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함양군

함양...추성동 지리산 성모상

임병기(선과) 2022. 4. 2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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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면 추성동 주차장 근처 펜션가에 위치합니다

근자에 모셨습니다

 

지리산 성모상

지리산 성모는 천왕(天王), 천왕할매 ,마고(麻姑)할매,마야부인(摩耶夫人) 등의 속칭을 가지고 있는 지리산 수호 여신이다. 또한,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어머니인 선도 성모를 지리산의 산신으로 모시고 국가 수호신으로 숭상했다는 기록,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를 지리산 산신으로 모셨다는 기록, 불교에서는 석가여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지리산 산신으로 모셨다는 설화, 무속에서는 천신의 딸 마고 성모가 하늘에서 내려와 여덟 명의 딸을 낳아 모두 무당으로 키워 팔도로 보낸 다음 자신의 뒤를 잇게 하고, 자기는 무조(巫祖)가 되었다는 전설 등이 있다.

현재 성모상은 5곳에 남아 있다. 천왕봉에 있었던 성모상은 산청 천왕사에 있으며, 산청 중산리와 함양 오도재 지리산 조망공원, 함양 마천면 백무동의 성모상과 추성동 성모상은 근자에 복원하여 모셨다.

지리산 천왕봉 성모상은 1472년 김종직(金宗直)의 유두류록(遊頭流錄) 1489년 김일손의 두류기행록에도 실려있어 최소한 조선 초기 이전 부터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두류록(1472년 김종직)

성모상의 다른 이름인 박혁거세의 선도 성모, 위숙왕후, 마야부인 등 민간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대부분 실려 이으며, 사당의 크기와 하얗게 호분 입힌 상호, 인월에서 태조 이성계에게 패한 왜구가 이곳에 올라와서 목을 친 자국이 남아 있는 성모상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乃登天王峯。雲霧蓊勃。山川皆闇。中峯亦不見矣。空宗先詣聖母廟。捧小佛。呼晴以弄之。余初以爲戲。問之。云。俗云如是則天晴。余冠帶盥洗。捫石磴入廟。以酒果告于聖母曰 (중략) 伏丐聖母。共坐神位前。酒數行而罷。祠屋但三間。嚴川里人所改創。亦板屋。下釘甚固。不如是。則爲風所揭也。有二僧繪畫其壁。所謂聖母乃石像。而眉目䯻鬟。皆塗以粉黛。項有缺畫。問之。云太祖捷引月之歲。倭.冦登此峯。斫之而去。後人。和黏復屬之。東偏陷石壘。空等所弄佛。在焉。是號國師。俗傳聖母之淫夫。又問聖母。世謂之何神也。曰。釋迦之母摩耶夫人也。噫。有是哉。西竺與東震。猶隔千百世界。迦維國婦人。焉得爲玆土之神。余甞讀李承休帝王韻記。聖母命詵師。註云。今智異天王。乃指高麗太祖之妣威肅王后也。高麗人習聞仙桃聖母之說。欲神其君之系。創 爲是談。承休信之。筆之韻記。此亦不可▦徵。矧緇流妄誕幻惑之言乎。且旣謂之摩耶。而汚衊以國師。其褻慢不敬。孰甚焉。此不可不辨。(하략)

천왕봉을 올라가 보니, 구름과 안개가 성하게 일어나 산천이 모두 어두워져서 중봉(中峯) 또한 보이지 않았다.해공과 법종이 먼저 성모묘(聖母廟)에 들어가서 소불(小佛)을 손에 들고 개게[晴] 해달라고 외치며 희롱하였다. 나는 처음에 이를 장난으로 여겼는데, 물어보니 말하기를,

“세속에서 이렇게 하면 날이 갠다고 합니다.”

하였다. 그래서 나는 손발을 씻고 관대(冠帶)를 정제한 다음 석등(石磴)을 잡고 올라가 사당에 들어가서 주과(酒果)를 올리고 성모(聖母)에게 다음과 같이 고하였다.(중략)

제사를 마치고는 함께 신위(神位) 앞에 앉아서 술을 두어 잔씩 나누고 파하였다. 그 사옥(祠屋)은 다만 3칸으로 되었는데, 엄천리(嚴川里) 사람이 고쳐 지은 것으로, 이 또한 판자 지붕에다 못을 박아놓아서 매우 튼튼하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바람에 날릴 수밖에 없었다. 두 중이 그 벽(壁)에 그림을 그려 놓았는데, 이것이 이른바 성모(聖母)의 옛 석상(石像)이란 것이었다. 그런데 미목(眉目)과 쪽머리[髻鬟]에는 모두 분대(粉黛)를 발라놓았고 목에는 결획(缺畫)이 있으므로 그 사실을 물어보니 말하기를,

“태조(太祖)가 인월역(引月驛)에서 왜구(倭寇)와 싸워 승첩을 거두었던 해에 왜구가 이 봉우리에 올라와 그 곳을 찍고 갔으므로, 후인이 풀을 발라서 다시 붙여놓은 것입니다.”

