 섬이 어우러져 폭풍우에도 안전한 내만을 이루고 있어 양식어업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서쪽은 단애로 형성된 절벽이 많아 경관이 아름답고 좋은 갯바위 낚시터가 많다.
2022년 9월 6일 기준, 총 195세대에 인구 346명[남 194명,|여 15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바다 건너 동도리, 서쪽과 북쪽은 바다, 남쪽은 덕촌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주요 성씨로는 김해김씨와 선산김씨가 많이 살고 있다. 마을 내에는 서도보건소, 거문도뱃노래전수관, 어촌계 사무소, 마을 사무소와 노인정이 있다. 교통은 1998년 덕촌리에는 서도와 고도를 잇는 삼호교, 2015년 9월 동도와 서도를 잇는 거문대교가 개통하면서 거문도를 구성하는 세 섬[고도, 동도, 서도]이 모두 연결되었다. 서도와 동도의 접근성이 높아짐에 따라 거문도 일대의 관광이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발췌)

경앙문(景仰門). 서산사 내삼문
마을 뒤편에 위치

西山祠
살아 있을 때 높은 학문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효행이 지극했던 만회 김양록을 중심으로, 그의 아들 김지옥, 인동부사 김정태, 거문도사립낙영학교를 세운 김상순 등의 공덕을 기리고자 세운 사당이다. 사당의 형태는 1900년에 세워졌다는 사우를 근거로 하였고, 1985년 11월 30일, 당시 여천군청과 삼산면 향토문화추진위원회, 주민, 문중 등 각계의 성금으로 세웠다. 매년 숭모제를 치르고 있으며, 김양록의 친필 유묵과 정여창의 유필도 전해지고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현재는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학생김공지옥휼궁불망비(學生金公祉玉恤窮不忘碑).인동부사김정태휼궁불망비(仁同府使金鼎泰恤窮不忘碑)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 같습니다.. 철비는 밑동이 잘라진 상태입니다.

學生金公祉玉恤窮不忘碑
내용은 패스

정축
1877년?


숭정 후 오 주 무인 동중 수
1878년 마을(문중)에서 세움
(한문 음운은 개인적인 해석임)

인동부사김정태휼궁불망비(仁同府使金鼎泰恤窮不忘碑)
"인동부사 김정태의 선정비이다. 거문도 서산사(西山祠) 경내에 있는 비로, 아버지 ‘김지옥(金祉玉) 휼궁불 망비’의 우측에 비신이 절단된 철비 대석이 있고, 비신은 그 옆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1901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비는 비좌관석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비는 부식이 심해 판독 불가능한 곳이 많다. 비신의 앞면은 장방형 감실을 만들어 그 안에 글씨를 양각으로 주조하였으며, 뒷면도 양각으로 주조하였다. 비석머리의 전체적인 형태는 연화인데 매우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였다. 앞면 정상에는 연봉이 있고, 안의 중앙에는 부식이 심해 결과 문양(연화문인 듯한 문양)을 자세하게 확인, 파악할 수 없다. 그 좌우에는 십자형의 연화문과 그리고 기왓골로 표현한 여러 직선문 이 있다. 비석머리 바로 아래에는 각진 덩굴연화문을 표현하였다. 이 철비는 1975년 여름 태풍으로 비각이 무너지면서 철비가 절단되었다고 한다"(한국철비대관. 진한용)
거문도 답사의 주목적이 이 철비를 살펴보는 것이었습니다.

밑동이 잘린 상태

비좌에 꼽힌 철비 아랫부분

仁同府使金鼎泰恤窮不忘碑
육안식별이 어렵습니다.
명문
適□□□ □□□□ □□□□ □□□□ □□□□
發以□廩
永世公情
龜頭一片
김정태(1845~191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사군파(四君派). 호는 탁가(濯可). 학성군(鶴城君) 완(完)의 9대손. 고조할아버지는 흥양현감 이해(利海). 증조할아버지는 흥형(興亨). 할아버지는 득택(得澤)이고 아버지는 효자 지옥(祉玉)이며, 어머니는 경주(慶州) 김영수(金永秀) 딸이다. 삼산면 서도리 출신으로 고종 때 무과 급제하여 내금장(內禁將)을 역임하고, 인동부사 재임 중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고향 서도리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이곳에 흉년이 들어 굶주림에 시달리는 섬 주민의 참상을 보고 ‘백미 600석을 풀어 주민들을 구휼하고, 개화파 김옥균(金玉均)과 박영효 (朴泳孝)에게 천석지기 거부의 자금을 지원했다’고 전한다.

배면
세운 시기가 새겨져 있습니다.

光武五年□□八月 日. 1901년

비머리

수리 후 바로 세웠으면...
우리나라의 철비
https://cafe.daum.net/moonhawje/MebK/321

비석 주인공은
부자지간이었습니다.
장촌마을 돌담장





서산사 답사 후
마을 촌로를 만났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서산사를 관리할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젊은이가 떠난 어촌마을.
부모 기일도 외면하는 세태인데 문중제사를 올릴 사람이 얼마나 있을는지.

장촌마을에서 바라본 거문대교와 동도
2025.08.15
***철비 관련 자료는 한국철비대관(진한용)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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