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내고향 성주

성주...징기마을 짐대껄, 계선주

임병기(선과) 2023. 3. 12.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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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대

얼마 전 페이스북 친구인 박재석 님의 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성주에도 짐대글. 계선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박재석(2023.02.18)

 

참외의 고장 성주군

그 북쪽에 위치한 벽진면

백천의 원류 이천이 지나는 곳

 

그 옛날 뱃사공이 메어놓던 배

 

###짐대글###

 

몇 차례 태풍에 쓰러져도

마을의 평온을 위해서 다시

세워 보존한 지 몇몇 해이던가!

 

주변에 꺼지기를 덮던

할매의 말씀

 

작년인가 지지난해던가

군에서도 면에서도

사진을 찍어 가더니

 

뭔가 보존을 위한 주변정리를

한다더니

감감무소식이라는데

... ...

 

이제는 잊혀져가는 대천리(대철리) 마을

이름과 같이 될까봐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늘은 해질녘 다녀 갑니다.

 

박재석 님의 글을 읽고 중학 동기인 여철동 군과 통화한 후 친구의 안내로 현장 답사를 하였습니다.

 

짐대껄

징계(징기)마을 앞 성주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월회당 맞은편 비닐하우스 물결 속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박재석 님이 '글'로 표현하였지만 거리의 방언인 '껄'로 추정되며 짐대가 있었던 곳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짐대는 솟대, 진또배기, 거릿대, 당산대, 신목 등 지방에 따라 다양하게 불립니다. 솟대는 마을 신앙의 하나로 마을의 안녕과 수호, 풍농, 비보 목적으로 주로 마을 입구에 세웁니다. 마을에 따라서는 마을 전체 8곳, 4곳에 조성하는 사례도 있으나 징기 마을에는 몇  곳에 있었는지 탐문하지 못했습니다.  짐대는 홀로 세워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장승(벅수), 입석(선돌), 조산탑(돌탑)과 함께 마을 입구 洞藪(마을 숲)에 세우기도 합니다. 또한 솟대 위에는 오리를 비롯하여 철새를 올려놓습니다.

 

우리 전통 취락 배치

주지하듯 배산임수를 기본으로 하며, 마을 입구에는 먼저 벅수, 선돌을 세우고 그 뒤로 숲을 조성하고, 그곳에 당산, 당산목, 솟대를 조성합니다. 마을 보호를 위해 多重의 장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숲은 방풍림 역할뿐만 아니라 물이 흘러 나가는 것이 마을에서 보이면  地氣, 福, 財物이 빠져나간다는 믿음 때문에 조성하며 수구매기로 부르기도 합니다.  지방에 따라서는 그런 믿음 때문에 숲뿐만 아니라 웅덩이(대구 옻골 마을), 석축, 돌담 등을 쌓는 사례도 많이 있습니다.

솟대 위의 오리는 철새인 까닭에 이승과 저승을 엮는 메신저, 물속에 살기 때문에 마을의 火氣를 잠재우는 裨補(비보)의 상징성 가집니다. 또한 물은 농경 사회의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풍농을 기원하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 옛날

징기 짐대껄에서도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며 음기가 가장 강한 정월 대보름날  당산제와 동제가 걸판지게 벌어졌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들은 짐대와 솟대 앞에 정성으로 기도 올리며 전쟁 나간 자식의 무사한 귀환, 시집간 딸의 편안한 시집살이, 객지로 나간 자식들의 안녕을 손금이 닳도록 빌었을 것입니다.

 

그런 우리 전통 마을 문화가 농경 사회의 쇠퇴와 인구 감소 등으로 시나브로 잊혀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참고 사진 몇 장 올립니다.

 

군위 춘산마을 짐대

 

군위 한밤마을 짐대

 

전북 부안 돌모산 당산

 

전북 부안 동문안 당산

 

대구 옻골마을 마을 숲과 저수지

 

대구 팔공산 당정마을 수구매기 석축

 

성주 초전면 달밭골 조산탑

 

성주 초전면 용봉 2리 입석(선돌)

 

계선주(繫船柱)

 

박재석 님의 글을 보는 순간 계선주로 직감했습니다.

 

참외의 고장 성주군

그 북쪽에 위치한 벽진면

백천의 원류 이천이 지나는 곳

그 옛날 뱃사공이 메어놓던 배

 

현재는 주 교통수단이 자동차이지만 예전에는 강이 물류의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징기마을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며 고려 개국공신 벽진장군이 터를 잡았을 때부터 이천을 통해  낙동강으로 진출하였을 것입니다. 당연히 강가에는 정박 중인 선박을 메어 놓을 계선주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즉, 짐대에 기댄 돌은 바로 그러한 기능의 석주로 추정됩니다.

 

중앙 간공

 

사진을 보면서

어느 사찰에 있었던 괘불을 걸었던 괘불지주를 계선주로 사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전북 정읍. 전북 익산. 전북 남원 등의 여러 지방에 폐사된 사찰 당간지주를 옮겨 계선주로 쓴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짐대껄 계선주는 당간지주도, 괘불지주도 아니었습니다. 폭이 넓고 간공이 상하 두 곳이 아니라 중앙 한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계선주 용도이었는지, 짐대를 지지했던 돌기둥이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보다 깊은 탐문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좋겠으며 짐대 지지 기둥이었다면 한 쌍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한 짝이 더 있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에는 계선주로 조성되었으나 그 기능이 필요 없게 되어 짐대 지지기둥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청도 적천사 괘불지주

폭이 좁고. 상하에 간공이 있습니다.

즉 징기 짐대껄 계선주는 괘불지주가 아닙니다.

 

 

전북 정읍 입석리 당간지주. 계선주로 활용

 

전북 익산 쌍정리 당간지주. 계선주로 활용

 

남원 방동리 당간지주. 계선주로 활용

 

봄 같은 겨울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개인적인 시선으로 두서없이 글을 남겨봅니다

 

 

짐대 위에 오리를 올리고

계선주가 제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이 들리면 한달음에 달려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습니다.

좋은 정보를 공유해 준  박재석 님. 현장을 안내한 중학 동기 여철동 동장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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