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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서울특별시

서울...도봉서원(영국사지) 석탑부재

by 임병기(선과) 2022.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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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

영국사는 사자산문의 神靖禪師와 고려전기 法眼宗을 처음으로 전파한 慧炬國師, 寂然國師가 주석하거나 수학 하였던 곳이며, 고려 광종이 3대 不動寺院으로 지목할 정 도로 중요한 위상을 갖고 있던 ‘道峯院’이다. 중국 송나라 때 편찬된 선종 역사서 『景德傳燈錄』과 17세기에 편찬된 『大東金石書』에 수록된 「영국사혜거국사비」 탁본, 2017 년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혜거국사비편을 통해 혜거국사 는 도봉산 신정선사에게 출가하였고, 10세기에 5대 10국 시대의 대표 선승인 法眼 文益(885~958)에게 가르침을 받고 돌아와 도봉산 영국사에 머물렀던 것을 알 수 있다.

 

977년(경종 2)에 건립된 「高達寺元宗大師慧眞塔碑」 음기 에는 고달사를 비롯한 도봉원과 曦陽院을 문하제자들이 계속 주지를 하도록 하는 不動山門으로 지정한다는 971 년(광종 22) 조칙과 문하제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또한 『高麗史』와 『高麗史節要』 내용 중에 거란의 2차 침입으로 고려 현종이 나주로 피난가면서 머물렀다고 하는 ‘道峰寺’ 역시 영국사로 파악된다. 1023년(현종 14)에 건립된 「靈 巖寺寂然國師慈光塔碑」 비문에는 적연국사가 도봉산 영 국사에서 慧炬國師에게 수학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혜 거국사에 대해서는 『高麗史』에 968년(광종 19) 승려 惠 居를 국사로 삼고, 坦文을 王師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1295년(충렬왕 21)에 건립된 「인각사보각국사비」 음기에 는 “禪師 …… 道峯寺 守琛……”이라고 새겨져 있다. 『고려사』 기록에서 ‘惠居’가 ‘慧炬’와 동일인일 가능성 이 높다고 한다면, 혜거는 대략 9세기 말에 출생하여 974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선전기 문신 徐居正(1420~1488)의 『四佳集』에는 「道峯山靈國寺」라 는 시가 전하는데, ‘층층히 옛 탑은 층이 있어 공중에 부 옇게 섰고, 동강난 비는 글자없이 반쯤 퍼렇게 묻혔다.’ 라는 시문에서 영국사가 쇠락한 상황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寧國寺가 도봉산에 있었다 고 하면서 서거정의 「도봉산영국사」 시문을 언급하고 있 다. 이후 『世宗實錄』에는 진관사 수륙사를 영국사로 옮 겨 설치하라는 내용이 실려 있고, 『世祖實錄』에는 영국 사에서 祝壽齋를 지냈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文宗實 錄』에는 영국사를 새로 창건하여 철거할 수 없으며, 불사를 금지하는 것을 논의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 기록 으로 본다면 영국사는 조선전기에 새롭게 창건된 사찰로 추정된다. 金守溫이 지은 「寧國寺」와 李珥가 지은 「道峯 書院記」 등 조선후기 문집에서는 옛날에 영국사가 있어 서 도봉산 어귀를 ‘영국’이라 한다는 것과 영국사 옛 터에 도봉서원을 지었다고 내용, 도봉은 옛날 영국사 遺址라 는 내용 등이 실려 있다. 이는 도봉서원이 고려시대 도 봉사, 영국사 위에 세워졌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 영국사는 창건시기를 정확하 게 알 수는 없지만, 적연국사가 영국사에서 혜거국사 에게 수학한 시기를 고려하면, 950년 이전에 창건되었 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문종실록』 기사로 보아 1450 년 10월 이전에 영국사 창건 공사가 마무리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 영국사가 어느 시기에 폐사된 후 1450년경에 다시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 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도봉산에 있다는 기록으로 보 아 적어도 1530년 무렵까지도 영국사가 사찰로서 제 기 능을 수행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영국사에 대 한 기록은 ‘터’로 등장하고, 영국사터에 도봉서원을 창건 하였으며, 그 이유는 조광조가 생전에 영국동을 애호하 였기 때문으로 적고 있다. 따라서 폐사시기는 『신증동국 여지승람』과 「도봉서원기」 등 기록으로 보아 1530년에서 1573년 사이로 추정된다. 본 유적은 ‘도봉서원지’로 알려진 곳으로서, 『문화유적 총람』에는 1573년(선조 6)에 영국사를 헐고 서원을 세우 고 1775년(영조 51)에 어필로 도봉서원 4자를 내렸는데 1871년(고종 8)에 헐리어 단으로 되었다고 한다.

