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상주시

상주...상안사지 삼층석탑.석조약사여래좌상.석조여래 입상

임병기(선과) 2018. 7. 10.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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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상주시 함창읍 증촌2길 10-13

 

2003년 답사기

글에 '상감' 이라는 내용으로 미루어 우리카페 장돌뱅이님(당시에 닉이 '상감마마')과 동행하였던 것 같다,

(이때는 사진을 찍지 않아 참말로 좋았던 시절이었다)

 

최근에 널리 알려졌지만 상주는 三白의 고장이다.
즉 누에고치 쌀 곶감을 말하는 것으로 늦가을에 상주를 방문하는 사람은 집집마다 주렁주렁 엮어 놓은 곶감 말리는 풍경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주는 자전거 도시로 유명하며 견훤의 출생지로도 알려져 있다.

예천에서 내려오며 함창에서 용화사 이정표를 찾았건만 어디에도 안내판이 없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관광객 유치와 홍보를 위해 문화유적지 찾아가는 길을 아주 잘 안내해 놓는데 상주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답사를 다녀온 후 노통의 일본방문에 대하여 이 곳 출신 이상배 의원이 등신외교 발언 파장이 정가를 몰아칠 때 내 머리에 등신이라는 말이 색다르게(등신 지자체가 입가에 맴돌아서?) 쓴웃음 지었었다.

어렵게 찾아간 용화사는 마을 가운데 조그만 집처럼 자리잡아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절집이다.
우두커니 석불을 친견하고 있는 중에 얼굴이 해맑은 비구니 스님이 나오신다.
용화사라는 사찰 명으로 판단해서는 분명 미륵불이 주존불이라 여겨지나 대웅전에는 항마촉지의 수인에 약합을 들고 계신 석조약사여래가 주불이며 왼편에 주형 석조여래입상이 계신다.

특이한 것은 대웅전은 옆문이 없고 어칸 문을 열면 정면이 아닌 오른 편에 석불이 모셔져 있다는 것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불이 법당의 구조와, 서방극락 정토에 상주하시는 아미타불을 고려 동쪽에 자리잡은 것이지만 용화사의 석불은 민가에 절터를 내주고 좁은 공간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겨진다.

 

비구니스님이 대웅전으로 오셔서 질문을 드렸더니 어이쿠 스님은 약사여래불보다는 지장보살로 생각하신다며 예전에 대웅전 현판도 지장전이 었으며 석불입상을 오히려 약사불로 말씀하신다.


새로운 해석이 재미있고 너무도 진지하게 말씀을 하시는 스님 덕에 찾아오는 길의 고단함이 절로 사라진다.

나와 인연을 맺었던 대비사의 대륜스님, 직지사의 재원스님을 잘 아신다는 주지스님이 이곳 동네가 예전에는 탑이 많아서 탑동이고 현재에도 민가에 탑의 부재가 있으며 스님의 원은 작은, 최소한의 공간이라도 더 넓히는 거라 말씀하셔도 거부감이 전혀 없는 것은 왜일까? 불사를 싫어하는 내가....

사대부의 등살에 휘둘리고, 경북선 철길에 잘렸지만 뜰의 큼직한 주추와 담벼락에 흩어져 있는 석탑의 부재는 예전의 사세가 만만치 않았음를 말해주고 최근에 보수한 삼층석탑의 옥개석과 상기단의 면석의 일부에는 오래된 탑의 부재가 얹혀 있다.

비구니 스님이 주석한 탓에 절집은 사대부가의 안채마냥 정갈하고 티없이 깨끗하며 담벼락과 마당 곳곳에 화초가 절집과 조화를 이루며 스님의 마음을 가득 담아 내고 있으며 절집 문화재와 꽃을 실은 달력을 제작하고 싶다는 원을 말씀하시자 상감은 명함을 건내며 동참할 뜻을 피력한다.

차를 한 잔 대접하고 싶다는 스님의 청을 정중히 거절하고 자꾸만 고개가 돌아가는 것을 애써 피하여 용화사를 벗어 나오면서 능소화 붉게 피는 여름날 다시 한번 찾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꽃보다 더 고운 "공곡" 스님을 뵙고 싶어서...

2003.06.07

 

상안사지

용화사는 상안사 옛절터로 전한다.

