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제주

제주...관음사 목조관음보살좌상

임병기(선과) 2021. 7. 3.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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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

제주시 산록북로 660

대한불교 조계종 제23교구 본사입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3교구의 본사이다. 창건자 및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조선 숙종 때 제주목사였던 이형상(李衡祥)이 제주에 잡신이 많다 하여 많은 사당과 함께 사찰 500동을 폐사시켰을 때 폐허가 되었다.

 

현재의 관음사는 1909년 봄 비구니 봉려관(蓬廬觀)이 창건한 것이다. 봉려관은 제주도 사람으로 1901년 비양도(飛揚島)로 가는 길에 우연히 풍랑을 만나 사경에 이르렀을 때 관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나게 되자, 1907년 비구니가 되었다. 1908년 제주도로 돌아와 4월 경찬재(慶讚齋)를 열었다. 이후 주민들이 반대하여 죽이려 하므로 한라산으로 피신했다가, 1909년 봄 한라산에 관음사를 창건하였다. 1910년 용화사(龍華寺)에서 불상과 탱화를 모셔와 관음사에 봉안하였다. 1949년 1월 제주 4·3 항쟁으로 전소되었고, 1968년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종루·산신각·불이문(不二門)·대방(大房) 등이 있다. 현재 이 절은 조계종의 본사로서 제주도의 말사 약 30여 개를 관장하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주문에서 천왕문으로 진입하는 동선 좌우에 석불좌상을 봉안하였습니다

 

천왕문

 

해월당 봉려관(1895년~1938년)

관음사 개산조로 제주 화북리에서 부친 순흥 안 씨. 어머니 신 씨의 차녀로 출생, 1907년 해남 대흥사에서 비구니 유장을 은사로 출가하여 제주 최초 비구니 스님이 되었습니다, 1908년 제주도로 귀환, 1909년 관음사를 창건하였습니다

이후 제주도의 여러 사찰을 창건하였으며, 항일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게 됩니다. 1938년 독버섯을 먹고 입적하였으나, 일본군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설이 파다하게 전합니다(다음. 봉려관에서 발췌)

 

해월굴

창건주인 봉려관 스님이 1908년 10월부터 3년간 수도 정진한 굴

 

삼성각. 대웅전

 

대웅전. 극락전

 

범종루. 방사탑

육지의 조산은 사찰 일주문 밖에 위치하여, 사찰 지킴이, 경계 구분 등의 기능이 있습니다.

담쟁이로 뒤덮인 방사탑이 사찰 경내에 위치하여, 사세가 확장되기 전부터 있었던 탑인지, 아니면 근자에 조성한 탑인지 궁금합니다.

 

대웅전

 

불단

석가여래 삼존을 봉안

 

목조 관음보살좌상. 

대웅전 중앙 불단 향우 측에 봉안된 제주 유형문화재 16호

1698년 제작되어,  영암 성도암에서 개금 후  해남 대흥사에 봉안됐다가 1908년 제주 관음사를 재 창건한 안봉여관스님이 1925년 대흥사의 말사인 제주 관음사로 옮겨온 보살상입니다. 제작처, 봉안처가 분명하면 발원문이 있다는 뜻인데, 찾아 보지 못햇습니다.

 

목조 관음보살좌상. 1698년

삼산 보관(三山寶冠)에는 꽃무늬 8송이가 배치돼 있고 좌우는 화염문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작은 상호에 백호를 표현하였고, 눈, 코, 입은 정연합니다. 목에는 삼도를 희미하게 새겼고, 보발이 통견의 법의 양  어깨 위까지 흘러내렸습니다. 승각기는 화문으로 매듭지었으며, 대의 자락이 무릎을 덮고 있습니다.  중품하생의 수인이며, 본래부터 단독으로 모신 보살상인지 아미타불의 좌협시 보살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비가 내려 주마간산식 답사가 되어, 아미타불화도 놓쳤습니다.

다시 기회가된다면, 봉려관 스님의 일생을 되짚어 보고, 4,3 항쟁과 관음사, 군주둔지 터, 주변 숲 등등 심도 있는 순례가 되리라 다짐해봅니다.

 

2021.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