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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세종특별자치시

세종...연기 비암사

by 임병기(선과) 2021.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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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암사

불비가 국박으로 옮겨갔지만 답사객에게는 필수 답사 코스입니다.

그런저런 사유로 10년 만에 다시 찾았으나, 부도 외에는 전혀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비암사

"창건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전해지는 말로는 중국 한나라 무제 때인 오봉원년(B.C.57)에 창건되었다고도 하고, 1954년에 간행된 『전성지(全城誌)』라는 책에는 박혁거세 즉위년에 세워졌다고도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삼국시대 창건된 사찰로 전하고 있으나 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 남북국시대 초기에 혜명법사(惠明法師)가 창건하였다고도 하나 역시 확실하지 않으며 현장의 안내문, 통일신라말 도선(道詵)국사가 창건 또는 중창한 사찰이라고도 하나 이 역시 확실하지는 않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백제의 북혈사(北穴寺)라고도 하며, 백제 멸망 후 그 유민들에 의해 건설했다는 전설이 전하기도 한다. 현재 양력 4월 15일에 괘불을 걸고 백제대제를 거행하는데, 이 행사는 약 1,300년간 계속된 것이라 한다. 이는 비암사가 백제의 부흥을 위해 백제 역대 임금과 대신들의 영혼을 위한 천도사찰로서 지어진 백제의 마지막 사찰임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입니다.

보물인 줄 몰랐으니...

 

창호

넉살문 4 분합이나, 중앙 2 분합이며 옆에 문설주를 세우고 머름대를 두고 문을 설치하였습니다

 

측면

 

후면

 

소조아미타여래좌상

한눈에 무릎이 낮고, 치켜올린  눈, 불도가 큰 불상으로 다가옵니다.

나발, 중간계주와 높은 육계, 이목구비가 뚜렷한 장방형 상호, 백호를 새겼습니다.

삼도가 있고, 우견편단에 편삼을 걸친 이중 착의법입니다. 

왼쪽 어깨로 넘어가는 대의 자락은 어깨선에서 한 번 접혀 반전하였고, 승각기는 수평으로 매듭지었습니다.

중품하생 수인, 조성시기는 조선전기로 추정합니다

 

영산회 괘불도(미공개. 디지털세종문화대전)

 

산신도. 1924년

 

독성도. 1924년

 

칠성도. 1924년

 

신중도. 1924년

 

대웅전

 

대웅보전 불단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간 불비 복제품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2010년 글

https://blog.daum.net/12977705/8723060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彌勒菩薩半跏思惟碑像)

 

기축명아미타불비상(己丑銘阿彌陀佛碑像)

 

명부전

 

명부전 지장보살

 

산신각

 

비암사 삼층석탑

1960년 삼층석탑에서 계유명전씨 아미타불삼존석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三尊石像),  기축명 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己丑銘阿彌陀如來諸佛菩薩石像), 미륵반가사유석상(彌勒菩薩半迦石像)이 발견된 귀중한 석탑입니다.

 

기단부

기단 갑석을 제외하고 후보물입니다.

그런데, 단층 기단이었을까요?

 

배례석

 

기단 갑석

물매가 없으며, 굄을 생략하였고, 부연을 새겼습니다

기타 부재는 후보물입니다

 

탑신부

옥개석, 탑신석은 하나의 돌

탑신석에는 우주를 모각하였으며, 2.3층 탑신 아래는 2단 굄을 조출하였습니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가 완만하며, 전각의 반전은 경쾌하고, 옥개석 층급받침은 전층 4단입니다.

 

상륜부

노반석은 2매 부재이며, 하단은 3층 옥개석과 일석입니다.

앙화 위의 보주는 후보물 느낌입니다.

 

고려초기 석탑으로 전하는 단층 기단의 삼층석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대웅전 옆에 석탑부재로 추정되는 석물이 있습니다.

 

어떤 부재일까요?

복발과, 기단갑석?

 

아래쪽

절수구, 안상, 우주

현장에서는 석탑 기단 갑석으로 생각했습니다

 

안상

안상 속에 문양이 있습니다

 

귀꽃

사진을 회전시켜보았더니, 안상 속 문양은 귀꽃이었습니다

현재 부재는 뒤집힌 상태입니다.

 

즉, 지대석과 하층기단 저석, 중석이 일석으로 조성된 석탑 부재입니다.

중석 안상에는 귀꽃이 피었으며, 절수구로 판단했던 것은 지대석 상부의 1단 굄입니다.

 

이 석탑 부재는 지대석과 하대석이 일석인 부재이며, 하층 기단 갑석이 망실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암사 삼층 석탑은 단층 기단이 아니라 이층 기단의 삼층 석탑 아니었을까요?

 

느티나무

 

부도전

조선 후기 부도 2기

 

청한당 성정탑(淸閑堂性淨塔)

기단, 탑신, 옥개석, 상륜을 갖추었습니다.

방형 지대석과, 대좌를 일석으로 조성하였으며, 하부의 앙련은 형식적입니다.

대좌에는 조성 시기와 시주자 이름을 음각되어 있습니다.

옥개석은 낙수면 물매와 전각 반전이 심한 사모지붕입니다.

보주는 사모지붕 상부의 절병통처럼 느껴집니다

 

탑신석

(淸閑堂性淨塔)

 

기단부

강희 갑오입탑(康熙甲午立塔)

1714년

 

시주 준ㅁ(施主俊ㅁ)

 

당호를 새기지 않은 부도

방형 자연암반으로 지대석을 삼고, 탑신석을 올렸습니다.

탑신석에는 세호를 새겼으며, 국내 유일의 유형입니다

사모지붕 옥개석 상부에는 작은 보주를 올렸습니다

 

탑신석

 

세호

 

비암사

백제 유민들과 통일신라의 위무책을 엿볼 수 있는 불비상이 발견된 절집

통일신라 불비상,  고려전기 이전의 삼층석탑, 조선초기의 소조여래좌상, 조선 후기의 유례가 없는 세호가 새겨진 부도, 일제 강점기 불화  등 전시대를 망라한 문화재를 만날 수 있는 가람입니다.

 

산신각에서 바라보는 뷰도 그만이라는데...

 

202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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