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홍천군

홍천...물걸리사지 삼층석탑

임병기(선과) 2024. 7. 11.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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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

국가지정 보물. 이층 기단의 삼층석탑. 현재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 있습니다.

2012년 보수공사 당시 지대석 하부에서 적심이 노출되어 원위치에 서있는 탑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2006년 사진과 글

(오류도 있지만 그대로 옮긴다)

물걸리 절터를 찾아 가는 손쉬운 방법은 철정 군 검문소를 경유하는 코스겠지만 자료에 나와 있는 괘석리 삼층탑을 보기 위해 어렵게 방향을 잡고 가도 가도 산길만 이어진다. 이정표는 고사하고 인가도 보이지 않은 길을 대책없이 진행했더니 커다란 자연석 바위에 괘석리 입간판은 보였지만 삼층석탑은 행방이 묘연했다.

 

어쩌겠는가? 외딴 집에서 만난 집배원 아저씨도 탑 존재유무를 모르는데...

 

스스로에도 화가 나지만 우리 지자체의 문화행정 현주소를 욕하며 물걸리 절터를 찾았다. 입구에 강원도에서 보물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물걸리 사지 안내 표지로 진입했더니 사지는 없고 단정한 절집만 보인다. 스님 안내로  뒷꽁지로 절터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어디가 앞, 뒤인지 누가 알겠는가? 아니 그게 뭐 대수인가? 어차피 뒤죽박죽 된 홍양사 옛 가람인데......

 

진입로는 몰라도 가람배치를 짐작케 하는 단서인 석탑으로 향했다. 2 기단, 상하기단 우주, 한 개의 탱주, 2.3층 몸돌 체감이 심하고 몸돌과 지붕돌은 한개의 돌로 보인다.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 옥개 받침은 1·2층은 5단, 3층은 4단으로 줄어들었다. 낙수면은 얇고 완만한 기울기며, 우동이 뚜렷하며 반전은 희미하고, 상륜부는 노반만 보인다. 신라하대 석탑의 특징을 갖춘 탑으로 물걸리 옛 절터 창건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물걸리사지

물걸리사지는 사명과 연혁이 명확하게 전하지 않는 곳이다. 다만 ‘洪陽寺’라는 사명이 전해지고 있지만 문헌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 조사자료인 『朝鮮古蹟寶 物調査資料』에서는 사지가 동창마을 경작지 내에 있고 기와 편이 산재하며, 석탑, 불상 2구가 있다고 보고하였 다. 이후 1967년, 이곳에서 불상 대좌 2점과 광배 1점, 금동불 등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간략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당시 광배와 대좌 등은 마을 주민들이 발굴하여 임의 조립한 상태였고, 불상 주위에는 2칸의 불사(대승사)를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지표가 상당히 교란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때 함께 발견된 것으로는 사자가 새 겨진 불상 대좌 하대석, 철불 편 등이 있다. 이후 1979년 에는 사역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대승사를 옮긴 후 현 위치에 보호각을 건립하여 불상을 안치하였다.(중략)

 

이후 사지 일원은 1982년 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정비 당시의 모습으로 보존되어 오다가, 2003년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추진한 ‘강원지역 학술 조사’의 일환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조사를 통해 금당의 규모와 불상의 배치를 확인하였고, 팔각대좌 하대석 일부가 출토되었다. 이 조사 이후 사역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비되었으며, 석탑은 2006년 정밀실측을 거쳐 2012년 보수공사가 진행되었다. 2015년에는 2003년 조사되지 않았던 삼층석탑 일원에 대한 발굴조 사가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건물지 5동 등이 추가로 확인되었고, 보물 543호로 지정된 석조대좌의 광배편 일부가 발견되었다.

(문화재청. 한국의 사지. 2016년))

삼층석탑

 

여러 매로 구성된 지대석

하층기단

저석, 우주와 탱주 1주를 모각한 중석이 일석

. 갑석의 낙수면이 좁고, 약간의 물매가 있으며, 각호 2단 상층기단 중석 굄을 조출하였습니다.

하층 기단 갑석 하부에 부연이 있습니다.

(다른 어떤 자료에도 언급이 없어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하층기단 갑석에 부연이 있는 석탑 몇 기가 떠 오릅니다.

화엄사 사사자석탑

용인 어비리

상주 상오리 칠층석탑

 

다시 물걸리사지 삼층석탑을 살펴 봅니다.

상층기단

중석은 감입식 결구, 탱주 1주와 우주 모각

(한국의 사지에는 남면 우주 탱주, 동서면은 탱주, 북면은 우주만 새겼다고 기록)

 

갑석

낙수면 물매 미미, 얇은 편으로 3 매석, 각호 2단 굄, 하부에는 부연이 있습니다.

탑신부

초층 탑신석에 비해 2,3층 체감률이 크며, 전층 우주를 모각하였습니다.

옥개석

아래로부터 5*5*4 층급받침, 절수구 있으며, 상처마선 반전, 2단 탑신 굄을 조출하였습니다.

상륜부에는 노반석만 남아 있습니다.

2012년에 복원한 2층 기단의 삼층석탑

초층탑신석과 상층 탑신석의 체감, 옥개석 층급받침의 변화, 기단 중석 탱주의 변화 등을 고려하여 9세기 후반 석탑으로 전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매 석재로 결구한 기단부,  상하기단 갑석의 부연 표현이 눈에 들어오는 석탑입니다. 또한 발굴 보고서에 철불 편이 발굴되었다는 내용으로 유추하면, 구산선문 가람에 철불을 봉안했던 것처럼 물걸리 사지에 향화를 피웠던 절집은 선종사찰이었다고 생각됩니다.

202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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