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천시

영천...시총(詩塚)과 충노 억수지묘(忠奴 億壽之墓)

임병기(선과) 2022. 7. 29. 20:38
728x90
728x90

하천 묘역(夏泉 墓域)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산 78번지. 영일 정씨 문중 묘역입니다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 묘, 정부인 일직 손씨 묘

하천 묘역 맨 위쪽에 있습니다

 

정세아(1535~1612)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이다.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호수(湖叟). 영천(永川)에서 세거(世居)하였다. 사성 정종소(鄭從韶)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참봉 정윤량(鄭允良)이다

 

1558년(명종 13)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족(士族)으로 향촌의 자제들을 동원하여 편대를 정하고 격문을 작성하여 의병을 규합, 900여 명을 모집하여 의병대장이 되었다. 그때 곽재우(郭再祐)는 의령에서, 권응수(權應銖)는 신령에서 각각 기병하여 서로 성원하였다. 그 해 8월 권응수의 지휘 아래 영천 의병장 정대임(鄭大任)·정천뢰(鄭天賚)·조성(曺誠)·신해(申海) 등과 함께 영천 박연(朴淵)에서 왜적과 싸워 큰 전과를 거두고 영천성을 수복하였으나, 전공 포상은 받지 못하였다. 영천성을 수복한 데 이어 다시 경주의 왜적을 격퇴하였다.

 

이로 인하여 낙동강 왼쪽이 온전하였다. 이듬해 평양과 서울이 차례로 수복되자 군사를 조희익(曺希益)에게 맡기고 자양(紫陽)으로 돌아갔다.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에 의하여 여러 번 천거되었으나 사양하였고, 나중에 황산도 찰방(黃山道察訪)을 잠시 지내고 곧 사직하였다. 장현광(張顯光)·조호익(曺好益)·이준(李埈) 등과 학문을 토론하며 후진을 양성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영천의 환고사(環皐祠)에 봉향 되었으며, 그에 대한 『호수실기』가 있다. 시호는 강의(剛義)이다.

(출처.다음)

 

백암(栢巖) 정의번(鄭宜藩) 묘.  충노 억수(億壽)

 

백암(栢巖) 정의번(鄭宜藩). 숙부인 영월 신씨묘

 

정의번(鄭宜藩. 1560~1592)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위보(衛甫), 호는 백암(栢巖). 아버지는 의병장 정세아(鄭世雅)이다.

1585년(선조 18)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천에서 승리, 이어 경주에 진격하여 싸우다가 좌장군 박진(朴晋)의 패전으로 적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빠진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하여 혈전을 벌이다가 적에게 사로잡혔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고 죽임을 당하였다. 우순사 김성일(金誠一)의 장계로 호조정랑에 추증되고, 1732년(영조 8) 좌승지로 가증(加贈)되었다. 1784년(정조 8) 정려가 내려졌으며, 영천 환고사(環皐祠)에 제향되었다."(출처. 다음)

 

시총(詩塚)

경주 전장에서 정의번(鄭宜藩)의 시신을  찾지 못하여, 그의 옷과 갓, 화살촉으로 경주에서 초혼(招魂)을 지낸 후 호수 정세아 선생이 아들 지인들에게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지를 짖게 하여  관에 넣고 장사를 지낸 까닭에 시총이라 합니다.

 

 

贈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兼 經筵叅賛官柏巖鄭公詩塚 贈淑夫人 寧越辛氏祔...出處 湖叟先生實紀 中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백암 정공 시총 증 숙부인 영월신씨 부​


 詩以塜亡於禮之禮也

詩(시)로써 무덤을 삼는 것은 옛날에는 없었던 일이다

先儒論招魂而葬者曰魂歸天魄歸地

선유들은 초혼하여 장사 지내는 것 을 논하여 말하기를 혼은 하늘로 돌아가고 육체는 땅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苟無體魄廟祀之而己魂氣不可得以葬也

참으로 체백이 없다면 사당에서 제사 지낼 뿐이다 혼기는 장사 지낼 수가 없는 것이다.

