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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도록 많은 정담과 곡차가 어울렸지만 답사객에게는 해장술 보다 해장거리 답사가 숙취를 깨워주지 않을까?
양피사지 동서탑 "양피사지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염불사(念佛寺) 가까운 곳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원래 이 일대는 피리(避里) 또는 피촌(避村)으로 불리었는데 일제강점기부터 행정구역의 이름을 본따 남산리 사지(南山里寺址)라 부르고 있으며, 이 절에 있는 쌍탑도 남산리사지 쌍탑으로 불리어 지게 되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 언급된 남산사(南山寺)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절터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양피사 터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삼국유사』1권 「사금갑(射琴匣)」조에 보면 소지왕(炤知王)의 명령을 받은 장수가 까마귀를 따라가다가 남산 동쪽 기슭에 있는 피촌(避村) 또는 피사촌(避寺村)에 이르러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는 것을 한참 동안 보고 있다가 까마귀 간 곳을 놓쳐 버렸다. 당황한 장수가 못가를 헤매고 있는데 못 속에서 노인이 나타나 글을 주기에 가져다가 임금님께 바쳤다 라고 실려있다.
이곳 쌍탑 동쪽에는 지금도 못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못 이름을 '양기못'이라 부르고 있는데 옛 기록에는 양피못(讓避堤)으로 적혀 있다. 피촌(避村)이란 피리와 같은 말이고 양피못은 양피사 곁에 있는 못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삼국유사』의 「사금갑」에서 노임이 글을 갖고 나왔다는 서출지(書出池)는 바로 이 양피못인데, 지금은 그 이름이 다른 못과 바뀌어져 버린 것이다. 부근에 사는 노인들 중에는 일제강점기에 못 이름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 이들도 있다."...출처/다음
서출지의 본래 이름이 양피못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검증을 거쳐 문화재 명칭도 양피사지 동서삼층 석탑으로 고쳤으면 좋겠다,
서탑 2층기단의 3층 석탑으로 상륜부는 노반만을 남기고 결실되었다. 상기단의 중석은 4매로, 탱주 1주, 양우주를 모각하였고 팔부중을 모셨다. 갑석은 2매 판석, 탑신과 옥개석은 1매 부재,, 옥개석 층급은 5단이며 절수구가 표현되었다 낙수면 물매는 깊고 처마의 반전은 부드럽다. 탑신에는 우주를 모각하였다.
상하기단부
상층기단면석의 팔부중
옥개석 층급받침
동탑. 통일신라시대 9세기 석탑계 모전석탑으로 석괴형 기단부는 흔치 않다. 지대석 8개의 기단석을 엇지게 조적하여 괴체형 단층기단을 형성하였다. 기단 윗면에는 별석의 각형 3단 굄을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치게 하였다. 탑신부는의 탑신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부재로 이루어졌으며, 탑신에는 우주,탱주가 생략되었다. 옥개석의 받침은 초층에서부터 5*5*·4단, 낙수면은 초층에서부터 7*6*5단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륜에는 노반만 보인다.
기단
별석괴임
옥개석 층급받침
비슷한 기단부를 가진 석탑
경주. 서악리 모전석탑(2016.05.05)
경주. 남산 용장계 못골 모전석탑(2013.03.31)
부산 기장. 석탑사 석조부재(2014.12.20) 해가 지고 들렸었다. 선여사지로 전하며 사진 우측의 석탑재를 석괴형 기단부로 추정한다.
해장거리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숙소를 나오면서 다시 찾은 석탑 이른 아침과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모광고 카피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좋은데 참 좋은데 뭐라고 말은 못하겠고...
2017.03.12 ====================================================================================================================== 아래는 2004.04,27 글이다.
경주를 탐승할 때마다 늘 느껴지는 두려움,아니 경외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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