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거창군

거창...거창박물관 야외전시장

임병기(선과) 2019. 10. 10.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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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후 처음 들립니다.

오늘은

장승백이 다리를 찾아 왔으나, 돌다리는 마리면사무소에 있었습니다.

 

아래 옛글에 덧붙여 답사기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2019.09.28

 

 

 

가조 고인돌

 

 

이규동 부사 철비

 

 

문석인

 

이형석탑?

 

 

 

소야리 석탑

 

 

송림사지 석불좌상

 

 

가섭암지 오층석탑

 

 

석등 옥개석?

부도 옥개석?

 

 

 

천덕사지 삼층석탑

 

 

 

모리재 석불입상

 

 

비림

 

 

철비

 

 

마애비

 

 

기자석

 

 

고인돌

성혈이 보인다.

 

 

당산(조산)

 

2019.09.28 

아래는

2008년 글

 

 

소장되어 있는 유물의 수는 1,200여점이며, 중요소장품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유형문화재 제275호), 송림사지석조여래좌상(유형문화재 제311호), 정온선생 관복(중요민속자료 제218호), 이보흠선생 실기책판(유형문화재 제248호)등의 지정문화재와 다수의 중요자료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거창박물관은 둔마리고분벽화 자료를 비롯하여 소장된 자료들의 대부분은 거창 지역성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어 지역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관림시간 : 09:00 ∼ 17:00
정기휴관일 : 1월 1일·2일, 법정공휴일 다음날, 월요일
관람료

관람구분 요금
개인 12세이하 65세이상 무료
13세 ~ 19세 250원
20세 ~ 64세 500원
단체 (30인이상) 13세 ~19세 200원
20세 ~ 64세 400원


1. 거창박물관 : 055-940-3060
2. 홈페이지 : http://www.gcwc.go.kr/museum/index.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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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탑

 

신라고찰 아림사 유물로 알려진 부재이다. 석조물 맨위에는 쌍사자받침석이 거꾸로 놓여 있고, 그 밑에는 옥개석이 놓여 있다. 맨 아래에는 연화대받침석이 마주 놓여 있다.

 

그런데 왜 이형석탑이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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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면 와룡리 소야탑골 탑

 

경남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 산간 마을 소야마을 탑골의 절터에서 2001년 거창 박물관으로 옮겨와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복원한 3층석탑이다.
 
1,2층 지붕돌과 상층기단 면석 일부, 하층기단 일부와 석탑 앞쪽에 놓인 연화문 배례석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복원할 때 만들어 넣었다.  남아있던 석조물의 수법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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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례석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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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사지 석불

 

마리면 말흘리 송림마을의 절터에서 발굴되어 마리중학교에 보관되어 있다가, 박물관으로 옮겨온 불상이 다.. 소발, 낮은 육계 미소는 보일듯 말듯하다. 법의는 통견이며 팔과 손, 얼굴 훼손이 심하다.

 
불상은 연화대좌에 결가부좌이다. 하대석은 송림마을에 있던 불상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짜 맞춘 것으로 그 출처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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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석에는 나한상이 양각되어 있다. 이런 예는 처음 접하는 조형이며 화강암 재질로 미루어 본래의 돌인지 의심스럽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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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재 석불

 

처음에는 모리재 즉 고개마루인줄 알았지만 거창 북상면에는 있는 재사이다.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73번지 모리재(某里齋) 부근에서 1999년 거창 박물관으로 옮겨와 야외전시장의 다른 석조물과 함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모리재는 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에 있는 재사(齋舍)로 1995년 경남 유형문화재 제307호로 지정되었으며, 정온(鄭蘊)이 낙향한 후 죽을 때까지 은거했던 곳을 기리기 위해 유림들이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이 불상은 만들어 끼웠던 두 손과 목 윗부분은 부러져서 없어졌으나, 손의 위치로 보아 약사여래입상으로 추정되며, 뒷부분에는 광배를 붙였던 흔적이 남아있다.
 
불상과 대석이 한돌로 만들어져 있으며, 타원형에 가까운 대석에는 연화문을 새기려고 했던듯 간략한 선으로 장식하였다. 통견의 옷주름 역시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유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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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림,당산,기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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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댐수몰지구내 남하면 무릉리 산포마을에 있는 것으로 거창지방에 보편적으로 산재해 있는 형식이다. 형태를 보면 판석을 깔고 굄돌을 놓고 그 위에 덮개돌을 덮은 형태로 발굴 당시 석촉과 부문토기편이 출퇴되었다.
덮개돌 위에는 지름 10cm 내외의 크고 작은 성혈(性穴)이 20여개 패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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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암지 석탑

 

여러자료에는 위천초등학교에 있다고 표기되어 있지만 근자에 박물관으로 이건된 것 같다.

 

석탑은 1940년경 위천초등학교에서 가섭암지로 소풍가서 허물어져 있든 3층 석탑을 발견하여 주민과 교사들이 위천초등학교 교정에 모셨으나, 1999년 7월 11일 밤에 도난,한달여후 남하면 둔마리 신촌마을 앞 목장 위 도로가에서 찾았다고 한다.

 

가섭암지 마애불과 편년의 차이가 보이며 후대에 조성한 석탑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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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덕사지 탑

 

고려시대 3층석탑으로 남상면 임불리 천덕사지에 있는 것을 1987년 합천댐수몰지구로 박물관으로 옮겨 복원시킨 것이다. 

 

200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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