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원주시

원주...서곡리 석탑부재

임병기(선과) 2017. 5. 1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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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리는 2011년 머루눈님.누들스님과 들렸었다.

지난 동호회 원주 답사 때 도리천님이 탑신석을 비롯 새로운 부재가 발견되었다고 하며 동선에 포함시킬려고 하였으나 시간 관계로 답사하지 못해 끝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오늘은 추가로 수습한 새로운 부재 답사보다, 얼마전 달넘새님이 올리신 "기단면석 탱주에 귀꽃이 장식된 유일한 작례의 석탑"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에 들렸다.

 

 

조성시기가 맞나요?

하지만 비지정 문화재 안내문을 이렇게 잘 갖춘 예도 보지 못했다.

 

 

추가로 수습된 면석

 

 

 

하기단 면석 탱주속 귀꽃문양

 

 

반대편에는 뒤집혀져 있다.

 

 

 

자물쇠를 새긴 탑신. 추가로 수습하였다.

 

 

 

 

 

 

2017.05.09

 

아래는 2011년 글이다.

 

 

판부면 서곡4리 1409 서곡리 사지

 

제천 답사 도중에서 원주에 거주하시는 머루눈님의 전화가 이어진다. 자기의 일정을 접고 멀리서 온 객을 위해 안내를 자청하고 나선 그 마음을 느끼는 과정이 바로 답사의 묘미 아닐까? 나는 옛사람의 숨결도 좋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정을 공유하는 것이 답사라고 늘 주장하고 있기에 더더욱 님의 행보가 고마웁기 그지 없다.

 

이곳 지명에 대해서 원주시청 홈페이지에는 "옛날 후리사지와 서곡대사가 유명하여 서곡대사의 이름을 따서 서곡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설명되어 있지만, 문화재 총람 자료에는 "이색(李穡)의 <<목은고(牧隱藁)>>에는 당시 원주에 서곡사 (瑞谷寺)와 백운암(白雲庵)이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사찰의 규모 로 보아 서곡사는 현 '탑거리'라는 곳에 있었던 것 같고 이 절이름 으로 인해 서곡이란 마을이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후리절교 위에도 절터가 있다 하나 규모는 크지 않았다고 하며 백운산(白雲山)에 있는 '된절터'가 백운암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도로변에 기다리고 있는 님과 만나지 못하고 바로 네비양이 안내해준 곳에 도착하니 논밭만 보인다. 주위를 돌아보니 멀리 석탑부재가 널부러져 있다.  서곡리 사지는 현재 논으로 경작되고 있는데, 이곳을 주민들은 '탑 (塔)거리'라고 한다. 현재 이곳에서는 상당량의 탑부재와 석조물이 출토되었지만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사지에 남아 있는 부재도 탱주로 미루어 탑부재로 보이지만 고식의 전각 기단에도 보이는 수법이라 단언하기는 쉽지 않겠다. 

 

 

 

 

잠시후 현장에 도착한 머루눈님과 반갑게 수인사를 나누고 보니 한 다리 건너 친구의 친구이다. 님은 원주 지역에서 지역사와 문화유적 지명 유래 등에 조예가 깊은 학자로 후학을 지도하고 계시는 분이었다.

 

원주지역에서 발간되는 원주교차로 칼럼에 박찬언 박사라는 분이 기고한 글에는 "신라 진흥왕 때, 서곡대사가 이곳에 와서 절을 세우고 이름을 후리사(後利寺)라 했으며 9층 석탑까지 세웠었단다. 승려도 수십 명이 있어 수도하는 대사찰이었다는데 그렇던 절이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단지 그때의 모습을 전하는 것으로는 절에서 멀리 떨어진 산상에 우물을 파놓고 길어다 먹었다는데 지금도 우물터가 남아 있다고 전한다. 서곡대사는 이 고장에서 나는 고사리를 먹었단다. 이곳 고사리는 다른 곳에서 나는 고사리와 달리 삶아서 우리지 않고 먹어도 달고 만만하여 몇년전만 해도 여름이면 많은 부녀자들이 다투어 고사리를 뜯어가곤 했다. 또한 이 고장이름이 ‘서곡’이 된 것도 서곡대사가 살고 있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라고 했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석탑의 형식과 시대배경을 고려하면 고려시대에 절집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마을앞 후리절교 좌측에는 지대석 위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탱주와 양우주가 모각된 탑신석, 옥개석 2개, 앙연(仰蓮)이 새겨진 탑신 괴임이 있다. 이부재는 탑부재이면 괴임석이겠지만 후리사 절터에서 옮겨온 불대좌 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탑 앞에는 배례석 용도로 자리한 불상 대좌로 보이는 용도 불명의 부재가 있다.

 

 

  옥개석 상부에는 탑신 괴임을 새기고, 낙수면 물매는 깊다. 두터운 옥개석 받침은  4단이며 전각의 반전은 급하지 않다. 아래 옥개석의 마모는 인위적인 힘이 가해진 흔적으로 보여 마음이 편지 않다. 형식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미처 확인하지 못했지만 자료에 의하면 민가에도 4면에 우주가 있고 자물통 문양이 있는 탑신이 있고, 중촌의 서낭당에도 우주와 탱주가 모각돤 탑재가 1기 있다고 한다.  

 

지역민들에게는 탑거리 보다 용수골로 알려진 마을 초입 소나무는 마을 숲으로 보인다. 후리사에서 옮겨온 석탑 부재 보다는 먹거리와 휴식 목적의 식당이 더욱 각광(?) 받고 인기 있는 장소로 자리잡은 듯하여 마음은 편치 않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잠시 다녀가는 객에게는 희망이지만 동민들에게는 삶의 방편이지 않은가?

 

201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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