然則矢復而衣招者皆不可以塜獨詩者象其人者也

그런즉 화살로 복을 부르고 옷으로 초혼 하는 것은 모두 무덤을 할수가 없으되 다만 시 라고 하는것은 그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다

可以當體魄以詩塚其亦不悖於禮乎

오직 시 만이 그 사람을 그릴 수 있어 체백에 해당할 수 있으니 詩塚(시총)도 역시 예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 것이다

世必以葬骨爲幸葬詩爲不幸然
세상에서는 뼈를 장사 지내는 것을 가하다 여기고 시로써 장사 지내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나

纍纍荒原葬骨何限而終歸於朽滅

그러나 쓸쓸한 황원에 뼈를 장사 지내는 것이 하고 많을 테지만 이는 마침내 썩어 없어지는데 돌아갈 뿐이고  

其人與詩終古而不朽者茲塚也何其偉哉

그 사람과 시라는 것은 마침내 오래되어도 썩어 버리지 않을 것이니 이 무덤 이 얼마나 위대하겠는가

公諱宜藩字衞甫其先烏川人鼻祖 高麗樞密院知奏事諱襲明

공의 휘는 의번이요 자는 위보이다. 그 선조는 오천 사람으로 비조는 고려 추밀원 지주사인 휘 습명이다

六嬗而典工判書仁彦徙永川生光厚 本朝工曹判書

6대를 내려와 전공 판서 인언이 영천으로 옮기었다 다음 광후는 본조의 공조 판서이시고

其會孫從韶吏曹佐郎有文章節行於公爲五代祖

그 증손의 휘는 종소이시니 이조좌랑으로 문장이 뛰어나고 절행이 있었으니 공에게 5대 조가 된다

曾祖諱次諱祖諱允良遊退陶門 再除寢郎不赴

증조는 휘가 차근이고 조부의 휘는 윤량이니 퇴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침랑에 두 차례 제수되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考諱世雅 贈兵曹判書行黃山察訪

부친의 휘는 세아로 병조 판서에 증직 되었으며 황산도 찰방을 지냈다. 

妣一直孫氏縣監致雲之女以嘉靖庚申生公

모친은 일직 손씨로 현감인 치운의 따님으로 가정 경신년에 공을 낳았다

天資峻整又服義方之訓常靖處讀書脫略外務

공은 천성적인 자품이 준수하고 단정하였으며 또 의방의 교훈에 복종하여 항상 고요하고 정갈한 곳에서 독서하고 바깥일에 대해서는 모르고 지내었다 

見蒼頭飼牛問誰牛蒼頭 笑曰郎君不知自家牛乎

사내종이 소여물을 주는 것을 보고 누구 소냐고 물으니 하인 종이 웃으며 말하길

“낭군께서는 자기 집 소도 모르십니까.”라고 할 정도였다

以親命赴擧魁鄕試乙酉中司馬聲名蔚然非其志也

부모님의 명을 받고 과거에 응시했는데 향시에서 수석을 차지했으며 을유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명성이 퍼졌으나 그가 지향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愛柏巖泉石築壇風詠沉潜庸學頗 有所自得

백암의 자연을 사랑하여 단을 쌓고 시를 읊조리며 중용과 대학을 깊이 연구하여 자못 자득한 바가 있었다

壬辰奉父母避兵于山中百里負米以供焉

임진년에 부모를 모시고 산중에 피난하였는데 백 리를 등에 쌀을 지고 가서 봉양하였다.

