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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청양군

청양...칠갑산 정혜사

by 임병기(선과) 2019.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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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사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칠갑산() 남단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신라 제46대 문성왕() 3년(841)에 혜조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후 도적떼들의 노략질로 크고 작은 전각이 모두 불타고 삼존불상만 남았다.

 

마곡사()의 인명선사()가 다시 재건했으나 임진왜란 때 또 불타 버렸다. 그후 송월선사()가 다시 삼창()했으나, 1907년 의병대와 승병들이 함께 집결한 것을 본 왜병들이 전 사찰에 불을 질렀다. 1908년 월파()가 지금의 대웅전을 건립하고 삼존불상을 봉안하였다.  대웅전 안에는 목조로 된 석가여래불좌상·아미타여래불좌상·약사여래불좌상의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정혜사 현판 글씨는 3.1운동의 33인 중 한 사람인 오세창의 작품이다.대웅전 옆에 있는 산신각과 뒤편에 있는 석굴암·중암()·서암(西) 등의 암자가 옛 고찰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두산백과 발췌 및 보완)

 

오늘

답사 목적은 정혜사 부도. 최근에 문화재로 지정된 목조삼존 그리고 서전암 부도를 뵙기 위해서입니다.

서전암으로 향하는 길

정혜사 입구 400미터 전방에서 좌측 방향이며 차량이 나뭇가지에 긁힐 정도로 좁은 길입니다.

 

서전암지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붕괴된 석축

 

 

부도 자리

느티나무 아래에 조선후기 부도가 있었는데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허전한 마음.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예전에 사진에 담았어야 했는데...

 

 

서전암에서 돌아나와 정혜사로 향합니다.

왜 대웅전이 기억에 없을까요?

 

 

정혜사定慧寺

위창 오세창의 글입니다.

 

 

목조석가여래삼존불

아미타불. 석가여래. 약사여래

 

삼존불은  17세기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법령스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2018년 1월 22 충남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는 사진도 설명문도 등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참고로, 법령스님은 태전(-1600~1615-)→법령(-1615~1641-)→ 혜희(-1640~1677-)→마일(-1655~1701-), 금문(-1655~1706-), 청윤(-1665~1744-) →여찬(-1706~1746-), 세균(-1703~1723-), 취습(-1706~1711-), 삼인(-1693~1711-) 등으로 이어지는 17-18세기를 대표적인 조각승 계보에 속하는 스님입니다.

 

 

석가여래

 

 

 

아미타불

 

 

약사여래

 

 

 

 

 

 

 

정혜사 현왕도慧寺南庵現王圖
1919년,

 

대정8년 기미 大正八年.己未

증명 김만우金萬愚

금어 金普應.韓永醒

주지 金桂昌

 

 

 

우물

백제 성왕이 마셨다는 전설이 구전되고 있으며, 은산 별신굿을 할 때도 이 우물 물을 길러 제사에 올린다고 합니다.

 

 

정혜사 부도전

한국의 사찰문화재에는 혜월당 부도와부도비. 부도재 1기만 있다고 하였습니다.

근데 2기 부도가 눈에들어 와서 직감적으로 폐암이 된 서전암 부도를 옮겨왔구나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1기는 서전암에 봉안되었던 부도 입니다.

아쉽게도 부도전을 새로 넓히면서 한국의 사찰문화재에 소개되었던 부도재(기단부)는 들어 내어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깜빡 사진에 담지 못 했지만 부도전 향좌측 둑에 다른 석조부재와 쌓여 있으며, 시급히 부도비 옆의 제자리로 옮겨 놓길 바랍니다.

 

 

서전암 부도. 혜월당 부도. 혜월당 부도비

 

 

서전암 부도

정혜사로 옮기는 과정에서 탑신석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앙련의 원형대좌위에 탑신과 보주를 일석으로 조성한 조선 후기 부도 입니다.

당호를 새기지 않았습니다.

 

혹 혜월당의 스승이며, 정혜사중창주인 송월당 부도가 아닐까요?

 

 

기단부

 

 

 

 

텃자리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어느 누구도 찾지 않은 폐사지에 홀로 절터를 지키는 것 보다는 정혜사로 이건을 잘 했다고 생각됩니다.

사람이건 문화재이든 어울렁더울렁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혜월당탑 慧月堂塔
1815년

탑신에 비해 방형 대좌가 좁습니다.

원구형 탑신에 옥개석을 올렸으며, 상부에는 일석으로 조성한 파손된 상륜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기단.탑신

 

 

옥개석

 

 

상륜부

 

 

하지만

혜월당 부도로 단정할 당호는 새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방치되었다고 업급했던 부도 기단부가 남아 있는 부도도 혜월당 부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근거 없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행 표충원장겸팔도선교양종화엄강주국 일도대선사 등계존자 혜월당비
行 表忠院長兼八道禪敎兩宗華嚴講主國 一都大禪師 登階尊者 慧月堂碑
1815년,

 

행行은 역임한 경력을 뜻 합니다.

즉, 표충원장을 지냈다는 의미이지요.

 

표충원表忠院

임진왜란 때 왜적과 맞서 싸운 승병장 서산대사.사명대사.기허대사 영규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사당으로 추정됩니다.

 

 

행표충원장겸팔도선교양종화엄강주국 일도대선사 등계존자 혜월당선휘연화

行表忠院長兼八道禪敎兩宗華嚴講主國 一都大禪師 登階尊者 慧月堂禪諱演和

서산하팔세손송월당제자야

西山下八世孫松月堂第子也

가경이십을해건탑입비

嘉慶二十年乙亥十一月建塔立碑

 

혜월당은 서산대사 팔세손이며 표충원장을 역임한 송월당의 제자입니다.

즉 서산대사의 구세손 입니다.

가경 이십년은 1815년 입니다.

 

배면에는 상좌를 비롯 부도를 조성한 스님들의 법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진출처.한국의 사찰문화재)

 

 

당호를 새기지 않은 부도 주인공의 행장을 찾아 갑사.마곡사의 자료를 조사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정혜사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의병 활동기지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행장을 추적할 수 있는 불화 등의 자료가 있었을 텐데 아쉬움가득하지만, 그건 답사꾼인 저보다는 전공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이겠지요.

 

20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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