하였다. 그 동편으로 움푹 들어간 석루(石壘)에는 해공 등이 희롱하던 소불(小佛)이 있는데, 이를 국사(國師)라 호칭하며, 세속에서는 성모의 음부(淫夫)라고 전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또 묻기를,

“성모는 세속에서 무슨 신(神)이라 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석가(釋迦)의 어머니인 마야부인(摩耶夫人)입니다.”

하였다. 아, 이런 일이 있다니. 서축(西竺)과 우리 동방은 천백(千百)의 세계(世界)로 막혀 있는데, 가유국(迦維國)의 부인이 어떻게 이 땅의 귀신이 될 수 있겠는가. 내가 일찍이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記)》를 읽어보니, ‘성모가 선사를 명했다[聖母命詵師]’는 주석에 이르기를,

“지금 지리산의 천왕(天王)이니, 바로 고려 태조(高麗太祖)의 비(妣)인 위숙왕후(威肅王后)를 가리킨다.”

하였다. 이는 곧 고려 사람들이 선도성모(仙桃聖母)에 관한 말을 익히 듣고서 자기 임금의 계통을 신격화시키기 위하여 이런 말을 만들어낸 것인데, 이승휴는 그 말을 믿고 《제왕운기》에 기록해 놓았으니, 이 또한 고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더구나 승려들의 세상을 현혹시키는 황당무계한 말임에랴. 또 이미 마야부인이라 하고서 국사(國師)로써 더럽혔으니, 그 설만(褻慢)하고 불경(不敬)스럽기가 무엇이 이보다 더 심하겠는가. 이것을 변론하지 않을 수 없다.(하략)

두류기행록(1489년 김일손)

탁영은 천왕봉에 올라 성모사당에서 하룻밤 유숙하였으며, 성모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薄暮. 上峯頂. 頂上有石壘. 僅容一間板屋. 屋下有石婦人像. 所謂天王也. 紙錢亂掛屋樑. 有嵩善金宗直季昷,高陽兪好仁克己,夏山曺偉太虛. 成化壬辰中秋日同登. 若干字. 歷觀曾遊人姓名. 多當世之傑也. 遂宿祠宇. 襲重綿加煖衾以自溫. 從者燎火祠前以禦寒. 夜半. 天地開霽. 大野洪厖. 白雲宿於山谷. 如滄海潮上. 多少浦口. 白浪驅雪. 而山之露者. 如島嶼點點然也. 倚壘俯仰. 愯然神心俱凜. 身在鴻濛太初之上. 而襟懷與天地同流矣.

저물녘에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한 칸의 성모사당이 겨우 들어앉은 돌무더기가 있었다. 판잣집 안에는 돌로 된 부인상(婦人像)이 있는데, 이른바 천왕(天王)이었다. 그 판잣집 들보에는 지전(紙錢)이 어지러이 걸려 있었다. 또, “숭선(嵩善) 김종직(金宗直) 계온(季昷), 고양(高陽) 유호인(兪好仁) 극기(克己), 하산(夏山) 조위(曺偉) 태허(太虛)가 성화(成化) 임진년(1472) 중추일에 함께 오르다.” 라고 쓴 몇 글자가 있었다. 일찍이 유람한 사람들의 성명을 차례로 훑어보니, 당대 걸출한 사람들이 많았다.

 

사당에서 묵기로 하였다. 겹으로 된 솜옷을 껴입고 두터운 이불을 덮어 몸을 따뜻하게 하였다. 따라온 사람들은 사당 앞에 불을 지펴놓고 추위를 막았다. 한밤중이 되자 천지가 맑게 개어 온 산하가 드러났다. 흰 구름이 골짜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 마치 넓은 바다에서 조수가 밀려와 온 포구에 흰 물결이 눈처럼 하얗게 부서지는 듯하였다. 그리고 드러난 산봉우리들은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섬 같았다. 돌무더기에 기대어 사방을 둘러보니 외람되게도 마음과 정신이 모두 늠름하고 몸은 아득한 태초에 있는 듯 하여 회포가 천지와 함께 흘러가는 듯하였다

 

지리산 성모상

 

산청 천왕사 지리산 성모상

https://blog.daum.net/12977705/8727297

 

산청 중산리 지리산 성모상

https://blog.daum.net/12977705/8727280

 

백무동 성모상

https://blog.daum.net/12977705/8727048

 

오도재 마고할멈상(2013년). 글속의 사진은 오도재가 아니라 지안재입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4004

 

현장 안내문

 

202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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