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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순천시

순천...장흥 금장사지 석탑재

by 임병기(선과) 2023.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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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성보박물관

사육일 님으로부터 듣고 이른 아침 도착하여 석탑부재를 비롯 석조물을 확인하였습니다.

 

금장사지 金藏寺址

 

금장사는 1311년에 李 이 작성한 「龍頭山金藏寺金堂主 彌勒三尊改金記」에 창건 및 중건 연혁이 전한다. 이에 따르면 금장사는 992년(고려 성종 11) 2월 玄坦스님이 창건하였으며, 금당에는 미륵삼존불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 나 고려후기 천태종계 중심인물인 丁午禪師가 세월이 오래되어 낡은 사찰을 보수하기 위해 발원하고 떠났다고 한다. 이후 1307년(충렬왕 복위 9) 정오선사는 王師로 책봉 되어 금장사를 下山所로 정해 받았으며, 하산한 뒤 금장 사에서 개금불사를 계획하였다고 한다. 1308년 충선왕이 즉위하면서 정오선사가 다시 왕사로 복귀하게 되자 제자인 宏之禪師로 하여금 개금불사를 잇도록 하였다. 굉지선 사는 1309년 10월부터 개금불사를 이어받아 진행하였으며, 돌을 다듬어 연화대좌를 새로 만들어 불상을 안치하 였다고 한다. 이듬해 2월 개금불사가 끝나자 금장사에서 점안법회와 낙성식이 진행되었으며, 특히 이 법회에 萬德 山 白蓮社 스님들이 초청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와 같이 금장사와 백련사 간 교류와 앞서 언급한 정오선사 행보를 고려해 볼 때, 금장사는 고려 원간섭기 천태종 교세를 확장시킨 중심지로 추정되기도 한다.

금장사는 1407년(태종 7) 資福寺를 대신하여 지정된 각 고을 명찰 중 한 곳이며, 당시 화엄종 소속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을 종합해 볼 때 천태종 계열 사찰이었던 금장사가 조선 초 화엄종 사찰로 바뀐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이후 사찰은 『新增東 國輿地勝覽』과 柳馨遠이 쓴 『東國輿地志』에 언급되어 17 세기에도 법등을 이어간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18세기에 간행된 『長興邑誌』에는 ‘金莊山 아래 마을에 금장사 터가 남아있으며, 터에 승탑 1기가 있다.’고 전하며, 『梵宇 攷』에는 “今廢”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금장사는 18세 기 중엽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2020년.문화재청.한국의 사지)

 

위 자료에는 석탑에 관한 내용은 보이지 않습니다.

 

2020년 문화재청 발간, 한국사지총람 에는 장흥읍지에 탑과 부도가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후 1981년 태풍 초석과 함께 수습되어 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하층 기단부 

저석 중석 갑석이 일석입니다.

 

크기로 보아 탱주는  2주로 추정됩니다.

 

탑신석

 

초층 탑신석으로 추정됩니다.

 

석조부재

 

괘불지주

금장사지에서 옮겨온 부재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202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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