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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재명석등. 석탑옥개석

임병기(선과) 2019. 3. 2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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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명석듣.석탑 옥개석

여비님 덕분으로 광주 답사의 마지막 식사를 (구)도청 부근에서 정갈하고 맛난 남도 음식을 먹고 봄볕을 즐기며 둘러 보았다.

나는 2009년 국립광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서 뵈었으며, 대황사지의 유물로 전한다.

 

대황사지

대황사지의 위치는 구 전남도청 일대로 전하고 있다.

"대황사大皇寺’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각종지리지 및 읍지,지도류에서 확인되지 않지만, 1966년에 발간된 광주시사光州市史에서 처음으로 이 일대가 11세기에 창건되어 구한말에 폐사된 대황사지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대부분의 조사보고에서도 이를 이용하여 대황사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대황사지에 관한 실질적인 물증은 전혀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다. 구 전남도청 일대는 조선시대에는 광주읍성의 관아가 있던 곳으로 관아자리에 사찰이 공존하였다는 전언은 다소 신뢰하기 어렵다. 또한 사지의 물적증거로 주장되는 전남도청 공사시 기와편이 출토되었다는 증언 역시 관아건물의 유물이 아니라 사지관련 유물이라 확언하기 어렵다. 한편 (구) 입구의 옥개석,재명 석등, 증심사에 봉안되어 있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등이 대황사지 유물로 전한다."(문화재청.한국의 사지)

 

 

재명석등(在銘 石燈)

팔각원당형 석등으로 팔각 하대석, 팔각 간주석, 팔각 상대석, 화사석, 옥개석,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팔각지대석은 후보물로 보이며 하대석은 상하부이 일석이며 상부에는 복련을 조식하였다.

팔각 간주석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상대석에는 앙련이 조식되어 있다.

팔각 화사석에는 네개 화창을 마련하였으며, 물매가 급한 옥개석, 복발과 앙화 보주를 일석으로 조성하였다.

 

상대석을 경계로 상하 부재의 석질이 다르며, 비례도 조화롭지 못하여 동일 부재 여부가 의문스럽다

 

간주석 명문

 

‘聖壽天長▒▒戊辰▒五 / 穀豊登▒▒▒民
安 / 文趣迷倫三途▒▒ / 刹之願燈龕一座令者 / 棟梁乘善消皆▒▒▒ / ▒後證菩提之▒▒▒ / 菩薩戒 / 右弟子’

 

무진戊辰이라는 간지와 연관하여 1028년, 1088년, 1148년 중 한 시기에 제작된 석등으로 추정한다.

 

 

지대석.하대석

 

 

간주석

 

 

간주석 명문

 

 

상대석

 

 

화사석.옥개석.상륜

 

 

상륜

 

 

국립광주박물관(2009년)

 

 

재명석등은 6차례 이동된 기구한 운명이었다.

첫 번째는 일제강점기에 광주읍성 남문 안에서 도지사관사로, 두번째는 1960년 도청 앞 무덕전武德殿 앞마당으로, 세 번째는1968년 금남로 확장공사로 도청 앞 정원으로, 네번째는 1999년 지하철공사로 도청 6동 앞쪽으로 이전되었다. 다섯번째는 2008년에는 문화관광부의 아시아 문화의 전당 건립에 따라 국립광주박물관으로, 현재는 다시 도청 앞으로 이전 복원되었다.

 

이제는 안태고향에서 영원히 자리했으면 좋겠다.

 

 

대황사지 옥개석

옥개석을 제외한 석탑부재는 결실되었다.

 

낙수면 물매 등을 고려하면 최소 2기 이상 석탑의 옥개석 조합으로 추정된다.

 

가장 눈에 띠는 것은 1,3층 옥개석의 6단 층급받침이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의 옥개석 층급받침이 6단인 작례는 그리 흔치 않다

춘천 서상리 삼층석탑, 춘천 칠층석탑. 충주 미륵대원지 오층석탑. 문경 천주사지 오층석탑.안동 안기동 삼층석탑. 강진 금곡사 삼층석탑

그리고 대황사지 석탑부재에서 나타난다.

 

조성시기는 석등과 동시대에 조성된 석탑부재로 추정된다.

 

 

 

6단 층급받침

 

 

 

 

국립광주박물관(2009년)

 

 

만행에서 돌아 온 님.

이제

그날을 기억하며 영원히 자리잡기를 소망한다.

 

201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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