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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암 조계사(曹溪寺)의 말사로, 1396년(태조 5)무학 대사가 창건했다. 무학대사가 태조의 명으로 한양 천도를 도모하기 위해 지세를 살펴보니 만리현(萬里峴 : 지금의 만리동)이 달아나려는 백호白虎 형국이었다. 대사는 비보책으로 만리현 맞은 편 관악산에 호압사虎壓寺를 창건하였고, 사자 형상인 이 터에에 사자암을 지어 사자의 위엄으로 백호의 움직임을 막고자 했다고 한다. 1726년(영조 2)숙종의 연령군延齡君의 부인 서(徐)씨의 발원으로 아미타불상을 개금했다. 1910년 경암 스님이이 극락전과 산신각, 요사채를 중수했으며, 1936년 성월이 극락전을 보수했다. 1977년 원명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뒤, 1978년 조실당을 신축했고, 1985년 극락보전과 단하각(丹霞閣), 수세전(壽世殿), 요사채 2동을 중건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보전과 단하각, 수세전, 종각, 요사채 3동이 있다...다음에서 발췌 호압사 약사전(2016.05.28) 극락전 사자암의 주법당으로 정측면 3칸,2칸의 다포계,겹처마, 맞배지붕 전각이다. 1910년 경암스님 중수. 1936년 성월스님 보수, 1985년 원명스님 중건하였다. 아미타삼존불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협시로 모셨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조각승과 정확한 조성시기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1726년 숙종의 아들 연령군의 부인이 개금불사를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이전 불상임을 알 수 있다. 목조아미타불좌상 나발, 중간계주,정상계주, 백호를 표현하였고 방형의 살찐 상호이다. 목에는 삼도를 표현하였고, 법의는 통견이다 아미타 수인의 두 손은 별조로 끼워 넣었다. 신중도. 대웅전 향좌측 사자암 신중도는 크게 화면을 상하 이단으로 나누어, 상단에는 3분의 2에 해당하는 우측(향좌) 부분은 범천과 제석천의 무리를, 나머지 좌측 부분은 갑옷을 입고 깃털 장식의 투구를 쓰고 금강저를 든 위태천과 그의 무리를 배치하였다. 하단은 구름으로 구획한 뒤 악기를 연주하는 천녀들과 희고 구불구불한 눈썹과 수염을 특징으로 하는 용왕을 비롯한 천룡의 무리를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일렬로 배치하였다. 범천과 제석천, 위태천은 주로 역삼각형 구도를 형성하며 그려지는데, 이 작품과 같이 3위의 신이 일렬로 늘어서는 구도가 부분적으로 시도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구도는 1790년(정조 14) 현등사 지장암 신중도를 비롯하여 남양주 흥국사 신중도(1868년), 봉은사 신중도(1884년), 흥국사 신중도(1892년), 서울 미타사 칠성전 신중도(1899년), 진관사 신중도(1910년) 등 19세기 서울, 경기 지역의 신중도에서 유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불화는 화기에 의하면, 1880년(고종 17)의 제작 시기를 비롯하여 각종 소임과 시주질을 밝히고 있으나 전독이 불가능하다...출처/다음 사자암에는 신중도 외에도 문화재로 지정된 괘불,지장도,현황도가 있다. 수세전 壽世殿 단칸 전각으로 칠성각의 이칭이며 흔치 않은 전각 이름이다. 불단에는 칠성탱과, 석가여래를 모셨다. 단하각 丹霞閣 일반적으로 사리를 얻기 위하여 목불木佛을 쪼개 땠다는 단하소불丹霞燒佛의 고사로 유명한 중국 육조시대의 단하천연丹霞天然 선사를 모신 전각으로 알려져 있다. 사자암을 비롯 서울 미타사, 영주 부석사. 남양주 흥국사, 동작구 사자암, 예천 용문사, 성북구 개운사, 이천 영월암, 양산 통도사 극락암, 강원도 고성 건봉사에도 있다. 사찰 단하각에는 산신, 치성광여래 또는 독성이 봉안되어 있으며, 부석사 단하각에는 단하소불(나한상)이 무릎위에 푸른색 쥐 한 마리를 손으로 잡고 있다. 사자암 단하각 산신과, 독성, 독성상 앞에 단하선사(?)를 모셨다. 마애부도 일주문 앞 자연 암반, 상하에 각각 1기 조성하였다. 위쪽 부도 무지인지, 의도한 것인지 흰 페인트로 갈긴 "입산 금지" 글씨가 쓴 웃음을 짓게한다. 비석 모양으로 치석하고 부도 주인공을 새겼다. 청신녀 만원행 영주탑 淸信女 萬願行 灵珠塔 방형 사리공이 깊다. 아래편 마애부도 청신녀 조씨 극락원영주탑 淸信女 趙氏 極樂願靈珠塔 방형부도 사리공을 이중으로 새겼다. 마애부도 수도권 마애부도의 대부분 주인공은 재가여자신도인 청신녀淸信女 이다. 그런데, 조선후기 또는 일제강점기에 사찰에 시주를 할 여력이면 재력가 집안이거나 사대부 집안 부녀자일 것이다. 우리 장묘 문화에 사대부가에서 안주인을 화장하였을까? 더군다나 재가 남자신도인 청신남淸信男 부도도 있어 의문이 더하다. 혹 청신녀淸信女는 궁궐에서 일했던 신심 돈독한 궁녀들은 아니었을까? 2018.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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