及聞三京失守判書公雪涕倡義公從焉竭力賛畫

삼경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판서공께서 눈물을 씻으며 창의 하자 공이 이를 따라 힘을 다해 계획을 도왔다

每遇賊必皷勇先登

적을 맞닥뜨릴 때마다 반드시 북을 치고 용감하게 선봉에 섰다

時賊據永川公隨判書公登馬峴瞰賊屯因風縱火燒殺賊無遺遂復永川

당시 도적들이 영천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공이 판서공을 수행하여 말을 타고 마현 고개에서 적의 요새를 살피다가 풍세를 따라서 불을 놓아 적을 모조리 태워 죽이고 마침내 영천을 회복시켰다

八二十一日進攻慶州賊與左節度朴晋兵合判書公爲先鋒

8월 21일에 경주에 있는 적을 치러 진격하였는데 좌절도사 박진의 군대와 연합하고 판서공이 선봉이 되었다

薄城下賊開門逆戰義兵殊死戰賊大䘐不能支乃

성 아래에 가까이 갔는데 적이 성문을 열고 역습하였다. 의병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니 적도 크게 기세가 꺾여 지탱하지 못할 형세였다

以奇兵出背後衝晋軍晋敗走義兵亦隨而潰

이에 기병을 배후로 내보내 박진의 군대를 치니 진의 군대가 패주 하였고 의병도 따라서 후퇴하다 궤멸하고 말았다

判書公陷賊陣與賊方力戰公大呼奮釰突圍而進賊大亂相失

판서공이 적진에 빠져서 적과 함께 힘껏 싸우고 있는데 공이 크게 외치며 칼을 뽑아 날래게 돌진하여 적을 에워싸니 적이 크게 혼란하여 우왕좌왕하였다

判書公賴以出圍公不知也猶橫突徧求

판서공이 이 틈을 타서 적진을 탈출하였으나 공은 이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좌우로 충돌하며  두루 찾아다녔다

出而復入者三身被數十創

그리하여 드나든 지 세 번 만에 온몸에는 수십 군데의 상처를 입었으나 

猶怒馬而前彎弓射賊賊應弦而倒

오히려 말을 채찍질하여 앞서서 전진하고 활시위를 당겨 적을 향해 화살을 날리니.

 적이 활을 받고서 꺼꾸러 졌다

旣而所騎馬中丸爲賊所執賊欲降之公罵不絶口而死

좀 있다가 탔던 말이 탄환에 맞아 결국 적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적이 항복을 받고자 하였으나 

공은 적을 꾸짖으며 굴복 하지 아니하고 죽었다

方公之三入也顧其奴億壽曰軍敗父亡吾當死汝則去

바야흐로 공이 세 번째 들어갈 적에 그 종인 억수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군대가 패하고 부친도 돌아가셨으니 나는 죽어야 마땅하나 너는 도망가거라.”하였다

之億壽泣曰君臣父子奴主一也遂從而死異哉
그러자 억수가 눈물을 흘리며 “군주와 신하, 아버지와 아들, 주인과 종은 한 몸입니다.” 하고 따라 죽었으니, 기이하도다.

招諭使金公誠一聞公死驚歎曰茲非二百年培養之遺化歟遂狀聞于朝

우순사 김공 성일이 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탄식하며 말하기를,“이것은 200년 동안 성인의 도리를 배양해 온 유화가 아니겠는가.” 하고 드디어 조정에 장계를 올려 보고하였다.

上嘉之贈戶曹正郎

임금이 이것을 가상히 여겨 호조 정랑에 증직하고

一時交游爭爲 之誄判書公裒哀詞虛堋于騎龍山先兆壬坐原

한때 교유했던 친구들이 다투어 글을 만들어 조상하는데 판서공이 애사를 모아서 기룡산 선영 아래 임좌 언덕에 장사하였다

 

人謂之詩塚

사람들이 "詩塚(시총)"이라 일컬었다.

 

後恭人辛氏祔焉

뒤에 공인 신씨를 그곳에 부장 하였다

諸老先生如鄭寒岡申梧峯稱道公忠孝在遺集可考也

정한강과 신오봉 같은 여러 원로들은 공의 충성과 효성을 칭찬한 것이 유집에 있어 살펴볼 수 있다

今上壬子因公之玄孫重器上言 贈左承旨

상이 임자년에 공의 현손인 중기가 상언한 것으로 인하여 좌승지를 증직 하였다

辛氏系寧越叅奉德麟之女無嗣以季弟守藩子好禮爲後縣監

신씨는 계보가 영월로 참봉 덕린의 따님이다. 후사가 없어서 막내 아우 수반의 아들 홀로 아들을 삼으니 현감이시다

生三男一女時相時僑時諶護軍女適呂爾和側室子二人時傑時振內外曾玄五十餘人

3남 1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시상과 시교, 시심이며 시심은 대호군이시다.딸은 여이화에게 출가하였다.