 

영국사지는 2009년에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8호로 지 정된 ‘도봉서원과 각석군’에 포함되어 있는 곳이다. 도봉 구청은 문화재 지정과 동시에 도봉서원 복원과 각석군에 대한 정비방안을 검토하고 복원정비를 위한 학술연구용 역을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에 따라 2011년에 도봉서원 복원사업을 추진하였다. 2011년에는 시굴조사가 진행되 었고, 조사 결과 조선시대 문화층이 확인되어 발굴조사 를 실시하였다. 이 발굴조사는 도봉서원 복원을 목적으 로 하였기 때문에 유구를 최대한 보존하고 일부 초석 하 부 절개 조사 등 하층의 부분을 남겨둔 채 조사가 마무리 되었는데, 조사 막바지에 도봉서원 하층 유구에서 고려 시대 영국사와 관련된 많은 양의 불교의례 유물이 확인 되었다.

이에 도봉구는 2013년에 추가 시굴조사를 진행했고, 2016년에는 도봉서원 최대 추정 범위 확인을 위해 도봉서원 및 각석군 일대 지표조사를 시행하였다. 그리 고 도봉서원 보존과 정비에 앞서 영국사와 영국사 이전 유구 등을 명확하게 조사하기 위해 2017년에 주변 시굴 조사와 하층 발굴조사를 시행하였다. 또한 2017년에는 유적의 보존 정비를 위한 학술대회를 통해 본 유적의 성 격과 가치 규명을 위한 다각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출처/문화재청. 한국의 사지

 

옛 영화는...

삶도 그러할 것입니다.

 

도봉산 영국사...서거정.

 

山下何年佛刹開  산 아래다 어느 해에 불찰을 열었던고
客來終日足徘徊  길손이 와서 온종일 배회할 만하구려
開窓雲氣排簷入  창을 여니 구름 기운은 처마를 밀쳐 들오고 
欹枕溪聲捲地來  베개 베니 시내 소리는 땅을 말아서 오누나 
欹枕溪聲捲地來  층층의 옛 탑은 부질없이 하얗게 서 있고 
古塔有層空白立  글자 없는 조각난 비는 풀에 반쯤 묻혔네 
殘年盡棄人間事  내 여생엔 인간의 일을 모조리 버리고
結社香山擬不回  향산에 결사하여 돌아가지 않으련다

 

-백거이(白居易)가 일찍이 형부 상서(刑部尙書)로 치사(致仕)하고 나서 향산의 스님 여만(如滿)과 함께 향화사(香火社)를 결성하고는 승속(僧俗)이 서로 종유하면서 향산거사(香山居士)라 자칭했던 데서 온 말이다

 

출처.한국고전종합 DB

 

-글자 없는 조각난 비. 발굴을 통해 혜거국사(慧炬國師) 홍소(弘炤, 899∼974)의 비로 밝혀졌습니다

 

도봉산 망월사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3244

 

"최근에 도봉서원이 있었던 유적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조선 시대 들어와 도봉산 망월사 자리에 도봉서원이 새롭게 건립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현재의 망월사는 원래의 망월사가 폐사된 이후 창건하였거나 암자가 망월사가 된 것으로도 보인다. 현재 ‘혜거국사 부도’는 망월사 서편으로 형성된 능선 자락에 세워져 있다. 부도는 면이 전체적으로 팔각형을 유지하고 있다. 지대석은 8매의 대석을 팔각형으로 결구하였으며, 그 위에는 상부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기단을 3단의 받침대처럼 마련하였다. 1단과 2단은 모서리를 각형으로, 3단은 호형으로 처리하였다. 그 위에 팔각의 대석을 올렸는데, 상면에 1단의 괴임을 두어 원구형 탑신석이 견고하게 고정되도록 했다. 탑신석 하부는 연화문을 장식하였다. 옥개석(屋蓋石;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은 하부에 2단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와 낙수면의 처리 수법 등이 간략하지만 목조건축물의 지붕이 연상되도록 했다. 상륜부는 연화문이 장식된 받침대 위에 보주를 올려 마무리하였다.

망월사 혜거국사 부도와 석등은 조선전기의 양식을 보이는데, 혜거 스님은 고려 시대에 주요하게 활약한 승려였다. 그래서 부도의 양식과 스님의 입적 시기가 어울리지 않아 의구심을 주고 있다. 다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혜거 스님을 추모하고 기념하고자 새롭게 부도를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망월사 혜거 국사 부도’는 사례가 드문 조선 전기의 부도라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이다."(분화재청)

 

옥개석

 

서거정의 도봉산 영국사에 살린 석탑 부재이겠지요

 

欹枕溪聲捲地來  층층의 옛 탑은 부질없이 하얗게 서 있고 

 

탑신 굄

 

옥개석

 

면석도 보이고

 

 

보물. 영국사지 출토 공양구 일괄(글,사진 문화제청)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은 조선시대 유학자 조광조(趙光祖, 1482∼1519)를 기리기 위해 세운 도봉서원(道峯書院)의 중심 건물지로 추정되는 제5호 건물지의 기단 아래에서 2012년 수습된 것으로, 금동금강저 1건 1점, 금동금강령 1건 1점, 청동현향로 1건 1점, 청동향합 1건 1점, 청동숟가락 3건 3점, 청동굽다리그릇 1건 1점, 청동유개호 1건 1점, 청동동이 1건 1점 등 총 10건 10점이다.