"창건과 폐사의 관한 사적은 남아 있지 않으며,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고, ‘大寺’라고 불렸다는 달빛에 물든 이야기가 전한다. 신동국여지승람에는 상안사가 재악산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1963년 『한국사찰사전』에는 마을이 뱀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일명 사안사蛇眼寺’로 칭한다고 한다"....한국의 사지

 

 

삼층석탑

사지에 도괴된 부재를 수습하여 복원한 2층기단의 3층석탑이다.

고려초기 이전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하층기단

후보물이며, 저석과 중석이 일석,갑석에는 2단괴임, 내림마루를 새겼다.

 

 

상층기단 중석

2매를 제외하고는 후보물이며,탱주와 양우주를 모각하였다.

 

상층기단 갑석

하부에는 부연, 상부에는 2개 탑신괴임을 조출하였다.

 

 

보살상

중석 8면에는 사천왕.범천.제석천. 보살상 2분 (?)이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범천상

불자佛子를 들고 있다.

 

 

탑신과 옥개석

탑신석, 삼층옥개석은 후보물이다.

 

옥개석 물매는 급하며, 하부에는 절수구를 새겼고 층급받침은 4단이다.

 

 

상륜부

후보하였다.

 

 

 

중정의 석조부재

 

 

광배편

약사전 약사여래좌상의 광배로 추정된다.

약사여래좌상의 광배 홈은 현재 봉인한 상태이다.

 

 

주초

 

 

석탑

탑신과 옥개석, 기단갑석

 

 

상층기단갑석 부재로 추정

 

 

옥개석

혹, 삼층석탑의 3층 옥개석은 아닐런지?

한국의 사지에는 삼층석탑 옥개석 층급받침을 3단으로 표기하고 있어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탑신석이 문제인데...

 

복원된 삼층 석탑 초층탑신으로 판단하기에는 비례가 맞지 않다.

물론, 별석의 괴임이 있었다면 달리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왜 한면에만 연화좌위에 불상을 봉안하였을가?

 

 

 

 

 

석등 하대석

본래 부재이다.

 

 

석조약사여래좌상,석조여래입상

 

 

 

약사여래좌상

석탑과 더불어 고려전기 이전에 봉안된 불상으로 추정한다.

 

연화대좌와 현재는 결실된 광배를 갖춘 상이었다.

불두는 보수하였으며, 나발에 육계가 불분명하다.

장방형 상호,목에는 삼도가 있다.

 

법의는 통견이고, 양 어깨에서 가슴을 가로 질러 걸쳐 연속된 반원형 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두 다리 위에 밀착되게 표현된 옷주름은 가운데로 몰리게 표현되어 있으며, 부채꼴 습의는 상대석과 일석으로 새겨져 있다.

오른손은 촉지인, 왼손에는 약합을 들고 있으며, 길상좌이다.

 

2003년 주지스님께서는

민머리 때문인지 지장보살로 모시고 계시었다.

 

 

 

부채꼴 습의

무릎 사이의 습의는 상대석 상부에 표현하였다.

 

 

 

등의 대의자락

상부에 시멘트로 광배홈을 막았다.

 

 

대좌

상·중·하대석

하대석은 팔각이고,  면마다 복련이 조식되었으며, 상부에는 각호각의 3단 중대석괴임을 조출하였다.
중대석은 팔각이며 각 면마다 우주를 새겼다.

상대석에는 앙련이 조각되어 있고, 하면에 2단의 괴임, 상부에는 부채꼴 습의를 새겼다.

 

 

 

 

 

 

석불입상

광배와 1석으로 조성하였고, 하부가 시멘트에 파묻혀 있다.

소발,, 육계는 크고 높다. 상호는 훼손이 심하다.

목에는 삼도를 표현하였고, 통견,  ‘U’자형 옷주름이 하반신까지 흘러 내렸다.

광배는 거신광으로 마모가 심하며, 상부에 화염문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전기 사이의 작품으로 추정해 본다.

 

 

 

 

 

 

 

 

 

 

 

약사탱

화기를 놓쳤다.

 

 

신중탱

 

 

후불탱

 

 

 

불기 2991년(1964년)

 

 

2003년에 뵈었던 공곡스님이 그립다.

추억 반추에 익숙한 모습은 싫고...

 

2018.06.17

(스님께 말씀드리고 약사전 내부 사진을 촬영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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