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경산시

경산...자인 향교

임병기(선과) 2021. 1. 1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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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인 향교

40여 년 전, 친했던 대학 친구 고향이어서 여러 번 찾았지만 아무런 기억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전학후묘 배치

하지만 문이 닫혀 까치발로 바라보았습니다.

 

자인향교

자인현은 본래 노사화현(奴斯火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자인으로 고쳐 장산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현종 9년의 전국적 군현 개편에 즈음하여 자인현은 동경유수관인 경주의 속읍이 되었다. 고려시대 이래 경주의 속읍으로서 가혹한 수탁의 대상이 된 자인은조선 인조 때에 이르러 복현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인조11년(1663) 백렴(白濂)이 홀로 궐문 앞에서 복현을 주청하였고,이어 이광후(李光後) 김응명(金應鳴)등이 읍민 3백여명과 함께 상경하여 복현을 진정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후 동왕 15년(1637)에 이시험등이 다시 복현을 진정함에 비로서 현감을 두었다. 그후 고종 32년 군으로 승격 되었다가 1914년에 경산군에 병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연혁을 가진 자인은 조선조 명종 17년(1562)에 자인의 주읍인 경주의 부윤 이정에 의해 향교가 건립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고려조(高麗朝) 구기(舊基)에 건립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 첫 향교의 건립이 이미 고려 때 이루어졌음을 알수 있다.

 

명종조에 건립된 향교는 임진왜란 때 병화로 불타 버렸고, 인조 15년(1637년)에 자인에 현이 설치되어 현감이 파견된 뒤 현종13년(1672)에 와서야 현인 이춘암(李春馣)등이 중건을 소청함으로써 비로서 숙종 1년(1675)에 도천산(到天山) 아래에 이치(移置)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인의 일읍으로서의 행세가 이 때에 와서야 비로소 가능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자인향교의 흥학활동의 본격적 시작은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후 영조4년(1728)에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영남읍지(嶺南邑誌)』『자인읍지(慈仁邑誌)』 학교조에 현이 동쪽 1리에 있다고 한 것으로서 경산시 자인면 교촌리 230번지에 해당한다.

 

그후 1754년(영조 30년)에 조선적(曺善迪) 현감(縣監) 완산(完山) 이윤항(李胤沆)이 농업 권장과 흥학(興學)에 힘써 현민(縣民)의 존경을 받았다고 찬(讚)한 「흥학기문(興學記文)」이 자인향교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게판기문(揭板記文)으로 남아 있다. 두 번째로 오래된 게판기문(揭板記文)은 1802년(순조2년)에 지현(知縣) 려흥(驪興) 민백훈(閔百勳)이 찬한 동서재(東西齋) 및 문루(門樓) 重修記文(成造都監 安如松)이다. 이 기문(記文)에 의해 1735년(영조11년)에 동서양재를 시건(始建)(초창도감(初刱都監) 崔翰雲)한 사실과, 1749년(영조25년)에 문루를 건축(중창도감(重刱都監) 최붕한(崔鵬翰))한 사실도 밝혀졌다. 1812년 이전의 게판기문(揭板記文)이 남아 있는 것은 위의 기문(記文) 둘 뿐이다.

 

자인향교에서는 대성전(大成殿)에 오성(五聖)과 송조사현(宋朝四賢) 및 우리나라 십팔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여 왔으나, 1995년(典校 崔鎬壹)당시 慶山大學校 박선정(朴善楨) 교수(敎授)의 주도로 유림의 합의에 의거 송조사현(宋朝四賢)중 도국공(道國公)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와 낙국공(洛國公) 이천(伊川) 정이(程頤) 2현(賢)의 위패를 매안(埋安)하고, 현재는 소설위(小設位) 향교 위상에 걸맞게 25현의 위퍠를 모시고 매년 중월(仲月)(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釋奠)을 봉행한다.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현존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8칸의 명륜당, 5칸의 모성루(慕聖樓), 4칸의 동재(東齋), 평삼문(平三門), 4칸의 하당(下堂),2칸의 제기고(祭器庫) 등이 있다. 건축형태는 명륜당이 있고 그 뒤쪽에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남향한 경사면에 3단으로 층을 이루어 아래부터 외삼문, 명륜당, 대성전으로 배치되었고, 대성전 왼쪽에는 서무, 뒤쪽에는 화계가 있다.(다음 카페.자인향교)

 

 

모성루

자인향교의 외삼문입니다

 

 

모성루(慕聖樓)

해산 서(海山 書)

 

 

명륜당

 

 

명륜당 측면, 내삼문

 

 

동, 서재

 

 

대성전

서원목인 은행나무가 대성전에 있습니다.

 

 

배치도에는 없는 건물

 

 

하마비. 모성루

 

 

하마비(下馬碑)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무술이지월일 현감 홍낙항 립(戊戌二之日 縣監 洪樂恒 立)

 

하마비에 건립 간지를 새긴 예도 흔치 않으며,

더구나 세운 주체를 밝힌 하마비는 드문 사례입니다.

 

 

 

현감 홍낙항(縣監 洪樂恒)

당당하게 하마비에 그것도 전면에 이름 석자를 새긴 배포가 대단한 인물 같습니다.

아쉽게도, 고문헌에 한 분이 등장하지만 동일 인물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아 이력을 옮기지 않았습니다.

현장 안내문에는 재임기간이 1,778년~1,780년으로 설명하고 있으므로, 무술(戊戌)년은 1,778년임을 알 수 있습니다.

 

 

202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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