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논산시

논산...원목다리

임병기(선과) 2018. 11. 6.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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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답사 2일차. 해장거리 답사

 

사진만 업데이트 한다.

 

 

 

 

 

 

 

 

 

2018.10.21

 

아래는

2007년 3월 11일 글이다.

 

 

미내다리 만큼 힘들게 찾았다.

둑이 끊기는 것은 아닌지? 길은 이어이지는지 조마조마하게 찾아간 둑길 끝 호남선 철길옆에 숨어 있었다.

 

원목교 개건비에 의하면

당초 원목다리의 축조연대는 명기되어 있지 않고,

광무 4년에 홍수로 파괴된 다리를 승려 4명과 마을사람들이 4,130양을 모금 개건하여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속칭 원목다리라는 명칭은 院項에서 유래하였으며 지명으로 미루어 예전에는 주막과 院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축조연대는 1730년경이라 한다.

 

"다리의 규모는 길이 16m, 폭 2.4m, 높이 2.8m로 3칸의 홍예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 칸이 조금높고 양쪽이 약간 낮다."

 

 

다리 양편 중앙에 예의 용의 아들 '공하'가 사주경계를 서고 있다. 송광사, 선암사, 흥국사 등등 사찰 입구 홍예교 아래의 용머리와 동일한 상징성을 지니며 물을 통해서 잠입하는 사악한 잡귀를 물리친다는 믿음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길. 하늘처럼님과 헤어짐을 아쉬워 하는듯 노을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저물무렵...안도현

 

저물 무렵 그애와 나는 강둑에 앉아서
강물이 사라지는 쪽 하늘 한 귀퉁이를 적시는
노을을 자주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둘 다 말도 없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애와 나는 저무는 세상의 한쪽을
우리가 모두 차지한 듯 싶었습니다


얼마나 아늑하고 평화로운 날들이었는지요
오래오래 그렇게 앉아있다가 보면
양쪽 볼이 까닭도 없이 화끈 달아오를 때도 있었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붉은 노을 때문인 줄로 알았습니다


흘러가서는 되돌아 오지 않는 물소리가
그 애와 내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그애는 날이 갈 수록 부쩍 말수가 줄어드는 것이었고
나는 손 한번잡아주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웠습니다


다만 손가락으로 먼산의 어깨를 짚어가며
강물이 적시고 갈 그 고장의 이름을 알려주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자랑이었습니다


강물이 끝나는 곳에 한없이 펼쳐져 있을
여태 한번도 가보지 못한 큰 바다를
그애와 내가 건너야 할 다리같은 것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습니다


날마다 어둠도 빨리 왔습니다
그애와 같이 살 수 있는 집이 있다면 하고 생각하며
마을로 돌아오는 길은 늘 어찌나 쓸쓸하고 서럽던지
가시에 슴이 따끔거리며 아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애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을 포개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애의 여린 숨소리를
열 몇살 열 몇살 내 나이를 내가 알고 있는 산수공식을
아아 모두 삼켜버릴 것만 같은 노을을 보았습니다


저물 무렵 그애와 나는 강둑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세상을 물들이던 어린 노을일 줄을
지금 생각하면 아주 조금 알것도 같습니다.

  

2007.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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