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안동시

안동...동부동 오층 전탑. 운흥동 당간지주

임병기(선과) 2022. 2. 16.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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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답사 마니아들처럼 여러 번 전탑입니다.

 

2008년 01월 글과 그 이전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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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동 전탑 앞. 가을날 들렸었구나.  

 

동부동 전탑

나는 아주 겁이 많고 소심한 편이다. 조부님과 선친의 살아생전에 일화를 보면 틀림없이 집안 유전자 때문일 것이다. 대구에서 고교를 다녔지만 방학이면 조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에서 오랫동안 지낸 탓에 여름방학에는 동무들은 수박, 참외서리를 했지만 난 늘 방관자였다, 물론 먹을 때는 적극적(?) 참여를 했다 ㅎㅎ. 겨울 방학 때는 닭서리를 하러 갔지만 나의 성격을 아는 친구들의 배려(?)로 동네 입구에서 망을 보는 곁다리였다. 울퉁불퉁 비포장 황톳길 겨울 야밤에는 차량통행이 거의 없었지만 혹 화물차의 불빛이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망지기 본연의 자세를 망각하고 머리를 덤불 속에 처박은 꿩처럼 도랑에 머리를 처박기 급급했다.

 

그런 탓에 안동 역전의 동부동 전탑 답사 때마다 전탑을 바라보는 설렘보다는 잠시만 보면 되는데 주차장 관리 아저씨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무료로 차를 파킹 할까로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래서 내린 결론 말없이 차를 파킹 한 후 나올 때 500원 지불하고 있다. 그건 혼자만의 불문율인데 아직 유효할까?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 법림사의 전탑으로 추정한다.『영가지』에 법림사 전탑이 7층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무너지고 멸실되어 5층 탑으로 복원된 듯하다 또한 탑 상륜에는 칠곡 송림사 전탑 상륜부처럼 금동제 상륜부가 있었으나 신세동의 전탑 상륜부와 함께 임진왜란 직후 명나라 군인들이 탈취해갔다고 전해진다. 목탑의 형식인 지붕돌의 기와가 보이며 전탑의 특징인 1층 감실 좌우의 인왕상이 동부동 전탑에는 2층에 새겨져 있어 본디의 모습인지 의아스럽다.  

몸돌마다 화강암 감실이 있는 것도 다른 전탑과 차이가 있다.

 

상륜에는 복발이 보이며 옥개석에는 지붕을 이었다. 다른 전탑에 비해 처마가 깊지 않다. 

 

운흥동 당간지주.

전탑과 같은 절집 당간지주. 아니었을까? 그런데 왜 동부동 전탑, 운흥동 당간지주로 부를까? 

 

(사진, 2008년 이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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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022년

여전히  유로주차장은 운영 중이었으며, 찾는 사람 드문 시골 마을 점방 할머니처럼 무표정한 관리인 아주머니가 귀찮다는 듯 문을 열고 말없이 주차비를 징수하였습니다

 

법림사지(法林寺址)

문화재청 발간 한국의 사지에는 신동국여지승람 기록을 근거로 법림사지로 비정하며, 본래는 안동의 비보 석탑으로 건립한 7층 전탑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1598년 임진왜란 때 참여한 명나라 장수가 금동제 상륜부를 가져가기 위해 철거하였으며, 이후 일제 강점기 사진에는 5층으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동부동 전탑은 산천 비보 풍수가 유행했던 고려 초기 이전에도 고을 맥이 풍수 비보가 시작되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동부동 전탑은 9세기에 조성한 전탑으로 전하기 때문입니다

 

"법림사의 창건과 관련된 문헌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성의 남쪽에 있다고 하며, 『永嘉誌』 古跡條에는 ‘법림사에 임진왜란 직후까지 3칸의 건물이 남아 있었고 흙으로 만든 불상이 3구, 흙으로 만든 코끼리가 하나 있었다’고 전한다. 『永嘉誌』 古塔條에는 ‘성 남문 밖에 있으며 7층으로 본부의 대비보이다. 위에는 법흥사 탑과 같은 장식이 있다. 萬歷 무술년에 명나라 장군 양등산의 군인이 철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永嘉誌』 古跡條에서는 당간지주를 남문 밖 철주로 소개하고 있다. 『輿地圖書』에는 “今廢”라고 기록되어 있다"(한국의 사지)

 

그런데,  초층 탑신석에 감실, 3층 탑신석의 인왕상, 3층 탑신석에도 작은 감실이 있어 고개를 가웃 거리게 합니다.

왜냐하면, 초층 탑신석 감실에는 불상을 봉안하였을 것인데, 2층 탑신석에 인왕상 배치는 위계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탑 감실 좌우에 시립한 다른 전탑의 사례와 달리 한 면에 아금강과 흄금강을 모시고 있어 본래부터 있었던 상(像)인지 여부도 의심스럽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시각입니다

 

기단부

지대석 위에 2단 굄을 두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탑은 토층 위에 단층 기단이 전형이지만 원형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초층 탑신석 감실

문얼굴의 하인방은 본래 부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문설주와 상인방의 폭이 다르기 때문이며,  하인방에는 탱주로 구획하여 2개 안상을 새겼습니다.

 

2층 탑신석의 금강상

 

탑신부

초층 탑신석의 감실, 2층 탑신석의 금강상과 서면의 작은 감실, 3층 탑신석 남면에도 감실이 있습니다

옥개석에는 기와를 올렸습니다

상륜부에는 복발이 남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7층 에서 오층으로 바뀌면서 기단부가 없어지고, 많은 벽돌이 훼손, 망실되어 감실, 인왕상의 본래 위치가 잘 못 복원된 듯합니다. 

 

경북 안동의 석탑. 석탑부재

https://blog.daum.net/12977705/8727087

 

우리나라의 전탑, 모전석탑

https://blog.daum.net/12977705/8725570

 

조선고적도보. 1916년

 

운흥동 당간지주

전탑과 동시대에 조성된 당간지주로 추정합니다.

"1608년에 간행된 안동읍지, 영가지(永嘉誌)에는 철당간으로 비보 목적으로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18세기 중엽에 간행된 여지도서에는 강희 갑인년에 부사 맹주서가 당간을 개조하였고, 기묘 년에 부사 홍득우가 승도(僧徒)로 하여금 고쳐 세우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또한 황성신문(1909년 9월 22일) 자에 안동의 철당간이 소개되어 있었으나 조선고적도보(鮮古蹟圖譜)에는 당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선 고적도보를 편찬한 1909년~1935년 사이에 당간이  없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한국의 사지에서 발췌 정리하였으며, 승도(僧徒)의 한문 표기는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간구

 

주좌. 당간공

 

당간지주

상부를 모죽임하였으며, 내부에는 특별한 문양이 없고, 바깥에는 세로 띠를 새겼습니다.

북쪽 지주의 간공은 뚫리지 않았으나, 남쪽 간공은 관통하였습니다

 

관통된 남쪽 지주의 간공

 

우리나라의 당간지주

https://blog.daum.net/12977705/8726123

 

법림사지 전탑과 당간지주로 추정됩니다.

본래 7층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5층으로 바뀌어 기단부도 사라지고,  현재의 감실과 인왕상 위치 등은 재고할 가치가 있습니다. 아울러, 영가지 기록을 통하여 전탑과, 당간지주는 안동의 허기를 비보하기 위해 조성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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