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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유촌동 석조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19. 3. 19.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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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촌동 석불입상

10년만의 해후, 극락강이란 지명이 오버랩된다.


옛글에는 쌍촌동 운림사에서 옮겨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주소가 정확하면 네비양 활약이 돗 보이는 지역이 도심이다. 답사 매니아들은 외곽지에서 무지막지하게 산길로 고고를 외치면서 인도하는 그녀 때문에 곤욕을 치룬 경험이 있겠지요. 일사천리로 유천동 동사무소(왜 동사무소를 주민센터로 바꿨는지 궁금타!)에 도착하여 마당에서 반기는 부처님을 뵈었다.


쌍촌동 운천사에 있던 것으로 193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왔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당시 극락면이었던 유촌동은 사람의 왕래가 많고 주민들도 많이 살았는데 마땅히 소원을 빌 만한 대상이 없어 운천사에 있던 불상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기자신앙을 믿는 민초들에게 얼굴 대부분을 내어주어 윤곽이 명확하지 않다. 민머리에 육계가 높고 삼도가 보인다. 당당한 어깨에 비해 팔은 짧고 허리는 가늘다. 수인은 시무외인,여원인 도는, 미타인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 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조선 전기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2009.07.26)


옛글은 그대로 두고 오늘은 동호회원들과 설왕설래


오른손에만 법의 자락이 있는 것은

우견편단이며. 통견이 아니다.


그렇다면

삼도 아래는 목걸이가 아닐까?

그렇다면 목걸이를 패용한 여래상이다.


수인은

시무외인,여원인의 변형?


무릎의 습의는?


신광에 새긴 화문은 연꽃이 아니다.

연꽃은 개화하기전 봉우리를 치켜들고 있기 때문.


조성시기는 고려말 이전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삼인행필유아사 三人行必有我師!


 

 

 

무릎.


 

신광의 화문


 

 

 


배면

 


지금 보니

육계가 참 높다.


민초들에게 돌려 준 이목구비

그런데

왜 눈,코 멀쩡한 우리들이 더 부끄러운 세상이 되었을까?

 

201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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