이후 2017년 추가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도중 고려 초기 고승 혜거국사(慧炬國師) 홍소(弘炤, 899∼974)의 비석(碑石) 파편이 발견되었고, 비문의 내용 중 ‘견주도봉산영국사’(見州道峯山寧國寺)라는 명문이 판독됨에 따라 이 지역이 ‘영국사(寧國寺)’의 터였음이 새롭게 밝혀졌다. 이로써 도봉서원이 고려시대 영국사 터에 건립된 사실과 발굴지에서 수습된 금속공예품은 바로 영국사에서 사용한 고려시대 불교의식용 공예품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발굴된 금속공예품은 총 67건 79점이었으나, 이 중 조형성, 공예적 기법이 우수하거나 크기가 크고 대표적인 유물(금강저, 금강령, 청동유개호), 유물이 담겨 명확한 출토정황을 증명해주는 유물(청동동이), 명문이 있어 편년기준이 되는 유물(청동현향로, 청동향합, 대부완), 의식공양구 세트(숟가락 3건) 등 일정한 의의가 있는 유물 10건 10점을 지정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이 10건의 ‘서울 영국사터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의 역사적ㆍ예술적ㆍ학술적 가치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유물 중 현향로, 향합, 숟가락, 굽다리접시 등의 명문을 통해 유물의 사용처와 사용 방식, 중량, 제작시기, 시주자 등에 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릇의 굽다리에 새겨진 ‘계림공시(雞林公施, 계림공이 시주함)’라는 명문은 1077년∼1095년 사이에 내려준 ‘계림공’의 작위명을 통해 고려 숙종(肅宗, 1054∼1105)이 시주한 사실을 알 수 있어 출토유물의 시대적 편년과 더불어 고려왕실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둘째, 본 유물들은 출토지가 확실하고 영국사에서 사용하였다가 일괄로 퇴장(退藏, 특별한 목적으로 매납함)된 유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기물의 용도나 의례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학술적인 의미도 매우 크다..

셋째, 불교의식구인 금강저와 금강령은 완형의 세트로 발견되었는데, 주조기술이 정밀하고 세부 조형도 탁월해 지금까지 알려진 금강저와 금강령 중 가장 완성도 높은 금속공예품으로 꼽히고 있다. 더욱이 금강령의 탁설(鐸舌)이나 사리공(舍利孔)의 존재는 국내 유일한 사례이자, 금강령의 몸체 상단에 새긴 오대명왕(五大明王)과 하단의 범천(梵天), 제석천(帝釋天)사천왕(四天王) 등 11존상의 배치 또한 그동안 보기 드문 희귀한 사례로서 우리나라 밀교(密敎) 법구에 대한 연구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는 고려시대의 수준 높은 금속 공예기법과 불교의례와 공양의식에 사용했던 다양한 금속기들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불교공예사적, 불교의례사적 의의가 크다. 아울러 도봉산 영국사라는 출토지가 분명하고, 고려시대 왕실 관련 밀교 법구로서 원형을 갖고 있으며, 금강령에 조각된 11존상의 조형예술적 특성도 우수하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사유로 다량으로 출토된 금속유물 중 예술적, 공예사적으로 우수한 금강령과 금강저를 비롯하여, 명문을 통해 사용처와 용도, 시주자를 분명히 알 수 있는 현향로, 청동향합, 청동굽다리 그릇, 숟가락과 이들을 담겼던 청동항아리와 청동동이를 보물로 지정하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답사 주목적이었던 석탑기단부를 찾지 못했습니다.

경주 이주암지.. 공주 주미사지가 생각나는

 

영국사지

 

공주 주미사지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3394

 

경주 이주암지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4493

 

한글창제설의 신미대사의 친동생인 김수온의 시를 통해 조선전기에 폐사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사...김수온(1410년 ∼ 1481년).불교신문 

 

간수잔원사로우(澗水潺湲瀉路隅) 골짜기 물은 졸졸 길가로 흐르는데
행인지점시승구(行人指點是僧區) 행인이 가리키 곳 스님들 처소라네 

피진객도욕추모(披蓁客到欲秋暮) 수풀 헤치고 객이 이르니 가을 저물고
면벽선부사일포(面壁禪趺斜日晡) 면벽 선 수행하던 자리 햇살이 비치네

삼생사묘무인식(三生事杳無人識) 삼생의 일 아득하여 아는 이 없으니
불전중영상기무(佛殿重營尙記無) 불전 다시 지은들 기억할 수 있을까

20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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