측실은 아들 둘을 두었는데 시걸과 시진이며 내외 증손 현손이 50여 명이다.

嗚呼忠孝壯烈之氣乘風霆貫日月以山河爲棺棹以天地爲塋域無所往而不在

아, 충효의 장렬한 기개는 바람을 타고 올라 해와 달을 꿰뚫고, 산과 하수로써 관광을 삼고 하늘과 땅으로써 무덤으로 삼아서, 가는 곳마다 계시지 않은 곳이 없으니

 

彼一抔之虛實又何足論也

저 한 줌의 흙이 虛(허)하고 實(실)한 것을 또한 어찌 족히 말할 필요가 있으리오

然孝子歿不忘親忠臣死不忘國

그러나 효자는 죽어서도 부모를 잊지 못하고 충신은 죽어서도 나라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하니,

茲乃先公之所封樹 榮贈之所表揭靈其焉往其必徜徉於斯矣

이에 선공께서 만드신 바요 영광된 증직을 드러내 표창한 바이니, 신영은 그 어디로 가겠는가 반드시 이곳에 노니시라

 

銘曰

다음과 같이 명한다.

 

謂國埀亡而亡其身 身亡而國不亡 忠哉 臣

나라가 망하였다 하고서 자기의 몸을 망쳤으나 그 몸은 죽었어도 나라가 망하지 않았으니 충성스러운 신하이여

​謂父己死而辦其死 身死而父不死 孝哉子

아비가 이미 죽었다고 하여 죽음을 각오하였는데 그 몸은 죽었으나 아비는 죽지 않았으니 효성스러운 아들 이로다

​殉 君親而非吾有 身死綏如死牖

군주와 부모에게 순직하고서 죽고서도 내가 차지하지 아니하고 몸이 죽어 버린 것을 마치 문 닫듯이 하고 

​依 君親而幽吾宅 詩以葬如葬魄

임금과 부모를 의지해서 내 무덤을 만드는데 詩(시)로써 장사를 지내는 것과 같이하는구나

​山可崩 海可渴 茲塚之兀 詩耶誄耶 不死公者節耶

산은 무너질 수가 있고 바다는 마를 수가 있으나 이 무덤의 높음이여 詩(시)야 祭文(제문)아 공의 절개는 죽지 않을 것이다


 嘉善大夫 龍驤衞副司直兼弘文館提學 同知義禁府 春秋館事 吳光運 撰

가선대부 용양위 부사직 겸 홍문관 제학 동지의금부 춘추관사 오광운이 글을 짓다.

 

*吳光運(오광운):관향은 同福(동복) 자는 永白(영백) 호는 藥山(약산) 대사헌 대사간 역임  이조판서와 대제학 추증

 

출처:네이버  블로그.(시와 음악이 있는) 惟吾德

 

충노 억수 묘

시총(詩塚) 비석의 병서(倂序)에 억수에 관한 글입니다.

 

方公之三入也顧其奴億壽曰軍敗父亡吾當死汝則去

바야흐로 공이 세 번째 들어갈 적에 그 종인 억수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군대가 패하고 부친도 돌아가셨으니 나는 죽어야 마땅하나 너는 도망가거라.”하였다

之億壽泣曰君臣父子奴主一也遂從而死異哉
그러자 억수가 눈물을 흘리며 “군주와 신하, 아버지와 아들, 주인과 종은 한 몸입니다.” 하고 따라 죽었으니, 기이하도다.

 

바석 전면

비석 후면

시총(詩塚과 충노(忠奴)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들게 합니다.

 

우리나라의 충노(충비) 비석

https://blog.daum.net/12977705/8727148

 

2022.06.17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