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경주시

경주...장항리사지 동서오층석탑. 연화대좌

임병기(선과) 2024. 5. 6.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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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리사지는 사명을 알 수 없는 곳이다. 1923년 7월 도굴범에 의하여 석탑이 폭파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것이 경주군수에 의해 조선총독부에 보고되면서 사지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본 사지는 1929년 藤島亥治郞가 사역을 조사하기까지 이후 몇 년간 방치되었다. 藤島亥治郞의 기록에 따르면 조사 당시 사역 내에 는 서탑이 무너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으며, 파괴된 동탑은 일부 부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하천에 떨어져 흩어져 있었다. 후지시마의 조사 자료에는 잔존하고 있는 석탑의 도면과 함께 건물지의 조사 내용도 수록되어 있다.

 

한편, 『慶州古蹟及遺物調査書』에는 무너져 있는 석탑의 현황에 대한 자세한 조사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와 함께 대좌와 파괴된 불두의 모습도 사진자료로 수록되어 있다. 1932년에는 조선총독부의 주관 하에 서탑이 복원되었고, 아울러 석탑 주변은 간략하게 조사되었다. 당시 조사를 감독하였던 藤島亥治郞의 기록에 따르면 서탑지 하부와 금당지 초석의 원위치 확인을 위한 간략한 조사가 실시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금당지 남쪽에서는 석불 편 7점과 석등 지대석이 출토되었다. 이 때 발견된 불상은 1932년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옮겨졌지만, 석등재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이후 사지는 1938년 ‘古蹟 第74號’로 지정되었고, 高裕燮, 衫山信三 등의 학자들이 본 사지의 탑에 대해 조사·연구하였다. 해방 이후 사지는 1963년 사적 제45호로 지정되었으며, 1966년에는 계곡 아래에 방치되어 있던 동탑 부재를 사역 내로 옮겨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배치하였다.

 

1966년 석탑 복원 공사 당시 금당지를 발굴·정리하던 중에는 석불편 1 점이 새로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발굴조사는 금 당지를 정리하기 위한 간략한 조사였기 때문에 보고서 등의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1977년도에 간행된 『문화 유적총람』에는 1966년 이후 정리된 사지의 현황과 2기의 석탑에 대해 보고되어 있다. 이후 2000년도에 발간된 『토함산지역 불교유적 조사연구』에 기록된 장항리사지의 현황은 1966년도 이후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산사태 등으로 인하여 사역 주변의 토양이 점차 무너지고 있는 현황을 보고하며 보존이 시급함을 언급하고 있다.

 

한편, 2007년에는 사지의 지속적인 훼손을 방지하고 복원, 정비하기 위한 종합정비계획이 수립되었다. 이 계획에 따라 2008년에는 우선 사지 아래 하천변의 수로 개선공사 및 사방공사를 실시하였고, 진입시설 및 주차장 등이 마련되었다. 이와 같이 관람을 위한 편의시설이 우선적으로 갖추어진 반면, 사역 전반에 대한 발굴조사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사지. 문화재청)

장항리 사지

https://12977705.tistory.com/8726048

동서오층석탑

8세기 중반 이전? 인가요?

동오층석탑

인왕상, 문고리를 문 용면와

나비장

https://12977705.tistory.com/8727065

기단석

탑신석, 사리공

동오층석탑

서오층석탑

인왕상

풍탁공. 장식공

서오층석탑

1금당. 동서 오층석탑 직렬배치

동탑은 금당 우측이 원래 위치겠지요?

그렇더라도

금당 앞쪽 좌우에 석탑이 배치되는 쌍탑 일금당과 다르게 금당과 나란히 조성된 석탑입니다.

이러한 배치는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 동서삼층석탑애서도 확인됩니다..

금당지. 가구식 기단

연화대좌

사자상

신장상

동호회. 정삿갓 님 사진

장항리사지 석불입상. 경주박물관

석불입상 대좌

8세기 중반 이전에 조성된 통일신라 유일의 동서오층석탑

서로 다른 장인의 작품은 분명한데 동시에 조성했는지?

 

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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