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정읍시

정읍...사자산 석탄사 오층석탑. 청신녀 김씨 부도

임병기(선과) 2021. 9. 17. 08:01
728x90
728x90

석탄사.

칠보면 허궁실 2길 186-125

 

예전에 답사 계획을 세웠으나 근세 오층탑으로 지레짐작하고 동선에서 제외했었던 사찰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우리 카페 달넘새 님 포스팅을 보고, 정읍 답사의 주목적으로 석탄사와 상두사지 괘불지주를 뵙기 위해 찾았습니다.

 

대웅전 불단

현판과 다르게 아미타 부처님과 대세지와 관음보살을 협시로 모셨습니다

 

석탄사(石灘寺)

"신라 선덕여왕(632~647) 때 의상(義湘)이 창건했다고 전하나 신빙성이 없다. 당시 이 지역은 백제의 영토였다. 자세한 내력은 확인할 수 없지만 조선시대에 까지 사세가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소실됐는데 1750년(영조 26) 칠보면 백암리에 사는 자선사업가 모은(慕隱) 박잉걸(朴仍傑, 1676 ~ ?)이 중건했다. 운문사 추계유문(秋溪有文)의 제자인 무경자수(無竟子秀, 1664∼1737)가 주석하였다. 1894년(고종 31) 동학운동으로 건물이 소실되었으며, 그 뒤 태인의 거사 김수곤(金水坤, 1873∼1950)이 중건했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었고 1973년 주지 탄월(灘月)이 어머니 송씨 부인의 유지를 받들어 1986년 불전과 종각을 조성했다. 그리고 1988년에는 요사와 승방, 염불전과 삼성각을 건립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층 석탑

2단 지대석

 

하층 기단

중석과 갑석이 일석

중석에는 우주와 탱주 1주, 갑석에는 복판 복련, 약간의 물매

갑석의 복련, 1단 중석 굄

 

상층기단

감입식 결구 중석, 각면에 신장상 

갑석의 복련, 희미한 물매. 1단 탑신굄, 부연 생략. 1단 탑신 굄

 

탑신부

옥개석

전층 4단 층급받침, 낙수면 물매 급하지 않고, 1단 탑신 굄 조출, 전각의 반전도 미미

탑신석

우주 모각, 1매 석

 

상륜부

노반, 앙화(?) 보륜, 보주 받침(?), 보주

 

달넘새 님은 조선후기 석탑으로 추정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이후 느낌이 들어 정읍의 지인과, 스님께 탐문해 보았으나 모르고 계셨습니다

 

기단부

 

지대석

2단, 각각 3매석

 

하층 기단 갑석

복련 조식, 중석과 일석, 중석에는 우주와 탱주 모각(사진에는 보이지 않음)

 

신장(1)

칼(?)을 지물로 들고 있습니다.

모든 상이 당당한 자세가 아니고 무릎을 굽힌 엉거주춤한 모습입니다

 

신장(2)

지물은 철퇴(?)

 

신장(3)

삼지창을 지물로 들고 있습니다

 

신장(4)

신장(3)과 더불어 삼지창이 지물입니다.

넓은 우주에 무엇인가 새긴 명문을 인위적으로 훼손한 흔적이 뚜렷합니다

 

상층기단 중석

부연 생략, 약간의 물매, 복련 조식, 1단 탑신 굄 조출

 

탑신부

탑신석에 우주 모각

옥개석

전층 4단 층급 받침, 전각 상부의 반전, 미미한 물매, 1단 탐신 굄

 

상륜부

노반. 앙련. 보륜. 보주 받침. 보주

우리에게 익숙한 상륜부는 아닙니다.

 

1718년에 발간된 무경 자수 스님의 무경집(無竟集)에는 석탄암 칠언 율시에 고탑(古塔)이 실려있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생존 시기로 보면 현재의 탑이 그 당시에는 고탑이 될 수 없습니다. 즉 현재의 탑은 1718년 이후 어떤 연유로 도괴되어 중수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석탄암(石灘庵)... 무경자수(無竟子秀, 1664∼1737)

 

金沙作勝遊(특매금사작성유) 아름다운 금사 세계에 노닐고

乾坤揮斥放吟眸(건곤휘척방음모) 천지를 두루 보며 소요하네

俯看滄海拗堂覆(부간창해요당복) 아래로 창해가 작게 보이고

仰見靑天咫尺浮(앙견청천지척부) 위론 푸른 하늘이 지척이네

絕壁臺邊層古塔(절벽대변층고탑) 절벽 누대 가엔 층층 옛 탑

飛泉落處汲淸流(비천낙처급청류) 떨어지는 맑은 샘물 긷네

祗林景物難收盡(기림경물난수진) 기림의 경물 다 담기 어려워

歸路遲遲興更悠(귀로지지흥경유) 귀로는 더디고 흥은 한없네 

 

(음운은 개인적인 해석이며, 번역문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부도전

검색하면 2019년 이전 사진에는  향 맨 좌측 부도만 있으므로, 부도전은 그 이후에 조성되었습니다

 

청신녀 김씨 부도

방형 지대석, 둥근 대좌, 종형 탑신, 육각 옥개석, 상륜부

 

근대 부도로 여겼는데, 배례석 명문이 재미있습니다.

 

청신녀 유인 울산 김씨 만선화 사리부도(靑信女 儒人 蔚山 金氏 舍利浮屠)

(음운은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만력 갑술 지월 순중(萬歷 甲戌 至月 旬中)

의성후인 참봉 김영섭 자당 득 치사리 일과(義城后人 參奉 金永燮 慈堂 得 齒舍利 一顆)

세재 정축 추계 봉안 우시사(歲在丁丑 季秋 奉安 于是寺)

장자 김영섭(長子 金永燮)

손 규태(孫 奎泰)

 

1574년 11월(萬歷 甲戌 至月) 의성후인 참봉 김영섭이 어머니(慈堂)의 치사리 일과를 수습하여 삼 년 후 1577년 가을에 본인(맏아들 김영섭)과 아들(손자 규태)이 이 절(于是寺)에 봉안하였다.

 

어머니는 울산 김씨

아들은 의성 김씨로 추정하며, 삼년상을 마친 후 석탄사에 치사리 부도를 세운 것 같습니다.

 

(한문 판독, 음운, 해석은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그런데

부도가 근세에 봉안한 느낌입니다.

훼손된 본래 부도를 일부 복원, 또는 도난 등의 사유로 새롭게 조성한 승탑일까요?

 

오층석탑

고려 탑을 조선 후기 또는 근세에 기단부와 상륜부 등을 후보한 탑일까요?

 

부도

1577년에 세운 부도일까요?

 

전문가. 학계에 계신 분들의 혜안을 기다리겠습니다

 

2021.08.13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